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겨울 시즌부터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봅 헤어의 열풍이 올 S/S 시즌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아니, 이 열풍은 점차 그 세력과 강도가 세어지면서 여자들의 헤어 길이를
점점 더 짧게 만들 것이다. 백스테이지에서는 이러한 헤어 디자이너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모델들의 헤어에 반영되었다. 크리스챤 라크로와, 랑방, 비비안 웨스트우드, 와이엔케이 쇼
등 수많은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은 자신들의 긴 머리를 봅 가발 속에 숨겨야 했다.
이번 시즌 봅 헤어의 아이콘이 된 것은 1920년대 플래퍼 룩의 상징인 여배우 루이스 브룩.
눈썹 위까지 똑바로 자른 뱅과 귀밑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이 단발은 <레옹>의 나탈리 포트만
이나 미국 <보그>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일반적인 봅 스타일에 싫증을
느낀 몇몇 디자이너들은 변형 단발을 선택하기도 했다. 칼 라거펠트, 요지 야먀모토 쇼의
모델들은 헤어의 각 부분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잘린 다소 미래적인 느낌의 가발을 써야
했으니까. 캣워크의 모델들을 따라 봅 헤어로 자르고 싶어하는 아시아 여성들을 위해 발맹
쇼의 헤어를 맡은 샘 맥나이트는 적절한 조언을 남겼다. “봅 헤어는 아시아 여성들의
얼굴형에 아주 잘 어울리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진부한 동양풍의 단발을 피하려면
머릿결을 차분하게 빗어 내리기 보단 살짝 헝클어뜨리는 스타일링이 도움이 될 겁니다.
훨씬 더 섹시해 보이고 로큰롤적으로 보일 수 있죠.” 최근 모델들 사이에서 개성을 표출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으로 여겨지는 쇼트커트에 관심이 간다면 이번 시즌 다크호스로 떠오른
신인 모델 아기네스 딘의 스타일을 참고해도 좋을 듯. 진 셰버그를 연상시키는
이 쿨한 헤어 스타일 덕분에 당신은 금세 자유분방한 어번 터프 걸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S/S 시즌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이 짧게 자른 가발을 만드는 데 분주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헤어 글로스·스프레이·머드·왁스 등 모델들의 헤어를 매끄럽고
깔끔하게 넘겨 묶는데 필요한 각종 스타일링 제품 역시 바닥을 드러냈을 것이다.
로맨틱한 느낌을 주는 루즌-업 스타일은 이제 더 이상 유행이 아니다. 퓨처리즘과 미니멀한
의상들이 주류를 이룬 이번 시즌 가장 환영받는 헤어 스타일은 바로 올백 헤어였으니까.
예를 들면 잔머리 하나 남기지 않고 촉촉한 스타일링 제품을 써서 매끄럽게 머리를 쓸어
넘긴 발렌시아가 쇼의 헤어는 미래적인 모노톤의 의상, 커다란 투명 고글과 완벽한 매치를
이뤘다. 커스텀 내셔널, 구찌, 로베르토 카발리 쇼에서도 이렇듯 미래적이면서도 시크해
보이는 올백 헤어를 목격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모던한 올백 시뇽 헤어를 원한다면 한 가지 룰에 충실해야 한다. 바로 정수리
높이에 머리를 묶어야 한다는 사실! 랑방 쇼에서 미래적인 시뇽 헤어를 연출한 귀도 팔라우는 이렇게 조언한다.
“저는 아주 깨끗하고 날카로워 보이면서도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헤어를 원했지요. 먼저 정수리 위치에 포니테일을 만들었는데, 이때 글로시하고 글래머러스한 느낌을 주기 위해
젤을 듬뿍 발랐습니다.”
빅터 앤 롤프 쇼의 헤어처럼 굳이 실버 글리터를 머리에 바르지 않더라도 헤어 젤과 글로스는 평범했던 당신의 올백 헤어를 훨씬 특별하고 트렌디하게 변신시켜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영양 공급과 스타일링 기능을 갖춘 최상의 스타일링 제품을 골라내는
것이 봄을 맞는 당신의 헤어를 위한 첫 번째 미션이다!
‘누드 메이크업 = 모던 메이크업’이란 공식은 올해도 많은 여자들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크 제이콥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보테가 베네타, 질 샌더의 백스테이지에서는
모델들의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듯 보이는 누드 메이크업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피부톤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들여서 잡티라곤 보이지 않는 완벽한 피부가
만들어졌음을 눈치챌 수 있다. 백스테이지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이런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피부를 만들기 위해 샤넬의 ‘뗑 이노쌍스’, 맥의 ‘미네랄라이즈 새틴 피니시
파운데이션’ 같은 비밀병기들을 갖춰야 했다. 소피아 코코살라키나 디올, 클로에, 에트로 쇼
에서는 이와 같은 누드 베이스에 피부에 음영을 주는 소프트 컬러가 미묘하게 사용되어
눈과 눈썹, 얼굴의 윤곽을 잡아주었다. “내추럴한 메이크업에 작은 포인트를 주는 것이
이번 시즌의 빅 트렌드이지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샬롯 틸버리는 말한다.
“보일 듯 말듯한 앤틱핑크, 토프, 베이지, 라일락, 약간의 골드 같은 내추럴한 색들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입술에 발라진 컬러도 미미하다. 투명 립 컨디셔너, 베이지나
페일핑크 립스틱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뭔가 아쉬운 감이 있다면 속눈썹에 포인트를 주자.
단, 눈썹 전체에 부담스러운 볼륨의 인조 속눈썹을 붙이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
마크 제이콥스 쇼의 모델들처럼 마스카라 없이 인조 속눈썹 몇 가닥만 더하는 것이 미니멀
페이스에 훨씬 어울린다. 블루마린이나 까샤렐 쇼를 참고해서 마스카라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최소한의 컬러를 입힌 미니멀 페이스에 깔끔하게 바른 마스카라는 최상의
메이크업 효과를 보장해줄 것이다.
팝 아트를 연상시키는 컬러풀한 룩들과 그래픽 프린트, 화려한 컬러 밴드의 유행은 메이크업
에 있어서도 컬러의 부활을 부추겼다. 사실 지난 몇 시즌을 거쳐 얼굴에 사용된 컬러라곤
핑크와 베이지, 브라운, 블랙이 사용되었을 뿐(클래식한 레드 립스틱은 매 시즌 선보였지만)
비비드한 컬러가 눈길을 끈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올봄 당신의 아이섀도 팔레트는 훨씬
다양한 컬러의 스펙트럼을 가져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컬러 메이크업을 선보인 건 D&G 쇼.
눈을 사로잡는 옐로, 퍼플, 오렌지, 그린색의 헤어밴드를 한 모델들이 각각의 밴드 컬러와
똑같은 아이섀도를 발라 발랄한 룩을 연출했다. 80년대의 그것처럼 자칫 촌스러워 일 수
있는 룩이었지만, 컬러를 눈꼬리에만 포인트로 사용함으로써 위험부담을 덜었다.
눈가에 옐로골드, 볼에는 짙은 핑크와 레드의 그러데이션으로 컬러풀 페이스의 전형을
보여준 안나 수이의 모델들, 눈두덩 전체에 쉬어한 오렌지 컬러를 부드럽게 펴바른 캘빈
클라인 쇼의 모델들 역시 컬러 메이크업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올봄 리얼리티에서
컬러의 향연을 즐기는 방법은 되도록 컬러의 면적을 줄이라는 것. 눈, 볼, 입술 어디에든
한 부분에만 비비드한 컬러를 사용한다면 뷰티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큼하고 발랄한 봄 메이크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