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때리는 방법 / 이현아
매음 어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공산품과 인간의 다름없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생산 라인 결정권자의 파쇼젹이고 무책임한 횡포로 인해 지구상에서 재거되거나, 한물간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공산품의 수치스러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공산품에게 수치심이란 없다. 없나? 칫솔이 매대에서 구입을 당하면 일어나는 일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세 번씩 주인님의 입안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주인님의 입안에 여러 번 들어갈수록 솔은 벌어진다. 그리고 약 삼 개월이 지나면 주인님이 새로운 칫솔을 구매하므로 칫솔은 너덜너덜해진 채 쓰레기통으로, 쓰레기차로, 소각장으로 이동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칫솔은 칫솔이고 어떻게든 이를 닦을 수 있는 물건이다. 칫솔은 땅에 묻히거나 불에 타서 영영 사라진다. 매음 사장님, 나 기쁜 소식 있어요. 내가 오 년전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있는데요,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내년에 집 사준다고. 좋겠죠. 자기가 몇 달 전 사업을 시작했는데, 내년에 기업 가치가 백억쯤 될 것 같다고. 회사 매각하고 그걸로 내년에 집 사주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저도 그때쯤이면 오피스텔에 진짜로 사는 사람이 되는 거죠. 방이 두 개 있고 세면대와 샤워기가 분리된 복층 오피스텔 가끔 거기 누운 제 모습을 상상해요. 그때는 돈을 모으려고 악쓰지 않아도 되겠죠? 그냥 대학원이나 다니면 되겠죠. 가끔은 지금을 생각하면서 모든 걸 내던지고 복층 오피스텔의 2층에서 엎드려 울고 있겠죠. 저는 그런 제 모습을 생각하면 아 왜 눈물이 나지. 최근에 제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많이 죽었거든요…… 하나같이 수의를 입고 내 앞에 누워 있었죠. 많이 울었어요. 밤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다 떠올리고 수의를 입혀봤어요. 그런 상상은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근데 웃기는 건, 전 남자친구가 수의를 입은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았다는 거예요. 죽을 사람 같지가 않잖아요. 그렇게 돈을 잘 버는데. 그런데 사장님이 수의를 입은 모습은 왠지…… 상상이 되는 군요. 매음 에드바르 뭉크, 서야야 화가. 1863년 12월 12일에 태어나 1944년 1월 23일에 사망했다. 그는 죽음의 검은 천사 속에서 살았다고 묘사되는데, 어릴 적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신에게 뻬앗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작품의 주제가 되었고, 그 중 〈절규〉라는 작품이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 작품을 변형하여 50점 정도를 더 그렸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이 작품에 애정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를 〈절규〉 속의 고통스러운 인물로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그는 말년에 〈태양〉을 완성하고도 약 삼십 년을 더 살다가 팔십 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고령과 폐렴이 원인이었다. 뭉크의 이러한 가려진 생애와 더불어 〈태양〉 연작은 많은 정신병 환자에게 희망이 되기도 했다. 매음 야, 근데 네가 아무리 집을 사준다고 해도 내 용돈까지 챙겨주겠다는 건 아니잖아. 결국 나는 자가自家가 있어도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된다는 거지. 근데 봐봐, 너랑 나는 다르잖아. 나는 먹고살고 그렇게 하려면, 나를 팔 수밖에 없어요. 이상한 거 아니야. 난 그냥 내 몸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거야. 너도 알잖아, 다 세일즈야. 네가 집 사주는 거? 그걸 그냥 받는 것도 세일즈냐고? 야, 그걸 진짜로 믿는 병신이 어디 있니. 그냥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한 거,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서 너랑 다시 잘 지내보고 싶은 거지. 왜 웃어. 아, 이렇게 말하면 진짜 집 사주나? 매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영혼을 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아주 없애는 것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우리는 그것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보다는 그것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을 때리기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내 영혼을 때리는 것들은 내가 얼마나 맞아야 죽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무자비하다. 내 영혼은 소각장으로 가고 있다. 그곳엔 기능을 잃지 않은 칫솔이나 시계와 같은 것이 차분하게 버려져 있다.
ㅡ 계간 《문학동네》(2024, 가을호), 2024 문학동네 신인상 시 당선작 중 ----------------------------------
* 이현아 시인 1999생.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현재 이화여대 조형예술과 재학. 2024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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