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 후기]
낯섦의 길/민병옥
일상의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떠났다. 낯선 길은 가보지 않아 두렵기도 하지만 무언가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기대되는 희망이 있기에 그 길을 간다. 유스티노회 동문들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광안리 올리베따노 베네딕도 수녀원에 숙소를 잡았다.
낯선 그곳에 떠나옴은 일상의 지친 마음의 안식과 나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피정의 길이었다. 이틀 동안 미사와 강의를 들으면서 나를 찾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미사의 강론에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길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나 밀밭의 잡초인 가라지가 다름 아닌 나였구나 싶었다. 하느님께서는 좋은 밭으로 만들어 좋은 열매를 맺도록 이끄심을 알았다. 또 가라지(악인)를 뽑아버리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려주시며 끝없는 사랑을 베푸심을 느꼈다.
특강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길 위에서 수도자의 긴 여정을 통해 닦은 영성의 깊이와 베풂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깊은 감동으로 마음에 파고들었다. 해인글방을 둘러보면서 독자와의 주고받은 서신이 문서를 보관하는 서고에 가득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바닷가에 밀려오는 조가비에 말씀의 글귀를 적어 뽑기로 선물을 받았다. 그 글귀가 마음의 찌꺼기를 밀어내며 기쁨을 주었다.
신부님의 ‘가엾은 마음’을 주제로 한 강의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우치게 했다. 복음에서 ‘사마리아인이 강도에게 폭행당함’과 ‘돌아온 탕아’, ‘만 탈렌트나 빚진 종’의 비유에서 하느님은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들 비유는 현대를 사는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과학 만능 시대에 편승하여 하느님을 잊고 살아감이 하느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가엾은 마음이 들까 싶었다. 하느님의 가엾은 마음 즉 사랑을 전하는 길은 내려가고 다가가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돋는 실천의 복음화에 있다.
낯섦의 그곳에서 안식하고 피정하며 마음에 찌꺼기를 말끔히 비우고 정화하였다. 안식은 ‘중지하다’의 의미이기도 하다. 낯섦을 통해 새로운 것을 충전하여 삶의 활력을 얻는 것이다. 익숙한 곳의 삶은 변화 없는 안주의 삶이라면 낯섦은 떠남의 체험을 통해서 새로움을 얻을 수 있다.
언젠가 고교 동문회에서 설악산을 등반했다. 소청봉에서 일박하고 백담사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나는 공룡능선의 낯선 길을 택했다. 아무도 동행하려는 친구가 없어 혼자 갔다. 지도 하나 없이 그 길을 걸었다. 두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의미의 보상이 따랐으며 두고두고 어려운 삶의 길에 빛이 되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기 위해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불러낸다.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예’하고 길을 떠났다. 왜 길을 떠났을까? 떠남에서 그들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으며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이틀간 낯섦의 여정을 통해서 삶의 양식을 얻어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