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사마천 편: 제2회 부친의 뜻을 이어 태사령이 되다
(사진설명: 사마천의 사당 일각)
제2회 부친의 뜻을 이어 태사령이 되다
기원전 110년, 한무제(漢武帝)가 봉선(封禪) 제사를 올리러 떠났다. 태산(泰山)으로 향한 봉선행렬의 규모는 십 여만명이 넘어 깃발이 하늘을 덮고 기세가 호호탕탕하며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천 년에 한 번 있을 뻔한 성대한 행사였다. 이때 사관(史官) 사마담(司馬談)은 불행하게 질환으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해 한무제는 그가 낙양(洛陽)에서 양병하도록 윤허했다. 병상에 누운 사마담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나으리,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집사 안부(安傅)가 자신의 얼굴을 사마담의 귓가에 갖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사마담이 눈을 뜨니 아들 사마천이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천아, 너 폐하를 따라 봉선제를 지내러 가지 않았느냐?”
사마담이 가장 관심하는 것은 자신의 병도, 아들의 안위도 아닌, 봉선행사였다.
사마천이 급히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버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버님께서 그렇게 봉선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제가 폐하를 따라 가겠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건강 때문에 봉선식에 가지 못하니 너무 안타깝구나. 너라도 폐하를 따르면 내가 마음을 놓겠다. 봉선은 우리 사관들에게 정말로 너무 중요하다. 아, 무릇 폐하의 일이라면 모두 대사들이니 사관으로써 그런 일을 사서에 써넣지 않을 수 없구나. 그리고 실록(實錄)이니 두 눈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쓰겠느냐?”
“아버님, 알겠습니다. 사관의 직책이니 사실적인 정보를 잘 수집하겠습니다.”
연명하기 직전에 이르렀던 사마담이 갑자기 기운을 차렸다. 그는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많은 말을 했다.
“천아, 우리 가문의 선조는 원래 주(周)나의 태사(太史)였는데 후에 쇠미해졌느니라. 내가 죽은 후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될 것이다. 태사가 되면 선조의 유업을 이어 받을 수 있다. 너는 효자이니 내가 쓰려던 사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효자란 모름지기 부모를 모시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으로 신하로서 임금을 모시며 마지막에 명성을 떨치는 것을 말한다. 후세에 널리 이름을 날려서 부모가 그 영광을 나누게 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효심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주공단(周公旦)이 주문왕(周文王)과 주무왕(周武王)의 덕성을 널리 알리고,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교화를 선양하며, 태왕(太王)과 왕계(王季)의 사상을 표현하고, 공류(公劉)를 이어 받으며, 후직(后稷)을 추앙했다고 칭송한다.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후에 왕도(王道)가 결여되고 예악(禮樂)이 쇠미하여 공자(孔子)가 <시경(詩經)>과 <상서(尙書)>을 정리하고 <춘추(春秋)>를 써서 지금까지도 학자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노애공(魯哀公)이 기린을 얻은 때로부터 4백 년이 지나 제후들이 혼전을 벌이고 학문이 황폐해지며 사료(史料)가 단절되었다. 지금 한(漢) 왕조가 흥기해서 세상을 통일하고 현명한 군주와 충성스러운 신하, 어진 의사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태사인 내가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천하의 사료를 소홀히 하니 너무 황공하고 불안하구나. 그러니 이제 네가 더욱 마음을 써야겠다!”
사마천이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소자 비록 능력은 안 되지만 모든 힘을 다 해 선인들이 남긴 사료를 편찬하여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없게 하겠습니다.”
“주공단이 세상을 떠서 5백 년이 지나 공자(孔子)가 났고 공자가 세상을 떠서 지금까지 또 5백 년이 흘렀다. <역전(易傳)>을 정리하고 <춘추(春秋)>를 계속 쓰며, <시경(詩經)>과 <상서(尙書), <의례(儀禮)>, <악경(樂經)>의 정수를 받아 들이는 이 위업을 이어갈 사람이 있겠느냐? 천아, 네가 할 수 있겠느냐?”
부친의 물음에 사마천이 대답했다.
“소자 부친의 부탁을 잘 알겠습니다. 역사의 이 무거운 소임을 소자 어찌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의 대답에 사마담은 아주 기뻐서 말을 이었다.
“내 평생 중국의 수 천년 역사를 정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3천년을 아우르는 사서를 편찬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하늘이 시간을 주지 않아 시작할 수 없게 되었구나. 내 평생 유감이다. 지금 이 중임이 너에게 맡겨졌는데 네가 하겠다고 하니 너무 기쁘구나. 천아, 이 아비의 소망은 바로 네가 세상이 길이 남을 사서를 쓰는 것이다. 네가 아비의 이 소망을 이루어 준다면 너는 우리 사마 가문 최고의 효자이니 나와 우리 선조들은 모두 저 세상에서도 웃음을 지을 것이다.”
사마천은 그 순간 자신의 책임이 태산처럼 무거움을 느꼈다.
사마담은 그 해 세상을 하직했다. 사마담은 자신의 삶이 곧 마감될 줄 알았는지 낙양에서 사마천을 만났을 때 자신의 유감도 밝히고 아들에 대한 기대도 말했다. 그리고 3년 후 사마천은 과연 태사령이 되었다.
태사령이 하는 일은 주로 황실의 도서를 관리하고 역사 자료를 수집하며 천문역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태사령이 된 사마천은 많은 서적과 문헌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후에 그가 <사기>를 편찬하는데 아주 좋은 선결 조건을 마련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