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 낟가리와 이천지의 붕어 떼
최 순 태
이천지(梨川池)는 내 고향 배천에서 우리 집 벼농사용 농업용수로 쓰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전용 저수지이다. 어린시절 배천 마을 동민들이 힘을 합쳐 보를 조성하였다. 우리 동네를 흐르는 냇가 양쪽으로 배나무가 널어서 있는 모습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동네에 소재한 못이란 의미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못이 생기기 전 그 일대에는 땅 밑에서 물이 나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다. 큰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어르신들은 붕어 치어(雉魚)와 새끼 잉어 등을 수시로 그 곳에 방류하였다.
못에는 물고기 외에도 골뱅이, 민물 새우가 많았고, 다레끼(바구니) 안에 된장을 넣고 물에 담가 두면 새우들이 바구니 속으로 들어와서 새우를 많이 잡았었다. 못 가장자리에 창포와 줄이 심어져 있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큰형님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을 때 내가 옆에서 보조를 한 기억이 새롭다.
가을에 벼 수확이 끝나고 수확된 벼를 말리기 위해 아버지와 가족들은 논둑에 낟가리를 만들었다. 논둑에서 우리 못 방향을 보니 성어(成魚)가 된 붕어가 떼를 지어서 헤엄치고 있었다. 마치 군대에서 병사들이 열병을 하는 것 같았다.
논둑에 쌓인 마른 벼는 리어카 등으로 집 안마당으로 옮겨져 한 밤중까지 탈곡기로 벼의 낟알을 털어내어야 했다. 탈곡된 벼는 멍석이나 도로에서 잘 말려 농림부의 추곡 수매에 참가하여 농가의 주요한 소득원이 되었다.
옛날부터 구황식물로 알려진 고구마는 이른 봄에 조그만 비닐하우스에서 땅에 묻어서 싹이 나서 어느 정도 자라면 가위로 적당하게 잘라 비가 오고 난 뒤 밭의 이랑에 옮겨 심어서 키운 뒤 가을이 되면 수확하였다.
하나뿐인 누님이 여름방학 때 구미에 사시는 둘째 고모 댁에 다녀오면서 호두나무 두 그루를 가져와 동네 뒤편 우리 밭에 심었다. 호두의 수확시기도 가을이다. 수확한 호두는 일부는 가족이 먹고 남는 것은 시장에서 팔았다.
큰 형님 내외와 조카들이 고향 집에서 같이 살았는데 아이들을 유난히도 귀여워했던 아버지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손자, 손녀들에게 호두와 대추를 마음껏 배불리 먹게 하였다.
우리 집의 뒷마당과 인근 밭의 감나무에는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열려서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홍시는 따로 보관하여 먹고, 단단한 감은 채반에 담아 홍시를 만들고, 나머지는 곶감을 만들기도 하였다.
벼, 고구마, 콩 등을 수확하고 나면 김장용 배추와 무를 뽑아야 했다. 원래 채소는 서리가 오기 전에 거두어 들여야 한다. 서리를 만나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얼거나 바람이 들기 때문이다. 무와 배추는 땅을 파서 지하에 보관해 놓았다가 겨울철 김장용으로 사용한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따서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양지에서 말린 태양초를 고춧가루로 만들어 따로 보관한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농촌의 농번기는 끝나고 본격적인 농한기가 시작된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와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 위하여 해마다 11월이 지나면 집안 마다 묘사를 지낸다. 이 때 풍성한 농작물과 음식으로 제단을 가득 채워서 정성을 다하여 제를 지내고 온 동민이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가을 산에 단풍이 드는 계절이 되면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의 총동창회 총회 및 운동회가 모교에서 성대하게 개최된다. 운동회 때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동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문들 중 남학생들은 각자 자기가 살아온 인생역정 때문에 얼굴이 조금은 변하였어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으나, 여학생들은 아주 많이 변하여 즉시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친구의 이름을 불러 난처한 일도 있었다.
농촌 지역의 초등학교 모임이기 때문에 각 기수별 동기들은 동기회별로 꽹과리, 장고, 북, 징 등 사물놀이 악기들을 치며 운동회 내내 신나게 즐겼다.
그래도 1년에 한번 공식적으로 그리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동창회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특히 작년에는 환갑을 맞아 단체로 직지사 근처의 연회장에서 합동 회갑연을 하였다.
나는 친구들로부터 어릴 때나 지금이나 거의 똑 같은 얼굴이란 말을 잘 듣는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기왕이면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고향 마을에는 우리와 같은 전주 최씨 성을 가진 집이 나의 집을 포함하여 3호가 있었는데 워낙 손이 귀한 집안이라 5촌 당숙님과 제종형님과 누님, 나머지 한 집은 10촌이 되는 친척이었다. 다른 집에서는 10촌은 먼 친척이나, 우리는 매우 가까웠다.
10촌 친척집에 나보다 나이가 어렸으나 촌수가 손위인 항렬이 아저씨, 아주머니인 아이가 여러 명 있었다. 종가집인 우리 집은 논과 밭이 많아 곡식이 풍족하였다. 친척집의 아이들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었는데 옥수수나 고구마를 큰솥에 삶아 놓으면 배불리 먹곤 하였다.
커가는 아이인지라 먹성이 좋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가난하였고 그들의 할아버지가 구두쇠여서 본인의 손자, 손녀에게 조차도 먹는 것을 통제하였기 때문이었다.
외가에는 다섯 분의 이모님이 계셨는데 그 중 제일 큰 이모님이 충청도 영동군 상촌면에 살고 계셨다. 이모님은 일찍 이모부님을 여의었고 혼자서 아들과 딸들을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다.
방학이면 김천 황금동에 사는 이종 사촌과 큰 이모 집에 놀러 갔었는데 이모님은 말린 감 껍질과 곶감을 우리에게 내놓으면서 먹으라고 하였다. 그 때 먹은 감은 참으로 달콤하고 맛있었다.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이었으나 지금은 이모네 집도 없고 이모님도 계시지 않는다. 큰 이모님이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떠난 탓이었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서는 담배를 재배하였는데 담배의 잎이 누런 색깔을 띠면 잎을
따서 우리 집 앞 사랑채에 만들어 놓은 담배 건조장에서 줄에 매달아 건조를 하였는데
연료로 갈탄을 사용하였다. 한 사람이 건조장에 거주하면서 수시로 건조상태를 점검하였다.
건조 상태가 좋으면 나라에서 수매를 할 때 좋은 등급을 받기 때문이었다. 건조장에서는 담배 마르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잘 마른 담배는 적당한 크기로 포장을 하여 수매하여 우리의 중요한 살림 밑천이 되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되면 밀잠자리와 빨간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뒤덮는다.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정감어린 풍경이다. 수확기의 벼를 먹기 위해 메뚜기들이 날아다니는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벼 수확기가 되면 논에서 메뚜기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인다. 학교에 다녀와서 우리들은 잡은 메뚜기를 강아지풀대에 끼우거나 소주 됫병에 담아서 집으로 운반하여 팬에서 볶아서 요리를 하였다. 요즈음은 별미에 속하나 그 때는 흔한 반찬이었다.
가을이 되면 신록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빨강, 노랑, 주황색 등으로 서서히 알록달록하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가을 산을 찾는 사람들로 전국의 단풍 명소들은 초만원을 이룬다.
계절은 어김없이 따뜻한 봄, 더운 여름, 서늘한 가을, 추운 겨울로 변해 간다. 봄이 되어 은행나무의 싹이 튼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어느새 노란 열매가 조롱조롱 열려서 땅에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나는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며, 모든 것이 풍성하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남은 봄이라고 볼 수 있고, 소년, 청년기를 여름으로, 장년기를 가을로, 노년기는 겨울로 비유가 가능할 것 같다.
요즈음은 장수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백세 가까이 살아온 연세대의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 가운데 65세에서 75세 사이가 황금기라고 전한다. 환갑이 조금 지난 나는 아직까지는 청춘인 셈이다.
아직은 젊은 나이이므로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제까지 하지 못한 일은 서서히 목표를 세워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댓글 농촌 마을의 가을 전경이 한 눈에 떠오르는 글 잘 읽었읍니다. 환갑을 갓 지난 선생님은 청춘이고 저는 인생의 황금기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이제 가을 이 서서히 익어 가는군요. 푸른 하늘에 흰구름을 보니,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니 제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 지난 날이 눈에 선합니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들이 지금은 너무나 멀리 가 버려서 그 때가 무척이나 그리워집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시간들은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 버렸고 정겨운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떠나 버려서 어쩐지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가을입니다. 이제는 더욱 허전해지고 더욱 쓸쓸해 질 시간만 남은 것 같습니다. 가을이 가고 나면 곧 추운 겨울이 올 테고 우리네 인생도 어느 순간 겨울이 곁에 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운 것들이 너무나 멀리 가 있어서 생각이 깊어지는 가을입니다.
고향 생각이 나네요. 그곳은 그리 화려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은 곳, 지금은 아는 사람도 몇 안되는 곳이지만
어린시절 그곳의 가을만큼은 풍성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겠지요.
옛날을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도시에서 자라 식물을 가꾸고 추수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갑자기 선생님의 고향처럼 전망좋은 곳에 살고싶은 생각이 굴뚝 같습니다. 가을 정취가 물씬나는 글 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나의 고향인듯 느껴 집니다. 사람도 살던 집도 그 자리에는 살던 냄새 모두가 사라졌습니다. 옹기종기
할아버지,할머니 엄마 아버지의 온 가족의 온기는 찬 바람에 날아가버리고 을씨년 스러운 빈터가 되어있는 고향집터가 나를 슬프게 한답니다.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어린시절을 글로 잘표현 하셨습니다. 농촌 출신이면 자기가 체험한것 같이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덕분에 내고향을 그리며 잘 읽었습니다.
농촌의 가을걷이와 일상들을 한 눈에 모두 볼 수 있는 글이군요 선생님의 인생 가을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오랫만에 농촌 가을의 풍성한 모습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글을 통하여 어릴 적 고향 농촌의 가을 풍경을 하나 하나 되살려 보게 됩니다. 옛 추억을 회상하며 잘 읽었습니다.
농촌의 가을 모습이 글 속에 펼쳐 집니다. 농사와 가을 수확, 형제자매 친척들이 얼기설기 엉켜 살아가는 모습, 동창회를 통한 이웃들과의 소통 등 한폭의 그림 속에 한 마을의 모습을 담아낸 것 같습니다. 생동감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향"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이 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정을 나누며 풍요롭게 살아오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옛일을 돌아보며 소박한 목표를 세우는 계절, 가을이 되길 기원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