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4세부터 샤를 10세까지
명화로 알아보는 강대하고 화려한 절대 왕정,
부르봉의 시작과 영광 그리고 몰락
부르봉 가문은 합스부르크가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유럽 왕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부르봉가는 옛 카페 왕조의 방계에 해당하며, 부르봉이라는 명칭은 부르봉 라르샹보(Bourbon-l'Archambault)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다. 부르봉은 750년 역사의 합스부르크에 비하면 다소 짧지만, 부르봉가가 프랑스를 지배한 250여 년 동안 프랑스는 유럽 문화의 선도자이자 절대 왕권의 상징으로 태양처럼 눈부신 전성기를 누린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는 1589년, 프랑스를 지배하던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 앙리 3세가 후사를 두지 못하고 사망하자, 발루아의 공주 마르그리트의 남편이자 카페 왕조의 방계인 부르봉 가문의 앙리 4세에게 왕위 계승권이 돌아가면서 시작된다. 부르봉 왕가는 정략적 혼인과 전쟁 속에서 세를 불려나가며, 앙리 4세부터 시작해 루이 13세,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 루이 18세, 샤를 10세까지 7대에 걸쳐 16세기 후반부터(잠시 중단된 시기도 있지만) 19세기 초까지 약 250년간 프랑스에 군림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프랑스 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자면 단연 ‘태양왕’ 루이 14세일 것이다. 루이가 유럽에 역사에 미친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은 압도적으로, 뛰어난 외교술과 정치 능력으로 프랑스를 유럽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이아생트 리고의 작품 〈루이 14세〉(제4장)를 보면 그가 가진 군주의 위압감과 거만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반세기도 더 전에 반 다이크가 그린 〈사냥터의 찰스 1세〉(제2장)의 영국 왕, 찰스 1세의 자세를 참조한 것으로, 오른팔을 왕홀로 지지하고, 왼쪽 팔꿈치는 정면을 향해 내밀고,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왼발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민다. 주목을 받는데 익숙한 자의 특유의 자세와 타인을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절대주의 최전성기의 루이 14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속 루이 14세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본다면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영광은 영원할 것만 같지만, 화려하고 향락적인 생활은 루이 15세, 루이 16세 등 후세 왕들의 ‘앙뉘’(=권태로움, 무료함)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곧 민중들의 혁명으로 이어졌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이 되고 이후 짧은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지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마찬가지로 ‘지지 않는 태양’이란 없는 법이다. 위베르 로베르의 〈폐허가 된 루브르 대회랑의 상상도〉(제9장),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제12장)은 옛 왕궁 루브르가 폐허가 된 모습과 자유의 여신이 이끄는 시민들의 혁명을 통해 부르봉 왕조의 종언과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폐허는 과거의 영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정확히는 그 영광의 기억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프랑스 부르봉가의 영광은 끝이 났지만, 부르봉가의 화려한 전성기와 몰락을 함께한 베르사유궁전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화적 유산으로 남았으며, 베르사유 이전 왕궁으로 쓰였던 파리의 루브르궁전은 초대왕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의 삶을 그린 루벤스의 21점의 연작과 루이 15세의 총희, 퐁파두르 후작의 초상 등 프랑스의 화려한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미술관이자 박물관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 외에도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이야기는 드라마 〈베르사유〉, 도서 《베르사유의 장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레미제라블〉 등 현대까지도 수많은 걸작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부르봉가가 남긴 문화유산이 오늘까지도 쭉 이어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프랑스 ‘모드’를 알면 유럽사가 보인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스토리텔링 명화 수업
프랑스의 전성기를 이끈 루이 14세는 ‘나의 가장 큰 정열은 영광을 향한 사랑이다’라며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신격화했다. 프랑스가 문화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바로 베르사유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국내외 수많은 예술가와 기술자를 불러 모아 건축, 정원, 조각, 회화, 공예 전부를 화려하게 통일하고, 그 공간 자체를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예술품으로 완성했다. 루이 14세는 예술을 대대적으로 후원했는데, 루이의 문화 진흥책 덕택에 수많은 예술 아카데미와 과학 아카데미가 탄생하고, 프랑스 문화는 절정기를 맞이한다. 그 문화의 파급력은 여러 이웃 나라들까지 광범위하게 미쳤고, 나라의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왕과 귀족들은 루이 14세가 되고 싶어 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도 자국의 언어 대신 일상적으로 프랑스어로 읽고 썼고, 시골 귀족들까지 프랑스인 고용인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훗날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 또한 태양왕을 동경해 베르사유궁을 본뜬 헤렌킴제성을 건축했다.
일명 ‘프랑스 모드(프랑스어로 유행)’라 불리는 프랑스 문화는 유럽사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이러한 유행은 당시 그림의 패션, 가구, 화풍의 변화를 통해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마리아 테레사〉(제5장)는 루이 14세의 왕비이자 에스파냐 합스부르크의 공주인 마리아 테레사를 담은 그림으로, 그녀는 옆으로 과하게 부풀린 파딩게일 스커트와 마치 투구를 쓴듯한 촌스러운 머리 스타일로 인해 프랑스 귀족들에게 비웃음을 산다. 오랫동안 유럽의 최첨단을 걸었던 ‘에스파냐 모드’가 국력의 현저한 저하와 함께 프랑스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그려진 장 앙투안 바토의 그림, 〈제르생의 간판〉(제6장)은 화려하고 위엄이 넘치던 태양왕의 바로크 시대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점원들이 나무 상자에 넣어서 정리하고 있는 것은 루이 14세의 초상화로, 실제로 만년의 태양왕은 완전히 인기를 잃어, 이 그림이 그려지기 5년 전 세상을 떠났을 때 파리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72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 동안 경직화되고 딱딱한 루이 14세의 통치에 지긋함을 느끼던 귀족들이 가볍고 즐거운 것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의 회화에서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거창한 화려함 ‘바로크’에서 섬세함, 우아한 아름다움, 어딘지 모를 서정성을 가진 가벼운 경쾌함 ‘로코코’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그림을 보게 된다면, 같은 그림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저자 나카노 교코는 부르봉을 대표하는 인물과 관련된 12점의 명화 및 그와 연관된 다수의 명화들을 함께 소개하면서 명화 속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가 역사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시대적 배경과 일화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저자 특유의 현장감이 돋보이는 묘사는 소설의 한 장면 혹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어,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부여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명화는 벨라스케스, 루벤스, 고야 같이 친숙한 거장 외에도 로코코 스타일의 초상화로 유명한 캉탱 드 라투르, 아카데미 화풍의 폴 들라로슈, 고대건축을 시적인 정취로 그라는 위베르 로베르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