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然)의 법(法)
정법(正法)의 교리(敎理)는 대자연(大自然)이다.
인간의 지(知)랑 의(意)에는 없다.
따라서 싸움, 배척, 모순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
만약 대자연의 운행에 모순이나 다툼이 있다고 하면,
지상의 생활은 성립하지 않으리라.
다카하시 신지 詩
[해설]
정법(正法)에는 문증(文證), 이증(理證), 현증(現證)이 붙어다닌다.
문증에는 시종일관한 이론체계가 있다.
이증(理證)은 문증에 대한 과학적 증명,
현증은 영적현상(靈的現象), 기적, 마음의 평안등, 생활의 조화이다.
과학적 증명에 대해서는, 현대과학이 아직 발전 도상에 있으므로,
문증이랑 현증의 모든 것을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이러한 증명은 현증이 보완해 준다.
만약 정법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교리며, 그 교리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상념이며, 행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법이라고 하는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교단이 몇개인가 있는 듯한데,
정법과 비슷한 것같으나 사실은 다른 점을 들면,
우상숭배, 부적, 神罰, 강제, 제례, 신령 따위로 되어 가는 점이리라.
특히 교주라고 일컫는 사람이,
(화려한 궁전) 화려한 의상을 입고 신자들 앞에 나오는 것은 끝장이다.
붓다도 예수도 화려한 의상을 몸에 걸치는 것은 없었고,
게다가 아마추어이며,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정법은 불교에서 말하는 제법무아에서 상징되듯이,
아집이 없는 법을 기대처로 한 생활에 있다.
법(法)이란 자연법(自然法)이며,
법(法)은 중도라고 하는 신의 뜻에 들어맞는 생활행위를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다.
법(法)이 신(神)이며, 대자연이 신(神)의 정원이니까,
우상의 필요도 없고, 부적도 또 필요없다.
신벌(神罰)등도 있을 리가 없다.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는 드물 것이다.
신불(神佛)과 인간의 관계도 부모와 자식사이와 똑 같이,
오히려 방황하는 자식일수록 빛을 던져주려고 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神)의 노여움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정법은, 자연법을 기초로 두고 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호리타 카즈나리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