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화]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글 : 제이풍수사
글 게시일 : 2023. 9. 8.
일본 국보 제1호를 만들어 낸 신라인의 예술혼과 기예는 하늘의 작품이지 결코 사람의 것은 아니다. 현재 학교나 학원에서 미술의 데생을 배울 때 보통 서양의 비너스 상을 보고 그리는 현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미를 자랑하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배운다면 젊은이들에게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자에 「법보신문」에서 이 불상의 모조품을 학교에 무료로 기증한다는 소식은 참으로 고마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국보 제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비슷한 형식으로 1910년 경 후치가미가 데라우치에게 기증하였다. 데라우치는 환국하면서 이 불상을 총독부 박물관에 재 기증하여 지금에 이른다(국보 제78호)
그런데 1910년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발표에 맞추어 또 다른 불상이 서울에 나타났다. 이 불상도 상기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크기와 형태는 거의 같다. 높이가 83.2센티미터이고 후치가미 사다스케(淵上貞助)가 입수하여 초대 총독 데라우치에게 기증하면서 세상에 밝혀졌다. 현재 국보 제78호인 이 불상은 국보 제83호와 비교해 한층 고식적(古式的)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6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는 눈을 가늘게 내려 떠서 잔잔히 웃고 있는데, 얼굴에는 광대뼈가 약간 나오고, 어깨에 날리고 있는 날카로운 옷자락, 얕게 새겨진 옷주름 선, 끝이 뾰족한 목걸이, 보관의 치밀한 장식이 돋보인다. 이와 함께 다리의 U자형 선각 주름이나 어깨에서 앞뒤로 내려간 옷자락의 특성적인 처리 등은 세장(細長)한 형태와 함께 6세기 초 이래의 중국에서 유행한 반가사유상의 형식과 비슷하다.
이 불상은 데라우치가 은밀히 소장하다가 그가 1916년 총리대신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갈 때, 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해 지금에 전해진다. 그러나 후치가미 역시 불상의 출토지를 밝히지 않아 현재도 불상의 정확한 출토지를 모르고 있다. 이 불상은 1998년 6월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한국실 개관에 맞추어 특별전 출품을 위해 출국하였다. 이 때의 불상 보험 평가액은 3천5백30만 달러로 원화로는 4백80억 원에 이른다.
(참고:「한국문화재 비화」․이구열․한국미술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