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니 마음이 울적하고 하는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친구들 모두 건강하게 잘 계시겠지요?
우울한 마음도 달랠 겸 오늘은 절개를 지키다 세상을
등진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인 원호에 대하여
알아보려 합니다.
원호는 원주 출신으로 자는 자허(子虛), 호는 관란(觀瀾)입니다.
1423년(세종 5)에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청관(淸官), 현직(顯職)을 지내고, 문종 때
집현전직제학에 이르렀습니다.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병을 핑계로 향리 원주로
돌아가 은거하였습니다.
1257년(세조 3)에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원호는
영월 서쪽에 관란재(觀瀾齋)라는 집을 지어 살면서 강가로
나가 시를 읊기도 하고, 집에서 글을 짓는 등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영월 쪽 단종이 유배 중인 곳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사모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또한 편지와 직접 농사지은 채소와 곡식을
표주박에 담아 청령포로 흐르는 주천강에 띄워
보내 단종을 봉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게 되자 삼년상을 입었고,
삼년상을 마친 뒤 고향인 원주로 돌아와 문밖을
나가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였습니다.
관란재에서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의 방향이
동쪽이어서 앉을 때도 동쪽을 향하고, 잠잘 때도
동쪽으로 머리를 두었습니다.
문밖을 나오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은
원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조카인 판서 원효연이
찾아가 보기를 청했으나 끝까지 문밖을 나오지 않았으며,
세조가 호조참의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습니다.
손자인 원숙강이 출사하여 예종 때 사관으로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던 중 직필로 인해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원호는 자신의 저술과 소장을 모두 불태우고, 자손들에게
글을 읽어 세상의 명리를 바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후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살아온 생을
전하는 것이 없습니다.
숙종 25년 (1699년)에 원호의 절개를 찬양하여 판부사
최석정의 건의로, 고향에 정려를 세웠습니다.
1782년(정조 6년)에 김시습과 남효온, 성담수와
함께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습니다.
경남 함안군 군북면의 함안 서산서원과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호저면 신현리의 칠봉서원에 제향 되었고,
시호는 정간(貞簡)입니다.
청구영언에 실려 있는 원호의 시조 한 수를 소개
올리겠습니다.
"간밤에 우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나가다.
이제 와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저 물아 거슬러 흐르고 저 나도 울어 보내도다.
사모진 원한의 장강 토목 베노나.
갈대꽃과 단풍은 차가워서 우수수 분명 날리라.
이곳은 귀양 온 곳 달밤에 혼백은 어디에서 노는고."
세상의 인심은 시시각각 다 변하여도 역사에 남은
생육신의 혼과 절개는 지금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더불어 변하지 않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조가 일찍이 말했었지요.
"내 사후에 내 이름보다 절개를 지킨 충신의 이름이
더 역사에 남을 것이다, "라고~
그렇습니다.
뒤통수치기가 만연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서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더없이 존경스럽습니다. 끝
첫댓글 오늘 수업,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박학함에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