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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바울리나에게 내린 은총
24.11.5
이틀 간 걱정과 긴장으로 거의 잠을 자지 못하다가
어제는 딸, 손녀와 함께 마트 식품점에 들러 장을 봤습니다.
앞으로 내가 혼자 먹을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서 입니다.
된장국과 함께 저녁을 먹고나니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깼습니다.
모기 한 마리가 계속 물었기 때문입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입니다.
일어나 앉아서 귓가를 앵앵거리는 모기를 잡으려고
침침한 눈으로 씨름한 결과 10여분 만에 잡았습니다.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않아 누워서 지난 이틀간 일을 돌아보니
주님의 커다란 은총을 받았음을 깨닫고는 일어나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내는 지병이 있습니다.
폐섬유화라는 병인데 폐가 점점 줄어드는 병으로
현재는 검증된 치료약이나 치료방법이 없는 희귀병입니다.
며칠 전 제주교구 총대리신부님도 하셨던 김창훈 은퇴신부님도
폐섬유화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강우일 주교님이 강론에서 말씀하셨기에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곤란한 병이지요.
아내는 7년 전에 진단을 받았는데, 사실은 그 이전 종합검진 때에도
폐질환 의심으로 재검의견이 있었지만 조치를 안했지요.
진단을 받은 후 정기적으로 서울 가톨릭 성모병원으로
약 3개월 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처방을 받으며 생활했습니다.
그 동안 위험한 순간도 몇 차례 있었지만 잘 넘어갔습니다.
그때마다 우연이라기보다 주님이 돌보아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 바울리나는 본당 제대꽃꽂이 봉사를 합니다.
가족이나 주위 분들이 건강을 생각해 봉사를 그만 하라고 권하지만
정작 본인은 힘들어도 주님제단에서 봉사라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봉사하다가 죽어도 좋다고 늘 말했습니다.
그래서 서강대 전례꽃꽂이를 배우러 4년 간 매주 서울을 오가며
전례꽃꽂이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습니다.
오늘(11.5) 성모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아내는 이번에 서울에 가서는 일주일 이상 있어야 합니다.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가지고 상담하려면 일주일 기다려야 하기에
딸집에 머물러 손녀도 보면서 상담하고 내려올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지난 주일(11.3)날 일입니다.
아내는 10시 미사를 간다고 하면서 미사 후에 목욕하고 올 테니
먼저 점심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나는 토요일 주일저녁미사 해설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간 후 따놓은 수세미를 손질하기 위해서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발비나 자매님이 차를 우리 집앞에 세우고는 급히 불렀습니다.
창문을 열고는 아내가 성당에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옷을 갈아입고 차를 타고 성당으로 갔습니다.
휴대폰을 보니 사무장의 전화가 3통이나 왔었습니다.
어제 미사 때 진동으로 해 놓은 것을 해제하지 않아 듣지 못한 것이지요.
성당에 도착하니 아내는 성당현관문 바로 밖에 들것에 누워있었는데
119 구급대원이 내가 보호자인 것을 확인하자 마자
차에 태워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차안에서 아내는 고통을 호소하며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구급대원들은 여러가지 수치를 체크하고 병원에 전화하면서
환자상태를 말하고 조치가능 한지를 물어보면서
아내의 의식상태를 확인하는 급박한 상황였습니다.
나는 기도를 하면서 구급대원이 시키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1시간 후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응급실 당직 간호사들이
구급대원에게서 인계를 받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내가 무척 고통스럽게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조치를 하며 수치를 측정하고 여러가지 약물을 투여하며
사진도 찍고 분주히 움직이며 여러 조치를 했습니다.
맥박과 산소포화도는 나오지만 혈압이 측정이 안된다고
의료진들끼리 주고 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내는 구급차에서부터 물을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들은 안된다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의료진들의 모습을 보니 당황하고 있었고 수시로 혈압을 재는데
계속 혈압이 측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피검사도 여러부위에서 피를 뽑는데 발에서는 피가 뽑히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의식은 있었지만 너무 지쳐 눈도 잘 뜨지 못한 상태에서
나한테 베개를 베게 해달라, 발을 주물러라 정도의 요구를 하면서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냈고 급기야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면서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지켜보다가 당직(주일) 의사에게 물어보았지만
검사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만 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 1시간 30분이 지난 후 목에 관을 삽입한다고 하며
동의서에 서명을 부탁했습니다.
현재 위독한 상태이기에 하는 것이라며 자세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가호흡이 안되어 산소호흡기도 소용없고
입에 관을 집어넣어 강제산소를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12시경 딸에게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받자 울먹이며 오후 2시 비행기로 제주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한 참 지난 후 커튼이 걷히고 아내에게 가보니
입에 관을 물고 목구멍으로 관을 삽입한 상태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사복입은 여자분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수간호사로 생각을 했는데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분이
심장혈관내과 의사임을 알았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되자 연락을 해서 급히 병원으로 달려온 것입니다.
이제 응급조치를 했고 약하지만 혈압도 잡히기 시작했다며
환자 상태를 조금 지켜보다가 중환자실에 옮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환자실로 가면 하루에 한 번 12시~12시 30분 면회가 된다고 합니다.
3시경 입원수속을 밟으라고 했습니다.
딸이 도착할 시간을 추정해보니 병원에 4시경이나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언제 입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중환자실에서 준비가 끝나면 연락이 온다고 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딸이 도착해서 엄마 얼굴을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정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습니다.
드디어 딸과 사위 손녀가 도착해 딸이 엄마에게 가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자 바로 중환자실로 간다고 했습니다.
보호자는 중환자실 앞으로 올라가서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환복한 후 벗은 아내의 옷가지, 소지품, 미사가방 등과
성당에서 가져온 방석 5개 등을 챙기고 한 참을 기다리자
중환자실(집중치료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문진서류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내의 여러가지 상태, 가족관계 등을 조사했습니다.
아내는 다른 엘리베이터로 올라왔는지 이미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딸과 앉아서 앞으로의 일을 상의한 결과
여기에서 대기해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으니 집에 가서 대기하자고 했습니다.
급한 일이 생기면 비상연락망으로 병원에서 연락을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경황이 없이 집을 나왔기에 집으로 돌아가 정리를 하고
내일 차를 가지고 병원에 오기로 했습니다.
딸은 그래도 엄마가 있는 병원에 있어야 겠다며 상황를 보면서
제주시에 있는 시댁에 가겠다고 하여 헤어졌습니다.
응급실에 있을 때 딸이 제주에 가족 여행왔던 사촌 오빠에게 연락해
조카가족도 도착해 작은엄마를 잠깐 만난 후
병원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토요일 오후를 조카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오늘 우리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을 나서기 전에 조카에게 전화하자 아직도 근처에 있었습니다.
딸은 택시를 타고 가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조카에게
숙소(서귀포) 가는 길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하여
나는 성당에서 내리고 헤어졌습니다.
성당에 주차된 차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썰렁했습니다.
어지럽혀진 싱크대를 정리하고 점심을 먹지 못했기에 배가 고팠습니다.
밥을 해서 먹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자려고 약간의 술도 마셨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잠을 청했지만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면서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아 앉았다 누었다를 반복했습니다.
잠깐 잠이 들었다 싶으면 이상한 꿈과 함께 진땀만 흘렀습니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데 너무나 밤이 길었습니다.
새벽 4시에 밥을 준비하고 병원에 가져갈 물품들을 챙겼습니다.
복용하던 약,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를 위한 얇은 이불, 베개, 수면양말
속옷, 아내 신분증, 휴대폰 충전기, 성수 등
(개인물품은 반입이 안되어 하나도 도움이 안되었습니다)
밥을 먹고 5시에 병원으로 출발하여 6시에 중환자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병원은 아직 깜깜했고 정문은 닫혀있어 응급실을 통해 올라갔습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분주히 드나들며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며 2시간 쯤 지나자 중환자실을 들고 나가는 교대하는 간호사,
진료준비하러 나온 직원, 간호사(치과,심장혈관내과, 수술실) 등이 보였고
아침식사를 가지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안에서 나오는 간호사에게 아내이름을 대며 상태를 물었습니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입에 부착한 관을 그대로 부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자기가 알 수 없기에 의사선생님이 출근하신 후
면담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제 저녁에 딸이 인터넷도 찾아보고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사촌 언니에게도 알아본 모양입니다.
입에 관을 삽입한 것은 자가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이며
2주 안에 관을 떼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딸가족와 나는 제발 자가호흡 할 수있기만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알고 지내는 수녀님들께 전화를 해서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얼마전 다녀가신 바오로딸 수녀님들, 갈멜 수녀님 등..
8시 30분이 되자 의사인 듯한 분들이 중환자실을 드나들었습니다.
4명 정도가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 중에 어제 중환자실에서
사복으로 응급조치를 하고 나에게 이야기를 했던 분도 보였습니다.
9시 조금 넘어서 간호사가 나오더니 나에게 면담을 주선했습니다.
쪽지를 주며 심장혈관내과에 제출하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 입에 삽입했던 관을 떼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살았구나! 하는 안도와 기쁨에 벅찼습니다.
바로 딸에게 전화했습니다.
딸도 나와같은 반응을 보이며 정말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의사선생님과 면담하기로 했다고 전하자
딸도 서둘러 손녀를 준비시켜 오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험난한 치료의 길이 남아 있지만 그런 것은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심장혈관내과에 접수를 하고 30분 쯤 기다리다 면담을 했습니다.
어제 사복차림으로 응급실에서 보았던 분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어제 아내의 상황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이
심근경색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고 상황을 보아가면서
상태가 좋아지면 내일이나 모레 일반병실로 옮길 것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폐렴도 왔기 때문에 호흡기 내과 선생님과 의논해보겠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심장위주의 치료를 우선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폐렴으로 인한 폐섬유화 악화로 나타난 현상인 줄 알았는데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심근경색!
백과 사전을 찾아 보았습니다.
심근경색증이 발생하면 1/3은 병원에 도착하기 이전에 사망합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더라도 사망률이 5~10%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심근경색증 환자의 50% 이상은 평소에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나름대로 예방하거나 건강검진을 하더라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근경색증이 발생하면 우선 격심한 가슴 통증이 발생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통증은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으로,
'가슴이 찢어지듯', '벌어지는 듯', '숨이 멎을 것 같은' 통증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고통은 30분 이상 지속되므로 환자들은 대개 이때 죽음의 공포를 경험합니다.
아내가 엄마를 계속 외치며 고통스러웠던 때가 아마도 이때인 듯 합니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의료진에게 맡기고 우리는 좋은 결과로 이루어지기를
믿음을 갖고 이겨내어야 하겠습니다.
어제 낮 10시경 딸 가족과 함께 근처 편의점에서 차 한잔 하는데
본당 사무장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병원에 왔다고 합니다.
오늘 성당에 쉬는 날인데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 동안 5번 이상 전화를 하며 걱정도 해 주었습니다.
편의점에 있다고 말하자 우리에게 왔고
차를 같이 마시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내가 쓰러진 것을 제일 먼저 발견했고
그후 119 신고, 나에게 전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우리 마을 자매님에게 전화해서 나를 태우고 온 것입니다.
심근경색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더욱 초동조치를 잘 한 것이
아내의 생명을 살린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입에 관을 제거 했다는 소식을 듣자 손뼉을 치며
정말 기뻐했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저께 통화중에 의식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통중에서도 손으로 침대를 치며 손가락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잘 될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했고 본인도 잘 되리라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후엔 서로 큰 안도의 마음을 갖고 차분이 대화를 했습니다.
아내가 주님의 봉사자로서 성실히 살아온 분이기에
주님께서 돌보아 주신것이라는 말과 함께
성당 미사가 시작하고 얼마 조금지나 머리가 어지럽다며
성당 밖으로 나간 것을 보았고 사무장이 수녀님에게 말하고
바로 뒤쫓아 나오니 주저 앉아 있어서 바로 발견하고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119에 신고하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수녀님과 함께 성당 방석으로 머리를 높이고
나에게 바로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않아 발을 동동 굴렀지만
마을에 다른 교우를 통해 오히려 빨리 성당에 왔던 것입니다.
차를 아내가 가지고 갖기에 내가 전화를 받았다면
택시를 불러 대기하는 시간등을 감안하면 더 늦을 수도 있었습니다.
119를 타고 가면서 제주대학 병원은 멀기에 가장 가까운 병원을 선택한 점.
그리고 빠르게 원인을 찾아 비근무중인 심장혈관내과 의사에게 연락해 달려와
사복을 입은채로 응급조치를 한 점등이 우연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작용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아내에게 용기를 주며 우리 가족도 한 마음으로
아내의 회복을 믿음을 가지고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전화드린 분들마다 평상시에도 아내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셨고
앞으로도 계속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아내의 일을 겪으며 보이지 않는 분들의 기도의 힘을 느꼈습니다.
나도 이웃의 고통을 내 가족처럼 기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주님! 감사와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첫댓글 큰일 날뻔,,,
주님의 은총과 자비로, 성모님기도로, 쾌차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세상에~~
글을 읽기도 힘들었네요
수호천사의 도움으로 잘 극복했습니다
쾌차하시길 기도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