법화경에 다섯 보살(상불경. 약왕. 묘음. 보현)품이 등장하는데, 다른 네 보살들은 각각 그 보살들이 소속된 부처님 나라가 있는데 관세음 보살은 그러한 소속됨이 없이 독자적으로 우주를 나투는 보살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큰 불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못하니 이는 관세음 보살의 위엄과 신력 때문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불이란 우리의 모든 것을 태우는 큰 고통인데 이 불도 우리의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설사 잘못되어 불의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그 불의 근본인 탐, 진, 치를 여의면 불은 스스로 사라지게 되며, 또 불이 일어나지도 않게 된다.
또 물에 떠내려 가더라도 그 이름을 일컬으면 얕은 곳을 얻게 되며, 이 말은 물은 근심, 걱정, 유혹 이런 것을 말하는데 앞서 불의 경우처럼 물에 떠내려가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떠내려가는 근본 문제점을 해결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는 것이다.
관세음은 실상의 본질이라고 앞서도 말씀드렸거니와 우리가 살아가며 불을 만나고 수마를 만나는 것도 우리 마음속에 탐진치 번뇌 망상이 스스로 그런 화마, 수마의 고통을 불러일으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관세음의 우주실상을 만나서 스스로 지혜를 완성하면 그러한 모든 고통은 물론이고 생사의 고통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고통받는 중생이 욕심의 칠보를 구하려고 바다에 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위험할 적에 그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일컬으면 그 위험을 벗어나게 된다.
이 말은 우리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오욕의 탐욕에 이끌려 재산만 얻으려고 애를 쓰는데 그러할 때 항상 위험이 도사리게 되는 것이다. 왜냐? 세상의 섭리를 거역하고 탐진치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때 단 하사람이라도 관세음을 염한다 함은 단 한 사람이지만 지극히 관세음의 자비 사상을 받아들이면 그 위대하고 지극한 힘이 만 사람에게 함께 하는 역할을 하게 되며 한 사람의 지극한 지혜의 힘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보라, 우리가 캄캄하고 어두운 밤중에 불안에 떨고 고생을 할 때 한 태양이 뜨므로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듯이......
만일 삼천대천세계에 도적이 가득 찼는데 어떤 장사꾼 두목이 귀중한 보물을 가진 장사꾼들을 데리고 험난한 길을 갈 때에 그 중의 한 사람이 선 남자들아! 무서워 하지 말고 그대들은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일컬어라,
이 보살은 능히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나니 그대들이 그 이름만 일컬으면 이 도적들의 난을 벗어나리라 하니, 여러 장사꾼들이 함께 소리를 내어 나무관세음보살하므로 그 도적들의 난을 벗어나게 되느니라.
이 말씀은 삼천대천세계는 우리는 하늘의 이치도 모르고 땅의 이치도 모르고 우리 자신도 모르고 살아가니 불안하고 답답함을 이야기함이요,
세상을 모르고 살아가니 모든 것이 걸리고 서로 자기 욕심만 생각하니 남을 괴롭히고 남을 해쳐서라도 자기만 잘 되려는 그런 상황을 도적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그러한 욕심과 탐진치가 두목이 되어 그러한 뜻을 같이 한 무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늘 두렵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그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내어 함께 두러움을 없애주는
길, 즉 자연의 아름다운 섭리의 본질인 나무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살아가면 두려움에서 벗어나므로 욕심의 보물을 소중히 여겨 불안하게 살아가지 말고, 자연 실상의 섭리대로 아름답게 살아갈 것을 권고한 말이다. -임채수 법사님의 글에서-
<감상>
관세음보살의 범어 원 이름은 아바로키떼쓰바라 이니, 세간에 사는 뭇 삶들의 소리, 대중의 요구와 지향을 잘 살펴 그들에게 두려움없음을 주는 자, 고통 받는 역사를 해탈시키기 위해 크나 큰 사랑을 베푸는 보살이다.
자씨존은 미륵불이니 범어원 이름은 마이뜨레야이다. 미륵불은 미래에 오실 부처님의 이름이니 그것은 오늘의 실천이 미래의 해탈의 성과를 거져온다는 인과의 확실성을 인격적인 구세자의 구원의 약속으로 표현한 것이다.
법성스님의 해석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미래의 오실 구세주를 메시아라고 하지요.
즉, 메시아는 미륵불 범어인 메이뜨레야에서 변형된 언어입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감사합니다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