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유종호)
문학평론가 유종호
어려서 배운 모어(母語)가 곧 시라고 얘기한 사람이 있다. 모어로 된 시야말로 진정한 시라고 말하는 맥락 속에서 토로한 소리다. 우리말 중에서도 토박이말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알아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인 릴케는 어린 시절이야말로 소중하고 당당한 기억의 보물창고라 하지 않는가?
토박이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실은 한자어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썰매가 설마(雪馬)에서 오고 봉숭아는 봉선화에서 왔다. 구두는 일어에서 왔다. 그러나 완전히 토착화되었다는 점에서 토박이말이라 치부한다고 해서 손해날 것은 없다.
공식적으로는 태양력을 따랐지만 실생활에서는 음력이 나날의 생활 질서를 관장하던 시골에서 자랐다. 그런 탓인지 초사흘 달에서 그믐달에 이르는 달의 변모를 챙겨보곤 했다. 낮에 나온 반달도 행복의 얼굴 같은 보름달도 좋았다. 늙마에 '초승달'이란 표제의 2행시를 적어 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토박이말을 모아본 글자 넣기 놀음이었다.
동짓달 빈 가지 사이로
돌아와 눈 흘기는 겨울 나그네
어려서 익힌 말이란 맥락에서 부연한다. 종달새가 표준말로 책정되었지만 노고지리가 좋았다. 우리 고향 쪽에서는 노고지리라 했기 때문이다. 남구만의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시조를 좋아했다.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는 대목이 있는 시는 일찌감치 나의 애송시가 되었다. 초승달과 달리 요즘 볼 수 없는 노고지리를 수없이 보고 지저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재수 없고 행복하지 못했던 우리 세대의 커다란 축복의 하나였다. 돌아보는 눈으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