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는 실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허구를 가미해 재구성했습니다."
에피소드 16. [대망(大望)의
그림자(부제: 살인멸구(殺人滅口) - ③]
S# 13. 통영 W조선소 인근 카페.
박 형사가 김도식 선수의 고향친구 백태훈을 만나고 있다.
박 형사 김 선수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백태훈 정의롭고 반듯한 아이입니다.
우리 때만해도 선배들에게 이유도 없이 기합을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 우리는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연스럽게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줬죠.
도식이는 그러질 않았어요.
그래서 후배들도 도식이를 믿고 따랐죠.
박 형사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으세요?
백태훈 도식이한테, 지난 달에 문자가
왔었어요.
박 형사 뭐라고 왔나요?
백태훈 (핸드폰 문자를 내보이며)
뜬금없이,
“조선소에 자리 하나 마련해 놔라. 내가
내려 간다”
백태훈 씨가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서 박 형사에게 보여준다.
박 형사가 핸드폰을 건네
받아 확인하고서,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로 채증한다.
박 형사 뭐 때문이라고 말은 안 하고요?
백태훈 네. 아니 자기 연봉이 얼마인데, 여길 내려 와서 막노동을 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선수 생활이
힘들거나,
슬럼프에 빠져서 술 취해서 보낸 거라 무심히 생각했죠.
작년에 절친한 친구들과 만난 적이 있었어요.
박 형사 그때는 어떻던가요?
백태훈 그때만 해도 도식이가 우리에게
“한 번도 축구를 하는 나 자신을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고, 축구인으로 사는
것을 행복으로 알았어요.
국립대 재학시절 4년 동안 주전을
맡았었거든요.
그리고, 이번 달 초에
제 싸이월드 방명록에 또다시,
“뭐하노, 조선소 내 자리 하나
남겨 나아라” 라고 글귀를 남기고요.
박 형사 이 날짜는 김 선수가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한 날짜인데요?
백태훈 네? 도식이가 여자 친구와 헤어져요?
박 형사 예.
백태훈 결혼까지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S# 14. 김도식 선수 누나의 집.
김 형사가 김도식 선수의 누나 집을 방문한다.
김민희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우리 도식이는 집 앞 슈퍼를 갈 때도 운동화를 신고 나갈 정도로
아주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이에요.
그런데, 동생의 시신 모습과 차는
제가 평소에 보아온 동생의 행동과 너무 달라요.
김 형사 어떤 점이요?
김민희 우선,
왜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신었는지, 저는
이해가 안가요.
다른 사람들도 그러질 않는데.
차 뒷좌석에서는 술병과 과자봉지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은 후에 자신의 깨끗한 모습을 남기기를 원하는데,
제 동생의 차는
지저분한 것은 물론이고, 과자를
좋아하지도 않는 동생이 과자를.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번개탄 자살, 연탄 자살’을 검색했다는데,
형사님이 조사를 하시고 계시니깐, 알
수 있으실 거에요.
선수생활은 물론, 가족, 금전, 여자 문제도 없는 아이가
갑자기 자살을 왜 해요?
김 형사 그건 저희도 수사를 하고 있으니깐요.
S# 15. 방송국 인근 카페.
김 팀장이 스포츠 전문 기자를 만나고 있다.
강력 팀장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기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박 선배가 만나보라고 해서 나오긴 했지만.
별로 해드릴 이야기는 없어요.
강력 팀장 네. 몇 가지 질문만 하고서 얼른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김 기자님은
슈틸리케 감독의 본 모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갓틸리케’? 아니면, ‘슈팅영개’가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하세요?
김 기자 (김 팀장의 얼굴을 확인하고)
축구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강력 팀장 아. 하하하.
저희 나이 대에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죠.
김 기자 사실, 슈틸리케 감독이
단기적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대처하는 것은 좋았어요.
부임 초기 백지나 마찬가지에서 시작해 꾸준히 좋은 분위기를 유지한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제가 지켜본 슈틸리케는
장기적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을 진행시키지는 못했던 거 같아요.
강력 팀장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얘기군요?
김 기자 예. 맞습니다. 그러다 보니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지도력이 흔들렸어요.
장점은 발전시키고 단점은 만회해야 팀이 강해지는데
이기고 지고를 떠나 전체 조직력이나 분위기가 잡혀가는 게 아니라.
강력 팀장 약 팀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다가 밑천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있던데요?
김 기자 그렇게까지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약 팀과의
경기에서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자신감만 부여하면 되는 거죠.
하지만
월드컵
본선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최종예선에서 강 팀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조직력이 필요해요.
끊임없이
선수를 바꾸면서 조직력이 헐거워졌고
그로
인해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죠.
팬들이
슈틸리케 감독의
장기적인
팀 운영에 실망하고 의문을 가질 만하죠.
강력 팀장 어떻게, 러시아 월드컵 본선은 갈 수 있을 거라 보세요?
김 기자 굳이 예상을 하자면
어렵게
아주 어렵게 살얼음판을 걷더라도 본선은 갈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처럼 하면 본선에서는 정말 힘들겠죠.
강력 팀장 그런데, 지금처럼 축구계에 승부조작이
만연하면,
앞으로가 더 문제잖아요?
김 기자 (김 팀장을 바라보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K리그는 세계에서 ‘승부조작’하기 가장 좋은 리그가 됐어요.
더군다나, 2008년 이후부터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가 판을 치면서
축구뿐만이
아니라, 야구, 농구, 배구
등 프로 스포츠는 물론이고
최초의
승부조작 사건인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을 시발로 해서 e-스포츠까지.
김 팀장님. 혹시
불법
스포츠도박 규모가 얼마인지 아세요?
강력 팀장 글쎄요? 약 10조 원이요?
김 기자 (피식 웃으며)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최소 74조 원이에요.
강력 팀장 네! 어마 어마 하네요.
김 기자 지난 달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서 2차 실태조사를 해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게,
전체 사행산업 규모가 100조 원 가량이고,
이중에, 74조 원이 ‘불법
도박’이에요.
강력 팀장 와~.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김 기자
조세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0∼30%,
무려 30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어요.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불법도박’이고,
어느 연구기관에서는 74조 원이 아니라,
심지어 100조 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요.
강력 팀장 기가 막히네요.
저도 책임의식을 가져야겠네요.
김 기자
제가 지금부터 팀장님께 말씀 드리려는
것이 그 부분이에요.
강력 팀장 예?
김 기자
다시 축구로 돌아와서,
정확한
진단을 해야 앞으로 갈 길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강력 팀장 당연하죠.
그래서 제가 김 기자님을 만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김 기자
네.
(탁자에 있는 티슈 하나를 꺼내고, 티슈에 볼펜으로 점을 찍는다)
모든
선은 점으로부터 시작해요.
축구도
마찬가지에요.
여기
선수 하나가 축구장에 서있어요.
이 선수는
하나의 ‘점’이에요.
점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나요?
강력 팀장 없죠.
김 기자 못 하죠. 왜?
선수
하나만 우두커니 서있으면,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죠. 당연히.
하지만, 옆에 점 한 개를 더 찍어 연결하면 이 선이 어디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 있어요.
그죠?
강력 팀장 예.
김 기자 축구는 선수 열 한 명이 하는 경기에요.
예를
들어서,
골키퍼가
윙백에게 드로잉을 하고,
다시
윙백은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공을 패스하고,
미드
필더는 또 다시 중앙 미드필더에게 공을 넘겨주고,
그렇게
공을 이리 저리 돌리며 적진을 향해 올라가다가, 기회를 봐서,
상대방
진영 깊숙이 들어가 있는 공격수를 향해서 공을 띄워주면,
공격수는
몸을 날려서 골을 넣는 것처럼
김도식 선수에게 공을 패스한 선수가 있을 거에요.
바로 옆에서!
강력 팀장 아~. 김도식 선수가 만약
프로축구 리그에서 ‘승부조작’을 하려는 조직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면,
연결고리가 있을 거란 얘기군요?
김 기자 반드시!
축구장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지는 않았을 거에요.
강력 팀장 (눈빛을 반짝이며 김 기자의 눈동자를 보며0
듣고 보니, 그렇겠네요.
김 팀장이 티슈에 그려진
선들을 유심히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