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를 향한 믿음의 길: 세상, 우리 그리고 교회
호세 2,16-22; 마태 9,18-26 /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1. 우리의 현실
물질문명이 찬란하게 발달한 21세기에 들어서도 세상에는 불의와 불공정 그리고 거짓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탓으로 고통받고 병든 사람들이 많고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 그리고 진실이라는 가치는 공동선의 핵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지옥스러운 세상에 일찌감치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이 공동선의 가치를 일깨우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나아지지 못하자 메시아를 보내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게 하시어 최고선과 공동선의 가치를 밝히셨으며 이 가치들이 구현되지 못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즉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셨습니다.
2. 말씀의 초점
오늘부터 미사의 독서로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을 듣습니다. 아모스가 북 이스라엘 왕국 초기에 활약한 예언자라면, 호세아는 후기에 활약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열세 번째 임금인 예로보암 2세 때 활약했는데, 이 당시 북 이스라엘 왕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북방의 앗시리아와 이를 경계한 시리아의 아람 왕국이 맞서고 있는 틈을 타서 아람 왕국을 기습하여 일시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앗시리아와의 국제 관계를 원만히 하려고 현실적 이익이 있으면 우상숭배 풍조도 서슴없이 도입했으며, 이에 따라 율법 정신은 느슨해졌고 왕정은 내부에서부터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호세아는 ‘물질의 늪’에 빠져 들어가던 북 이스라엘 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을 향하여 주님의 심판을 예고했으며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내부 개혁은 좌초되었으며 우상숭배 풍조가 나라 전체에 만연하는 바람에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그리고 진실 같은 공동선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고선과 공동선의 질서가 붕괴되어 버리자 국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앗시리아가 침략하자 나라는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2열왕 17,6-7).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청을 받고 죽은 그의 딸을 소생시키신 기적 사건과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 치유받은 기적 사건을 아울러 전합니다.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회당장의 믿음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열두 해 동안이나 여러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처지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병이 나으리라고 기대했던 여인의 믿음은 더욱 돋보이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치유 능력과 함께 회당장과 여인의 믿음이 그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는데, 신적인 치유 능력이 99%의 비중이라 하더라도 1%의 믿음이 보태어지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ㄴ)
3. 아우구스티노의 꿈: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교부 아우구스티노는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다시 살리신 회당장의 딸은 유다 민족을,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치유와 구원을 받은 여인은 이방 민족을 상징한다고 이 대목을 주해하였습니다. 4세기경 로마에서 활약한 그는 최고선과 공동선이 무너져버린 이스라엘의 사정이 호세아 예언자의 활약 이후 8백 년이 지난 예수님 당시에도 별로 달라지지 못했음을 감안한 듯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다 민족을 찾아 오셨다는 것이고, 그분의 사도들이 선교사가 되어서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 사는 많은 이민족 이방민족들이 치유와 구원을 받게 된 사정을 해석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노 역시 로마제국의 멸망을 당대에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호세아의 안목과 통찰을 이어 받은 아우구스티노 교부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민족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병들었다가 깨끗이 낫기도 하는 역사의 섭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시대를 넘어서는 진리라는 생각에서 이 같은 역사적 통찰을 ‘신국론(神國論)’에 담았습니다.
4. 한국교회의 노력: 사목 의안의 메시지
그 후 20세기에서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맞이하여 열렸던 전국 사목회의도 한국교회가 다음 세기에 나아갈 길을 내다 보았다는 점에서 예언자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이 회의의 폐막미사를 주관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제 이 땅의 교회 현존 제3세기에 삶의 증거, 회개를 통한 화해, 그리고 사랑의 나눔이라는 세 항성(恒星)으로 방위를 찾기 바랍니다.” 하고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당시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도, “이 사목회의는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 즉 성직자·수도자·평신도가 같이 참여하는 회의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자축하면서, “안으로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의 새로워진 모습을 지향하고 밖으로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과 같이 있는 교회 되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니 사목회의는 교회 생명 자체를 다루는 것”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회의에서 발간한 의안들이 선교 300년대를 지향하는 사목 향방 설정에 큰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1995년에 출간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 일부 반영되었을 뿐 더 많고 커다란 제안 사항들은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주교회의에서 12개 분야 사목의안 전집을 발간한 것은 이 의안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한국 현실에 맞추어 수렴한 값진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 사목의안들을 숙고하여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수렴했었더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당시에 주교단에게 보낸 쓴소리 대신에 격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84년에 열렸던 전국 사목회의도 벌써 폐막 40주년을 맞이합니다. 재발간된 사목의안집의 발간사에서 주교회의 의장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역사적 초유로 열렸던 이 사목회의가 시대를 뛰어넘어 주님의 영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통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안고 내일을 오늘로 힘차게 살아가는 이 시대 그리스도교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고 기원하였습니다. 이 의안은 선교 3세기를 이미 중반 정도 살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아직 유효한 예언적 메시지입니다. 특히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 않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도 더욱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황청에서 파악하고 있는 21세기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교 전체 역사상 제3천년기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역할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향도(向導)이기 때문입니다. 이 섭리를 알아듣고 우리 교회가 이 예언적 메시지에 따라 교회를 쇄신하는 일이야말로 하느님께서 한반도 평화와 민족 복음화라는 선물을 주실 수 있는 봉헌이 될 것입니다. 정의와 공정 그리고 진실을 실현하려는 신국에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교우 여러분!
죽은 소녀를 살리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고 여겼던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오게 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사유와 실천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우리나라의 정의와 공정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여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할 책임이 막중한 지도층과 상류층 사이에서 공익성의 가치가 실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사법부의 판사들, 검사들을 비롯한 변호사들 등 법조인들과 언론인 등 국민과 나라의 공동선에 민감해야 할 엘리트들이 사익을 추구하며 국민 여론이나 법 감정에 훨씬 못 미치는 양태를 보이고 있어 뜻 있는 이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 믿는 이들이 앞장서서 공동선의 가치들을 삶에서 구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호세아의 충정어린 예언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우리 민족 안에서 복음화 과업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고, 그토록 바라 마지 않는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민족의 화해와 일치도 덤으로 주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