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논란이 불거지면서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이 국회의원일 때부터 자신을 보필해온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거취를 어떻게 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 3명이 정씨의 국정 개입에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본 친박(親朴) 핵심들 사이에선 “유출된 ‘청와대 문건’에 나온 대로 3인방이 주기적으로 정윤회씨에게 현안 보고를 해왔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한, 박 대통령 역시 이들에 대한 신뢰를 접거나 관계를 끊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 친박계 중진은 “3인방은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2002년 한나라당 탈당과 복당 과정, 2007년 대선 경선 실패와 그뒤 평의원 시절, 2012년 대선 승리 등 16년간 박 대통령과 온갖 고락을 함께 해온 사람들”이라며 “박 대통령도 일단 이들의 말을 믿고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예상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방 사실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의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언급한 것도 3인방에 대한 신뢰를 시사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벌어진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뉴시스
또다른 친박 인사는 “박 대통령이 어떤 사람에 대해 완전히 믿음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믿게 되면 쉽게 신뢰를 거두는 성격이 아니다”라며 “그 사람이 대통령을 배신하거나 먼저 떠나지 않은 한 박 대통령은 그런 모습을 보였다”라고 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지난 2005년 6월 전여옥 당시 당 대변인의 “다음 대통령은 대학을 다닌 경험 있는 분이 되는 게 이 시대에 적절하다”라는 발언이 ‘학력 차별’ 논란으로 번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졸 출신인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이 발언에 네티즌들이 반발하면서 당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전 대변인의 사퇴 요구와 함께 한나라당 공격에 나섰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당 대변인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박 대통령은 그 당시 “이렇게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당 대표로서 사과한다”면서도 전 대변인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그는 전 대변인의 발언 전문을 구해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 대변인의 발언을 확인해보니 와전된 부분이 있었다. 전 대변인이 학력지상주의를 가진 것도 아니다”라고 했었다. 두 사람이 결별한 건 그 뒤 2007년 대선 경선 때 전여옥 당시 의원이 이명박 캠프로 가면서였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진영 의원이 당 정책위의장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진 의원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최측근이었지만, 다른 친박 핵심들과의 관계는 원활치 못했다. 특히 친박들은 진 의원이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때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던 것을 놓고 “진영은 무늬만 친박”이라고 비판했다. 진 의원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10년 8월 탈박(脫朴)을 선언했다.
당시 진 의원은 “친박 의원들의 울타리를 벗어나겠다는 거지 박근혜 전 대표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때만해도 상당수 친박들은 “이제 진영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진 의원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1년 반 정도가 지난 뒤 진 의원에게 당 정책위의장을 맡겼을 뿐 아니라, 대선 승리 뒤엔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과 박근혜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었다.
현 정부 들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에 임명된 친박 곽성문 전 의원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6월 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지역 상공인들과 술을 마시다 맥주병을 던진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패한 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아름다운 승복’을 했는데도, 곽 전 의원은 탈당해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곽 전 의원을 계속 ‘친박 울타리’에 있도록 했다. 곽 전 의원은 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 수석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렸고, 결국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이 됐다. 곽 전 의원은 사장 지원서에 “친박 그룹의 일원으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는 글을 적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 이재만 총무, 정호성 제1부속,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왼쪽부터).
하지만 친박 내에선 “이번에 3인방이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연관된 것으로 만약 드러난다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게 ‘배신’인데, 아마 이를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단순한 물의나 논란을 일으킨 차원이 아니라 3인방이 정말로 국정 운영을 놓고 적절치 못한 처신을 했다면 박 대통령은 아마 이를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맞아들일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최근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와 함께 여권에선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문고리 3인방’에 대한 퇴진론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