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離騷)
아침에 내가 천진(天津)에서 수레를 출발하여
저녁엔 서극(西極)에 이른다.
봉황새 공경스럽게 깃대 받쳐들고
높이 훨훨 의젓이 길을 안내한다.
문득 나는 이 사막을 지나
적수(赤水)를 따라 노닐며 가는데
교룡(蛟龍)을 지휘하여 나룻터에 다리를 놓게 하고
서황(西皇)에 명령하여 나를 건너주게 하였다.
길은 멀고 험한 곳 많지만
여러 수레들 먼저 지름길로 가 기다리게 하고
부주산(不周山)을 따라 왼편으로 돌아
서해에서 만나기를 기약한다.
내 자신은 천 대의 수레를 모아
옥 수페바퀴 통을 가지런히 하고
욕망을 억누르며 속도를 조절해도
정신은 높이 아득한 곳으로 달려간다.
구가(九歌)를 연주하며 소무(韶舞)를 추며
한가한 날 즐겨도 본다.
하늘이 훤하게 밝은 곳으로 오르다가
문득 고향을 내려다 보니
내 하인 슬퍼하고, 내 말도 고향 그리워
우물쭈물 뒤돌아 보며 나아가지 않는다.
-이소곡의 부분-
朝發軔於天津兮 夕余至乎西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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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한문 원문은 생략합니다.
軔 ; 쇄기 인, --마차의 고임. 길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시인인 굴원이 지은 장편 서정시이다.(그렇다고 전해온다.) 수많은 비유와 의태어의 조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슬픔, 분노, 한탄과 신화적인 환상 세계로의 여행을 노래하고 있다. 초나라 문화는 황허 유역의 전통 중국 문화와는 다르다고 한다.
줄거리
《이소》는 자가 영균(靈均)이라는 인물의 1인칭 시점에서 묘사한 시다. 초반부에서 영균은 자신이 전욱의 후손임을 자처했고 인년 인월 인일(寅年 寅月 寅日)에 태어나서 뛰어난 재능을 자랑했다고 한다. 영균은 옛 선왕의 이상을 실현하는 주군(主君)을 위해서 분주하지만 오히려 간신들의 모함으로 인해 군주, 신하들과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굴원 자신도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간신들의 이간질하여 쫓겨났다. 이때는 진나라 백기 장군이 초나라 침범하던 때라고 한다.)
이권만을 쫓다가 세상을 알지 못한 영균은 타협을 거부하고 먼 곳으로 떠나게 된다. 여수(女嬃, 전통적으로는 굴원의 여동생이라고 함)는 말렸지만 영균은 원수(沅水, 원강), 상수(湘水, 상강)를 건너 남쪽에 위치한 창오산(蒼梧山)에 살고 있던 제순을 만나게 된다. 성철(聖哲)만이 천하를 다스린다는 제순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 영균은 자신의 주장에 확신을 갖고 하늘을 날아 곤륜(崑崙)의 현포에 도달하여 그곳에서 망서(望舒, 달의 마부), 비렴(飛廉, 바람의 신), 난황(鸞皇), 뇌사(雷師)를 비롯한 전설적인 신들을 거느리고 천계를 여행하게 된다. 이소는 천제(天帝)를 만나려고 했지만 천문(天門)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에 의해 거부당하고 만다. 영균은 복비(宓妃), 유융(有娀)의 딸(제곡의 아내), 유우(有虞)의 둘째 딸(소강의 아내)에게 구혼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전통 유학서에는 잘 다루지 않는 중국 전설이나 신화 세계를 다룬다. 초나라 문확 황허 지역의 중국 전통 문화와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한다..
중국의 전통 문학은 환상은 잘 다루지 않고, 사실이나 유교의 예의를 주로 다루므로 이소는 전통 문학과는 많이 다르다. 굴원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중국인은 굴원을 애국지사로 존경한다.
《이소》는 총 374구(句), 2,477자(字)로 구성되어 있다. 각 구의 길이는 반드시 같은 편이 아니지만 홀수 구는 "□□□△□□혜"(□□□△□□兮), 짝수 구는 "□□□△□□" 형식을 띠고 있다. 홀수 구의 △ 부분에는 '우'(于), '이'(以), '여'(與), '이'(而), '기'(其)를 비롯한 조사가 들어간다. 짝수 구는 각운(脚韻)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4구마다 운이 바뀐다. 끝 부분에는 4구로 구성된 '란'(亂) 부분이 부속되어 있다.
수사를 많이 사용하여 새로운 美를 창조하였다.
이 시보다 더 뒤에 나온 송옥(초 나라 시인으로 굴원과 송옥을 꼽는다.)의 시에는 수사로 더 화려하게 꾸몄다.
(중국 詩歌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각운이 들어가고,, 또 조사가 들어간다.
항우의 해하가에서도 兮가 들어간 것은 시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의미가 없는 조사를 넣은 것이다.)
초사는 후대의 중국 문학에 詩經에 버금가는 영향을 준다.
첫댓글 초사의 시인으로는 굴원과 송옥을 꼽습니다.
그러나 굴원을 한대의 시인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