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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크로아티아에서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총 8명의 장관이 부패 의혹으로 경질되었고(Cimic, 2020), 크로아티아 대기업 아그로코르(Agrokor)의 회생 절차에 사적 집단인 일명 ‘보르그 그룹(Borg Group)’이 개입했다는 대규모 부패 스캔들이 언론에 보도되었으며(R.I., 2018), 차관급 인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 다수가 투자자에 특혜를 주었다는 혐의를 받아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각종 부패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Tomsic, 2020). 이와 같은 상황에서 크로아티아 총리이자 집권 여당 크로아티아 민주연합(HDZ, Croatian Democratic Union) 총재인 안드레이 플렌코비치(Andrej Plenković)는 2020년 의회 선거를 며칠 앞두고 부패 척결을 당 차원의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고, 해당 선거 이후 보수 성향의 HDZ가 다시금 세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는 점을 보면 크로아티아 국민들은 부패와 싸우겠다는 플렌코비치 총리의 공약을 신뢰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필자가 지난 2020년에 크로아티아의 부패 문제를 조망한 기고문을 EMERiCs에 게재한 이후 지금까지 약 2년간 유관 분야에서 나타난 동향을 새로이 고찰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아래에서 먼저 크로아티아의 부패 인식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고, 양질의 거버넌스와 관련된 각종 지표를 통해 크로아티아 정부의 부패 척결 노력이 얼마나 큰 실적을 거두고 있는지 분석해 본다. 이후 글의 말미에는 2020년 이래 대중의 큰 관심을 받은 부패 사례 중에서 크로아티아 지역개발·EU기금부(MRRFEU, Ministry for Regional Development and EU Funds) 전임 장관이 연루된 부패 사건, 그리고 크로아티아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석유·천연가스 기업 아이엔에이(INA)에서 발생한 부정행위 스캔들을 각각 집중 조명해보기로 한다.
크로아티아 부패 척결 노력의 부진한 성과
크로아티아는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집계하는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 Index)에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꾸준히 낮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부패 국가로 분류되는 오명을 안았다. 크로아티아의 2021년도 CPI는 전 세계 63위에 해당하는 47점으로, 일반적으로 CPI 50점 미만을 획득하는 국가는 상당한 수준의 부패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TI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크로아티아 응답자 중 41%가 지난 12개월간 자국의 부패 문제가 악화되었다고 답변했고, 같은 기간 공공 서비스 이용자 중 14%가 뇌물을 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Transparency International, 2022).
또한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가 집계한 바에 의하면 크로아티아 국민의 94%가 자국 내에 부패가 횡행하고 있다고 답했고, 지난 3년간 자국 부패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응답의 비율도 70%에 육박했다(European Commission, 2022a).
다음으로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간하는 세계거버넌스지수(WGI, Worldwide Governance Indicator) 하위 구성요소 중에서 각국의 공권력이 사익을 위해 전용되는 정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부패 통제(control of corruption)’, 그리고 사회 주체들이 자신의 활동을 규율하는 규칙에 보이는 신뢰와 순응의 정도를 가리키는 ‘법치주의(rule of law)’ 지표도 부패 현황 파악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료이다(Kaufmann et. al, 2010). 해당 지수의 2021년도 자료에 따르면 크로아티아의 법치주의 지표 백분위는 60.096으로 전년도 60.577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부패 통제 지표 백분위는 2020년도의 61.538에서 2021년도에는 59.135로 소폭 하락했다.
또한 지난 2019년 크로아티아의 부패 문제에 대한 진단과 개선 권고안을 담은 ‘제5차 크로아티아 평가 보고서(Fifth Round Evaluation Report on Croatia)’를 발간한 바 있는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산하 반부패국가그룹(GRECO, Group of States against Corruption)은 2021년 12월에 크로아티아 정부가 해당 보고서에서 권고한 부패 척결 조치 17개항을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이행 보고서를 추가로 내놓았다. 여기서 GRECO는 크로아티아가 상기 17개 항목 중 단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부패를 방지하고 정부 및 경찰 기관의 청렴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평가했다(GRECO, 2022).
마지막으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가 2022년 출간한 법치주의 보고서(Rule of Law Report)도 크로아티아에서 “고위급 스캔들을 비롯한 부패 관련 조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부패 사건의 기소 및 최종 판결 건수는 오히려 감소했다”라고 지적하면서, “형사 소송 절차가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 반부패 정책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다”라는 문제를 제기했다(European Commission, 2022b).
상술한 정량적 지표와 국제기구의 반응을 감안할 때, 크로아티아의 부패 척결 및 법치주의 확립 노력은 지난 2년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오늘날 많은 크로아티아 국민들이 자국 내 부패가 증가하고 있다고 믿는 중요한 원인으로는 가시성이 큰 부패 사건이 주요 언론에서 연이어 보도되면서 부패에 관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본고의 다음 절에서는 지난 2년 동안 나타난 크로아티아의 부패 사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인 MRRFEU 전임 장관 체포 사건, 그리고 INA에서 일어난 부정행위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명해보기로 한다.
전임 장관의 EU 기금 및 국가 예산 횡령 사건
2021년 11월, 크로아티아 언론은 가브리엘라 잘락(Gabrijela Žalac) 전임 MRRFEU 장관과 토미슬라브 페트리치(Tomislav Petric) 중앙재정·계약청(SAFU, Central Finance and Contracting Agency) 청장, 그리고 2명의 기업인이 체포된 통칭 ‘소프트웨어(software)’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다.
본 사건의 조사를 수행한 EU 검찰청(EPPO, European Public Prosecutor’s Office)은 상기 4명의 용의자가 EU 기금의 지원을 받는 정보 시스템(Information System) 조달 사업비를 고의로 부풀리는 방식으로 EU 및 크로아티아 정부 예산에서 180만 유로(한화 약 25억 원) 상당의 금액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본 건 재판에 앞서 용의자의 구속을 권고했다(HINA, 2021; Grgurinovic, 2021). EPPO 측이 밝힌 구체적인 의혹의 정황은 다음과 같다.
해당 사건의 제1용의자 ‘갑’은 2017~2018년 전략기획 및 개발관리 용도로 쓰일 정보 시스템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MRRFEU 장관 겸 SAFU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권한을 바탕으로 제2, 제3 용의자 ‘을’과 ‘병’, 그리고 이들과 연관된 기업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행동을 취했다. 해당 행동의 구체적인 사례로는 ▲’을’, ‘병’ 및 연관 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2017~2018년도 MRRFEU 조달계획 수정 ▲조달 대상인 정보 시스템의 추정 가치 과대평가 ▲조달 유형 및 방식 변경 ▲본래 MRRFEU의 목적에 맞게 설계된 기술적 요구사항을 ‘을’, ‘병’ 및 연관 기업이 보유한 소프트웨어에 맞추어 조정한다는 결정 등이 있다.
‘갑’은 MRRFEU의 수장으로서 대상 제품과 기술적 요구사항이나 기능이 유사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가는 통상 가격보다 훨씬 높은 986만 크로아티아 쿠나(한화 약 18억 원)를 조달 가격으로 설정했고, 2017년에 사전 공개입찰 공지 없이 조달 협상 절차를 개시해 ‘을’ 연관 기업을 입찰자로 임의 초청했다. ‘갑’은 여기에 더해 공개입찰을 거치지 않은 조달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MRRFEU 장관이자 SAFU 이사회 의장인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SAFU의 청장인 제4용의자 ‘정’에 해당 절차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이어 2017년 10월에 공공조달절차 감독위원회(State Commission for the Supervision of Public Procurement Procedures)가 공공조달 법규 위반을 사유로 상기 조달 절차를 무효화한 이후인 2018년에도 ‘갑’과 ‘을’은 ‘을’과 연관된 기업과의 조달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행동을 계속했다.
개방형으로 전환된 공공조달 절차 끝에 상기 정보 시스템 공급 기업으로 선정된 대상은 ‘을’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병’과 연관된 기업으로, 여기서 확정된 구매대금은 현실적 가격인 200만 크로아티아 쿠나(한화 약 3억 7,000만 원)를 6배 이상인 1,299만 1,000 크로아티아 쿠나(한화 약 24억 원)에 달했다. 해당 거래대금은 ‘병’ 연관 기업의 계좌로 지급된 후 ‘을’, ‘병’ 소유 기업으로 이체되었고, 그중 일부는 현금으로 인출되었다. 한편 이번 사건의 중심이 된 소프트웨어 조달 예산 중 최대 85%가 EU 경쟁력·응집력 프로그램(Operational Programme Competitiveness and Cohesion) 지원금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기에, 용의자들은 국가 예산에 더해 EU 기금까지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천연가스 재판매를 통한 부당이득 사건
위 사건보다 최근인 2022년 8월에는 크로아티아의 준국영 석유·천연가스 기업 INA의 임직원 5명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Ferencic, 2022). 해당 사건에 대한 크로아티아 검찰청 산하 조직범죄·부패억제실(USKOK, Croatian State Prosecutor’s Office for the Suppression of Organized Crime and Corruption)의 조사에 따르면 상기 5인이 특정 기업을 경유해 INA 소유의 천연가스를 재판매하면서 INA에 10억 4,600만 크로아티아 쿠나(한화 약 1,930억 원) 상당의 금전적 피해를 초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먼저 2020년 6월부터 2022년 8월 27일까지 INA의 천연가스를 통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공모 기업에 판매한 뒤, 이 천연가스를 해외 기업에 시장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수법으로 총 8억 4,800만 크로아티아 쿠나(한화 약 1,560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Tsoneva, 2022). 해당 범죄를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로는 INA의 천연가스 소매 담당 부서장이자 집권 여당 HDZ 당원인 다미르 스쿠고르(Damir Škugor), 그리고 크로아티아 변호사협회(Croatian Bar Association)장인 조시프 수르작(Josip Šurjak)이 지목되었다.
크로아티아 정부의 반부패 법령과 GRECO의 권고
GRECO가 2019년 12월 초에 채택한 상기 ‘제5차 크로아티아 평가 보고서’는 크로아티아의 반부패 법령체계가 본래 의도한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외부 의견을 담고 있다. GRECO는 여기에서 크로아티아가 공공 부문의 청렴성 제고와 부패 방지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법적·정책적 수단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과 현실의 양 측면에서 부패 방지책의 개선 여지가 다수 존재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GRECO, 2022:4).
현존하는 크로아티아의 반부패 법령에는 2015~2020년도 반부패 전략(Anti-Corruption Strategy 2015-2020), 해당 전략에 따라 2년 주기로 마련되는 일련의 행동 계획(Action Plan), 이해충돌방지법(Law on the Prevention of Conflicts of Interest), 정보접근권법(Law on the Right of Access to Information), 그리고 최근 제정된 내부고발자 보호 관련 법률 등이 있다(GRECO, 2022:4). GRECO는 앞으로 상기 법령 이외에도 최고위 관리직을 대상으로 하는 윤리 강령,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로비스트 및 제3자와의 만남과 관련한 규칙 등을 추가로 제정해 크로아티아의 기존 부패 방지 노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GRECO는 경찰 부서 직원이 조직 내부에서 발생한 청렴 규정 위반 사례를 인지할 경우 이를 반드시 상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GRECO, 2022:4).
결론
크로아티아의 부패 문제를 주제로 삼았던 2020년 8월 기고문 게재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 변화를 살펴본 본고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다양한 기관에서 집계하는 거버넌스 지표에 따르면 크로아티아의 부패 척결 및 법치주의 보장 노력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정체된 것으로 보인다. 이 측면에서 GRECO는 크로아티아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정부 및 경찰 조직의 청렴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고, EC 또한 형사 소송 절차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반부패 정책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이에 더해 유로바로미터도 크로아티아 국민 중 대다수가 자국의 부패 문제가 지난 3년간 더욱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소개했으며, 이러한 인식이 확산된 원인으로는 본고에서도 소개한 대규모 부패 스캔들이 연이어 발생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크로아티아는 지금까지 부패와 싸우는 과정에서 정책이나 제도적 구조를 정비하는 등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들 조치를 실제로 현장에서 활용해 부패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전 2020년 기고문에 이어 크로아티아 부패 척결 정책의 진전 동향과 주요 부패 사건 내역을 소개한 본고가 관련 사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제고하는 동시에 앞으로 부패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사회적 현상과 함께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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