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 샤머니즘이라고도 하지만 세상에는 별 미신이 다 있었습니다다. 디딤방아를 만드는데 방아다리를 새로 깍으면 깍은 사
람에게 재미없는 일이 생기거나 죽는다는 미신이 있어 연출된 희비극~~~~
원주서 횡성가는 길 왼편 장양 초등학교 있는곳을 장전(長田)이라 합니다다. 장전 동남간에 적동(積洞)이 있고 여기서 동북간에
분터골 이곳서 산으로 향해 골짜기를 가자면 방아고개가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꽤 먼길 같이 들리나 실은 장양초등학교에서
동북간 1킬로 지점밖에 않된다.
약 150년전 방아다리 고개넘어 진밭골 사람들이 디딤방아를 하나 만들어야겠는데 방아다리를 깍으려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다.
방아 다리를 깍으면 재미없는 일이 생긴다고했고 그 때문에 방아다리는 으레것 흠쳐 오는것 또 훔쳐만 오면 그것이 자기물건일줄
뻔히 알면서도 말을 못하는 풍습이라 고개 넘어 숫마을의 디딤방아다리를 훔쳐오리고 했다.
어느날 밤도 깊어서 진밭골 청년 몇 명이 들어가 숫말을 향해 떠났다. 방가간에 기어들아가다 싶이 들어가 방아다리를 뽑아
돌아오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고 어름잡고만 걷다가 공교롭게도 방아다리를 메고가던 청년
이 그만 논수렁에 빠져 들어갔다.
모두 달려들어 수렁이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청년을 구하려했으나 건지지 못하고 다음날 날이새서 동리사람들을 몰려와 시체
는 꺼냈으나 문제의 방아다리는 꺼내지 못했단다. 그후로부터 고개 이름이 방아다리 고개가 그 밑 수렁은 지금도 그대로 남
아 있으나 이런일이 있은지라 사람이 아직 들어가지 않아서 그때의 방아다리가 아직도 수렁이속에 있으며 잊다금 부서진 나
무 조각들이 나온다 한다
이 방아다리 고개서 동북간으로 500미터쯤 내려가면 솔밭이 있고 솔밭속에 큰 산소가 3기가 나란히 즐지어 있다. 이 산소의
지형을 풍수설로는 학비형(鶴飛形)이라 하는데 사실 주위의 산모양이 날아가는 학같고 학의 머리부분에 해당한곳이 이 산소
가 쓰인 자리다
산소 맨윗자리에 쓰인 뫼는 보통뫼보다 월등하게 크기는 하나 상석과 비석이 없고 또 돌보는 사람 마저 없는데 마을 사람들
은 이 뫼가 어떤 정승의 묘이기는 하나 주인없는 묵뫼라 전한다. 이 묘 바로 앞에 쓰인 뫼는 보통뫼보다 몇 십배 크기도 하
려니와 문관석 석등 상석등이 구비되어 있다. 비석 뒷면에는 잔글씨로 원효연씨의 내력이 적혀있으나 달아서 알아보수가 없
다. 이 뫼 아래에 있는 산소는 원효연씨의 아들의 뫼가 된다고 한다.
지나치는 길에 여기서 원효연씨를 간단히 소개하면 그는 1466년경의 조선 초기 문신으로 자는 자순(字順) 원주 원씨로 세종
14년에 식년문과 장원급제한후 검상 사인 좌사간등을 역임 단종 2년에는 경찬관으로 일본 쓰시마에 다녀왔다. 그 후도 예조
참의와 경상도관찰사 세조 3년에는 동국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시 대사헌 평안도관찰사를 역임 원성군(原城君)으
로 개봉된후 예조판서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시호는 문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