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자골프 세계 랭킹은 한국 랭킹에 외국 선수들이 일부 껴 있는 것 같다.
세계 50위중 한국 선수(동포 포함)가 25명이나 되니 말 다했지 않은가.
어디 그것뿐인가.
최근 2014 시즌을 끝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후반 15개 대회에서
한국 여자골퍼들은 동포 선수 포함해 무려 12승을 몰아쳤다.
일본에서는 안선주, 이보미, 신지애가 상금 랭킹 1~3위를 휩쓸고,
국내 여자골프의 인가도 하늘을 찌른다.
17세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나 19세기 동갑내기 4인방 김효주, 백규정, 고진영, 김민선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몇 년간 세계 여자골프 무대는 '한국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함께 드는 것은 괜한 우려일까.
화창한 하늘 저쪽에서 정체불명의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다.
가까운 과거를 보자.
아시안 게임 골프에서 금메달 4개를 독식했던 한국이 올해는 여자 개인전 금메달 하나만 겨우 건졌다.
홈에서 열린 게 오히려 독이 된 게 아니다.
아시안게임 부진은 한국 주니어 골프의 미래를 보여주는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
최근 한국 아마추어 여자 선수들은 성적만으로 볼 때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다.
아시아권으로 좁히더라도 국제 무대 우승이 없을뿐더러 태국에 치이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쫓기고 있다.
앞으로 몇 년간 김효주나 뱍규정을 이을 만한 대형 스타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조금만 더 먼 과거로 가보자.
1999년 한.일 여자프로골프 대항전이 처음 시작됐을 때 한국 전력은 일본에 한 수 아래였다.
당시 일본 여자대표팀 관계자의 말이 기억난다.
한국도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일본에 맞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당시 일본 여자골프는 근거도 없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열심히 해도 안된다는 비판이나 패배 의식보다는 더 위험한 게 바로 자만이다.
한국 여자골프는 지금 15년 전 일본이 가졌던 그 자만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한국여자프로골프가 세계 최고니까 주니어들도 또래에서 1등을 하면 자신도 세계 최고라고 믿어버리는 것 같다.
자만심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골프는 힘을 잃는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경고는 숫자에서도 알 수 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 주니어 골프 선수로 등록하는 수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여자 등록 선수의 경우 2011년 207명을 정점으로 2012년 194명, 2013년 187명,
그리고 올해 185명으로 줄어들었다.
감소치는 미약하지만 꾸준히 줄어드는 게 더 문제다.
여자 중학교 선수는 2010년을 기점으로, 여자 고교 선수의 숫자 역시 2011년 이후 내리막을 탔다.
남자 주니어 선수가 줄어드는 속도는 심각할 정도다.
요즘 한국은 '미생'이란 단어에 열광한다.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음을 뜻하는 미생(未生)은 바둑 애호가가 아니라면
잘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을 것이다.
아니 조금만 더 생각하면 미생이란 말을 언젠가 들어봤을 수도 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그 융통성 없는 주인공 '미생'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미생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홍수도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 마침내 익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사기의 소진전에 나오는 얘기다.
한국 여자골프는 언제나 세계 최강일 것'이라고 믿는 융통성 없는 '尾生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한국 여자골프는 살기 위해서 꾸준히 수를 내야만 하는 '未生'이다. 오태식 스포츠레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