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를 물에 담근 후 마르는 동안 유족은 망자의 입에 갠지스 강물을 조금 흘려 넣어주거나 시신에 꽃장식을 하는데 이는 영혼이 평온하게 떠나도록 돕는 마지막 배려라고 한다.
물기가 마르는 동안 유족은 장작을 거래하는데 치열한 흥정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맏상주나 자녀들은 머리를 밀고 흰 천을 몸에 두른다.
이는 자신의 모든 치장을 버리고 가장 순결한 상태로 고인을 보내드린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나서는 높게 쌓은 장작더미에 시신을 올리고 화장을 한다.
그런데 힌두는 죽음 앞의 평등을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화장용 나무를 통해 계급과 경제력을 보여준다.
부유층은 향이 강하고 비싼 향나무(Sandalwood)를 섞어서 사용하는데 이는 시신이 타는 냄새를 가려줄 뿐만 아니라, 영혼을 정화한다고 믿기 때문이고 서민이나 가난한 이들은 향은 덜 하지만 화력이 좋은 망고나무나 보리수나무를 사용한다.
화장을 위해서 필요한 나무는 3-400Kg, 완전히 또 빨리 태우기 위해 부자들은 나무를 잔뜩 사지만 돈이 모자라서 나무를 적게 산 가난한 이들은 시신을 다 태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신이 덜 탄 채로 남아도 그대로 시신과 재를 강물에 뿌린다.
시신이 타다가 부분적으로 남기는 해도 그런 유골을 그들이 신으로 여기는 갠지즈강에 뿌리니 신과 합체가 된다는 위안이 있어서 그럴까?
그러면 장작을 살 수 없는 걸인이나 무연고자의 죽음은 어떻게 처리할까?
그들은 종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이기에 그런 사람이 거기서 살다가 죽어도 그들을 강물에 몸을 담그고 화장을 해준다고 한다.
힌두교 교리에서 해탈은 개인의 카르마와 신을 향한 헌신에 의해 결정되지 가난은 영적인 죄가 아니다.
따라서 돈이 없어서 장작불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신을 그 강물에 담가 영적 정화를 하는 것이고 또 어떤 식이든지 화장을 한 후에 유골이 다시 그 강물에 합쳐지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가난해도 그 장소가 성지이기에 사후에 NGO나 자선 단체가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을 해주기에 그들은 사후 걱정을 하지 않고 죽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가난을 떨쳐낼 생각도, 보다 가치 있게 살아갈 생각보다는 오직 그 장소에서 죽어 그 강물에 합쳐지기 원하는 이들은 결국 그 죽음의 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 대책이 없어도, 또 돈이 없어도 그 장소에 가기만 하면, 거기에서 죽어 그 강물에 몸을 씻고 다시 재를 그 강에 뿌리는 의식만 하면 구원(해탈)을 얻는다는 사람들에게 그 강물은 생사해탈이자 '도피안(到彼岸)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