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천초에서 일하시던 그 분의 성함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마당까지 차를 끌고 들어가니 김성우 개인전 등 포스터가 붙어 있다.
종을 치라는 안내가 있고 입장료도 있다.
여주인이 안채에서 나오며 혼자냐고 한다.
현금이 없어 이체하겠다고 하니 그냥 2층부터 보라 하신다.
바깥 어르신과 예전에 인사드린 적이 있다고 하자 외출하셨다 한다.
그림을 보며 계단을 올라 2층부터 본다.
6,70년대의 농사 등과 생활용품 등이 가득하다.
정리되지 못하고 쌓여 있는 편이다.
대단한 열정이다.
1층으로 내려오니 전시실이 여럿이다.
사투리 그림을 보고 불이 꺼져 있는 춘화 전시관을 둘러보는데
불이 켜지며 김선생이 들어 오신다.
벌써 20년이 더 지났는데 그 분의 모습은 알아 보겠다.
강진청에 근무하며 뵌 적이 있다고 하자 반겨 주신다.
학교에 근무하며 사투리를 공책에 메모하기 시작하고 버려지는
물건들이 아까워 모으기 ㅣ시작한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교직자들과의 인연에 대한 얘기도 해 주신다.
학예사 공부도 해 보고 글씨 그림으로 창작 세계에 대한 고민도 하신 말씀을 하신다.
'우짜든지'는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좋아 그렸다 하시고
벽에 걸린 '개새끼'그림은 많은 이가 웃는다 하신다.
공학을 공부한 아들이 박물관학 공부를 한다 하고 손자가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방학하면 할아버지부터 찾아야 하는데 오지 않아 조금 서운하다고도 하신다.
명합을 내 주시며 내 이름을 한번 더 물으신다.
메모장에 붓펜을 주시며 이름을 써 달라 하신다.
나의 지난 날을 정리하며 모아왔던 상장이며 통신표들이 생각난다.
가난하였으니 보관할 공간도 없었고, 귀찮은 거 어머님이 태우셨고
수 많은 편지들도 어느 순간 다 태웠다.
47년생이니 77살 이라며 이제는 갈수록 힘이 떨어지지만 그림은 계속 그린다 하신다.
박물관협의회나 강진의 동호회원들도 정기적으로 만나신댄다.
강진신문에 어느 기자가 자신의 옛 블로그에 쓴 이야기를 연재중이라 하신다.
술을 드시냐 하니 얼굴이 빨개져 밤에만 드신다 한다.
병영 동동주 한병을 드리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