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九屛山)’은 아홉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속리산 천황봉은 지아비산, 구병산은 지어미산, 금적산은 아들산”이라하여 이들을 ‘삼산’이라 일컫는다.
보은군에서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 구간을 ‘충북 알프스’로 부르고 있다.
‘시루봉(416.9m)’은 전국적으로 아주 흔한 이름으로 ‘증봉(甑峰)’이란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고유명사인 것.
배고픈 시절 김이 무럭무락 나는 떡시루가 연상되었으리라.
시루봉에선 참호와 ‘케레바50 진지’인 듯한 곳이 남아 있었다.
한국전쟁 때 국토의 중심부에다 이동구간인 이 지역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것.
구병산 자락에 폐허가 된 ‘토골사 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새기미재’는 ‘537.8m봉’과 ‘566.5m’봉의 안부지점.
경북 상주시와 충북 보은군 도계 구간으로 구석에 끼여서 ‘새기미재’ 라고 부른다는데, ‘새기미봉(537.8m)’은 여기에서 이름을 가져온 듯.
‘솔봉(505m)’은 소나무가 많아 ‘솔(松)봉’인가 하였으나 3~40년생 소나무가 있을 뿐이었다.
또 소나무가 있어 ‘솔봉’으로 부르다가 한문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率峰’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를 보아왔다.
그래서 월간산지의 ‘속봉’이 오기(誤記)가 아니길 바라며 감히 ‘솔봉(率峰)’이라고 적었다.
이는 ‘거느릴 솔(率)’자와 ‘무리 속(屬)’자의 뜻이 겹치기 때문이었고, 또 '率'자가 소나무(♧)를 닮아있지 아니한가?
나는 처음 성황당골을 경유하여 새기미재로 올라 솔봉을 찍은 뒤 남릉을 타고 시루봉을 답사할려고 하였으나 열공한 권형님의 강권에 따라 순서를 바꾸었다.
순서가 바뀌어 급경사(566.5m봉)인 험로가 은근히 염려스러웠으나 큰 무리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작은 염려가 앞서간 권형님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뒤틀리고 말았다.
"이리로 올라오지 마라이~ 산길이 너무 가팔라 도저히 올라 갈 수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신은 무사히 566.5m봉을 넘어 솔봉으로 갔고, 우리는 2배가 넘는 거리를 뺑뺑돌아 솔봉으로 갔다.
아흔이 코 앞인 권형님이 시골장터의 약장수가 되어 "아들은 가라, 아들은 저리 가라."라고 한 격이다.
이는 권형님이 우리 두 사람(한덤과 나)의 저질(?) 체력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고, 덕분에 우리는 수월하게 산행을 마칠 수가 있었다.
산행코스: 보은드론교육원-물탱크-안부-시루봉(왕복)-드론교육원-성황당골-새기미재-새기미봉(537.8m)-솔봉(505m,왕복)-성황당골-보은드론교육원(적암리경로당, 8.2km,4.5h)
지난 ☞ 충북알프스 구병산,서원리~적암리
<산길샘>
<월간산> 일부 수정하였음.
<월간산>
서원교~<충북알프스>~적암휴게소.
이동중 버스에서 장만한 표지기. 이는 정확한 산행 목적지를 확정짓지 못해서다.
네비엔 '보은드론교육원'을 입력하면 수월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산 위로 장엄한 구병산 자락이 펼쳐진다.
우리가 올라갈 시루봉은 물탱크 앞.
보은(피스퀘어)드론교육원(043-542-6568). 적암리경로당과 우리 버스가 대기한 주차장은 건물 좌측 끄트머리에 있다.
아스팔트를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우뚝한 시루봉을 올려다 본다.
좌측 정면으론 아홉 병풍의 구병산 주능.
시루봉을 향하다 뒤돌아보니 우리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지점이 구병산 낡은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이다. 건물은 '보은드론교육원'.
우리 버스가 머물렀던 주차장은 건물 우측에 있지만 화장실이 있는 구병산 대형주차장은 조금 더 아래에 있다.
<돌아본 모습> 드론연습장 컨테이너건물.
드론연습장에서 우측 포장임도를 따라 물탱크 방향으로 진행한다.
우측에 쫏볏한 시루봉이 보이고, 시루봉 좌측에 잘록한 안부가 보인다. 그곳이 접속할 지점.
물탱크를 지나...
등로 옆에 거대한 인공석조물(石造物).
수조(水槽)인 듯 보이나 기울어졌으니 쓸모가 없고, 중장비가 없으면 이 무거운 석조물을 옮길 수도 없을 터.
오롯이 난 산길을 아무런 의심없이 앞서간 사람들을 따랐더니...
산길은 좌측으로 살짝 휘어지다 우측 능선으로 붙는다.
그 오롯한 산길의 종착점은 이 묘지였다. 충주 지씨묘. 그러므로 이 트랙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 점선으로 처리했다.
나중에 되내려올 때 산길을 확인하니 물탱크 조금 위의 Y로 갈림길에서 우측 계곡으로 진입했어야 했다.
그래서 무조건 잘록한 계곡(건계곡)을 타고 올라야만 하는 것.
하는 수 없이 묘지 위쪽 능선으로 붙어 우측 잡목사이로 보이는 능선으로 갈아타야만 했다.
산사면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능선으로 접근.
갈아 탔더니 블록으로 쌓은 참호가 있다. 한국전쟁 때, 또는 그 후의 것인 듯.
시루봉은 조금 더 낮은 안부에 내려섰다가 암릉을 따라 올라야 하는 것.
이 안부('ㅏ'자 갈림길)가 계곡을 타고 올라오면 접속하게 될 지점이다.
가파른 암릉에서 배낭을 벗어 놓은 뒤...
시루봉에 올랐더니 작은 초소 건물.
그리고 중화기 진지. 내가 해안보초를 서면서 잠깐 다뤄보았던 대공기관총 '케레바 50'인 듯하다.
일제강점기의 포진지는 대개 해안가에 있는데, 그렇다면 이 페진지는 한국전쟁 때의 것인 듯.
시루봉에는 '시루떡바위'가 있다.
시루봉에 올라 표지기를 건 뒤...
기념촬영을 하였다. 정상석은 충청북도의 표준형 직사각형 오석.
살짝 비켜있는 전망 암릉에 누군가 공을 들인 오층석탑이 있다.
시루봉 오층석탑에서 바라보는 아홉병풍(九屛)이야말로 구병산에서 단연 으뜸.
경북과 충북의 도계(道界)다.
배낭을 회수한 뒤 마(魔)의 566.5m봉을 오르는데, 한덤 님의 전화기에 권형님에게서 걸려온 묵직한 신호음이 들린다.
"너거들은 이리로 올라오지 마라. 우리도 내려가야겠다."
그래서 '블록 참호지점'에서 골짜기를 보고 질러 내려갔다.
좌측 안부에서 골짜기를 따라 산길이 나있었고...
그 길은 아주 유순해.
무조건 골짜기를 따르다...
자연스레 우측으로 붙으면...
아까 무심코 올라갔던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아까는 직진으로 길이 너무 반듯해 망설일 念도 없이 바로 올라갔으나 내려와서 돌아보니 나무 막대기로 금줄을 두 개나 쳐놓았다.
무조건 골짜기로 들어가면 길이 있는데.
되내려온 지점의 물탱크.
시루봉을 돌아보고...
이제 성황당골을 올라간다.
계곡을 따르다...
계곡을 건너니 팔각정자.
구병산 절터 갈림길을 만나고...
다시 좌측으로 신선대 갈림길을 만난다.
널따란 산길 좌측으로 작은 건물이 보인다.
성황당이다.
앞뒤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성황당의 연륜을 대강 점쳐볼 수 있겠다.
병풍바위는 빙벽으로 변했고...
월간산지에 등로가 표시된 합수지점 좌측으론 길이 없고 가파르기만 하다.
그래서 우측 완만한 안부(445m, 새기미재)로 붙는다.
안부에 올라...
솔봉 방향으로 카메라를 갖다 댄다.
그리곤 한발한발 발품을 팔아 저질체력에 힘을 더한다.
그렇게 15분여 만에 537.8m봉(새기미봉)에 올라섰다. 이 봉우리가 솔봉 갈림길이기도 하다.
급하게 정상주를 곁들인 요기를 한 뒤 안부를 살짝 오르자 묘지가 있는 첫봉.
다음 봉우리가 솔봉인데, "어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네."
좌측 멀리 우람한 근육질의 산맥들이 꿈틀거린다.
"이래서 솔봉이었나? " 표지기가 달려있는 소나무는 수령 4~50년은 되어 보인다.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없어 이런저런 유추를 하며 추론을 하였으나 모두 타당성이 있어 뵌다.
나는 서두에 언급한 이유로 '率峰'이라고 적었다.
'새기미재' 안부로 돌아와 우측 성황당골 방향.
올라갈 때의 역순으로 성황당골을 내려와 계곡을 건너며 산행이 끝이 난다.
마지막 계곡에서 세수를 한 뒤 좌측으로 올려다 보는 시루봉.
계곡을 끼고 내려오면...
보은드론교육원 옆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보인다. 이 지점에서 구병산이 5.5km이고 더 위로 주차장이 없다는 이정표.
다시 보는 시루봉은 거대한 바위덩어리.
올려다 보는 구병산.
주차장에서 계곡 건너에 '적암경로당'이 있다.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은 정식 명칭이 '피스퀘어드론 교육원' 옆.
입구엔 낡은 구병산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의 화살표 방향은 아까 우리가 내려온 방향이고, 안내판 뒤론 처음 시루봉을 올라간 방향.
그 우측에 시루봉이 불끈 솟았다.
- 송년산행 -
주인 있는 개한테
물릴 뻔했다
겨울비 몇 줄기 몸속까지 파고들고
스산한 바람소리 성가시게 뒤따라왔다
낙엽 밟는 소리가 너는 좋으냐
낙엽은 온몸이 으스러지게 아파
울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한 사내가 소리를 질러댔다
야호 야호 돌아와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 깊은 계곡으로 떨어져 죽었다
한 해 농사 다 털어주고
갈 데 없는 까치집 한 채 끌어안고 서 있는
절 집 은행나무 한 그루
산아래 마을에선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다
젖은 낙엽 타듯 한 해를 보냈다
<윤 인 구>
첫댓글 구경 하고 갑이다
수고많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