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여야의정 협의체 의제를 놓고 충돌했다고 합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를 수습할 당정조차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날 국회에서 지역·필수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었는데, 추석 연휴 기간 응급 의료 체계 유지 대책과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 등을 논의한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한 대표와 한 총리가 의견 대립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제 제한 등 전제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의료계가 '2025년 의대 정원 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를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참여 명분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합니다.
한 대표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화를 당사자들끼리, 중재자들끼리 모여서 시작하자는 것 아니겠냐"며 "전제를 걸 이유도 의제를 제안할 이유도 없다. 의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하나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대표는 추석 전 여야의정 협의체를 가동해야 한다며 일부 의료 단체만 우선 참여하는 형태로 개문발차할 수 있다는 의지까지 드러낸 상태입니다.
한 대표는 "의사는 정부의 적이 아니다. 정부가 그렇게 생각한 적은 전혀 없다"면서 "정부도 의사의 적이 아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총리는 '2025년 의대 정원 문제는 의제로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그간 정부는 "2025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건 대입 수시 모집 등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큰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며 난색을 표해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수시접수가 마감이 된 상태에서 2025년 의대 정원 문제는 손을 댈 수가 없을 겁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공백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대학입시 수시전형이 시작되면 의사들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설 것이라는 건 정부의 희망에 불과했다.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의료 현장은 조금씩 소리 없이 무력화되고 있다. 응급환자들은 병원과 의사를 찾지 못해 길거리를 헤매고 암 환자들은 기약 없이 수술을 기다리며 애를 태운다. 국민들은 이럴 때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치료받기 어렵다면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정부는 의료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의대 정원의 대폭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의료계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으로 2000명 증원을 들고 나왔다고 의심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의료개혁에 대해서도 ‘개악’의 소지가 크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 의료개혁 자체에 대한 시비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반년 넘게 그에 대한 소모적 공방이 이어져 왔다. 문제는 의료체계 붕괴가 거론되기까지 정부가 제대로 대응해 왔느냐는 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정부는 의료체계가 별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전체 응급실 409개 중 404곳이 24시간 운영하고 있다며 붕괴를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평시 대비 73% 수준이 근무하고 있고 군의관을 투입해 공백을 메우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비상의료체계가 원활히 잘 가동되고 있다”며 “응급실 의사 부족은 원래부터 그랬다”고도 했다.
정부의 진단과 달리 의료 현장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전과 이후의 각종 수치가 이를 명확히 보여 준다. 119구급대가 환자 수용을 거부당해 다른 곳으로 이송한 건수가 사태 이전 대비 5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응급실 진료 제한 메시지는 23% 늘었고, 사태가 심화된 8월의 경우 52% 증가했다.
수술 건수는 급속히 줄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상급종합병원에서 시행된 6대 암 수술 건수가 16.8% 감소했다. 주요 암 수술을 도맡아 온 상급종합병원의 수술 역량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향후 사망률 등 건강 통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응급실 환자 내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7월 내원 응급환자 수는 342만 87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11만 5967명 대비 17% 감소했다. 반면에 응급환자 1000명당 사망률은 6.6명으로 전년 동기 5.7명보다 늘었다.
증가한 사망자 중 상당수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못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내원 환자 감소로 분모가 준 탓이라지만 설득력이 없다. 내원 환자가 줄면 사망자도 그에 비례해 감소하는 게 상식 아닌가.
정부는 여전히 현장을 떠난 의사들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국회에서 의료대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의에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했다”고 답했다. 정부 대책이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앞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고 하는가 하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전화할 수 있으면 중증이 아니다”라고 해 호된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현 사태를 의사들과의 ‘치킨게임’으로 인식하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듯하다.
정부가 밀어붙이면 치킨게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정부는 그만한 힘이 있다. 이 장관의 말처럼 전공의들이 영원히 버틸 수는 없다. 1년이든 2년이든 버티다가 언젠가는 의료 현장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문의 수천 명 배출 중단, 의대교육 파행으로 수년간 이어질 수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한 상황에서 대학병원 수련체계는 상당 기간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 와중에 의료 역량은 더 악화될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의사들의 의료 현장 이탈은 비판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 논리는 정부에 더 중하게 적용돼야 한다. 국민 건강에 대한 최종 책임자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떻게든 현 의료 공백 사태의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이유다.>서울신문. 임창용 논설위원
서울신문. 오피니언 [서울광장], 의정 갈등, 이겨도 이기는 게 아니다
정부와 당의 인식차가 여전해 협의체 출범도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일부 의료 단체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는 하지만 의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사협회 등 핵심 단체의 참여 없이는 협의체를 출범할 수 없다는 입장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제한 없는 논의, 합리적 추계를 통한 2026년 정원 결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도 요구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이날 SBS라디오에 나와 "의료개혁은 의대증원 문제만 포커스로 봐서 그러는데 필수의료패키지부터 해서 1년 8개월 이상 준비를 해온 사안"이라며 "모든 개혁들은 사실 반발이나 반대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저희는 그것을 꾸준히 추진을 해왔고, 이렇게 갈등상황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래서 뭐 사과를 한다거나 문책을 하는 것은 오히려 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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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길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서로 상대의 입장도 살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누가 이겨도 결국 그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