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씨, 오늘은 저번보다 더 힘들지도 몰라요. 우리 파이팅 합시다!”
김민정 씨가 주먹 쥔 손을 아래로 당기며 “으!” 한다. 힘을 잔뜩 주고 있다. 오늘은 큰 짐들이 많기 때문에 김민정 씨도, 직원도 힘내야 한다. 대형 가전 폐기물 처리를 요청했는데 오후에는 힘들다고 했다. 아침 일찍 준비해 부랴부랴 밀양으로 향한다. 다행히 오전 중에 도착해 세탁기부터 처리했다.
이제 점심을 먹으려는데 지난번에 헹거를 받고 싶다던 분께 메시지가 왔다. 김민정 씨께 밥을 먹고 만날지, 지금 전하고 밥을 먹으러 갈지 물었는데 배가 고프다고 했다.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말에 포장해서 오기로 하고, 그 분께 20분 뒤에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헹거도 필요한 사람의 품으로 떠났다.
아버지 댁에 앉아 김민정 씨가 좋아하는 기차를 보며 햄버거를 먹었다. 짐을 옮기다 보면 배가 고플 것 같아 치킨도 샀다. 좋아하는 기차와 좋아하는 치킨의 조합이라 맥주도 권했는데, 콜라로 마음을 달래겠다고 했다.
밥을 먹다가 수납장을 가지고 가겠다는 연락에 또 김민정 씨께 물었다, 지금 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유난히 무겁던 원목 수납장은 밀양의 어떤 교회로 떠났다. 수납장을 가져가며 고맙다고 커피 두 캔을 선물로 주셨다. 김민정 씨가 직원에게 하나 나누어 주셔서 식후 카페인을 충전했다. 김민정 씨도 오늘은 믹스 커피 대신 캔 커피를 마셨다.
이제 본격적으로 짐을 옮긴다. 아버지 댁에 신발이 참 많았다. 스무 켤레는 족히 넘어 보이는 신발을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완전히 새 신발도 있었다. 사놓고 잊고 또 사셨는지, 아껴두셨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김민정 씨께 “민정이 신발 이런 거, 좋은 거 하나 사줄게.” 하셨던 그 신발이다. 괜히 코끝이 찡해서 “김민정 씨, 아버지는 지네도 아닌데 신발이 참 많네요.” 했다. 김민정 씨가 크게 웃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며 짐 정리를 했다.
밥솥과 휴지는 김민정 씨 집에서 쓰고, 전자레인지는 이웃과 나누고, 장독대는 공동 식당에 필요할지 모르니 챙겨가기로 했다. 아버지 댁을 비우며 많은 것을 나눈다.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세월을 겪은 것은 스티커를 붙여 버린다. 스티커를 붙이면서도 연신 웃는다.
오늘 계약 해지를 할 수 있을까 싶어 관리사무소로 갔는데, 계약 해지와 보증금 반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해서 불가하다는 답을 들었다. 이번에도 이유는 ‘김민정 씨의 인감증명서가 필요해서’였다.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더 돌려받고 싶어서 김민정 씨 상황을 설명하고 계약 해지만 먼저 하고, 보증금 반환은 나중에 하면 안 되는지 물었는데 불가능하다고 했다. 임대차법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번에는 어머니 상속분만큼 법원 공탁 절차를 거친 후 김민정 씨가 보증금 반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보증금이 소액이라 김민정 씨가 대표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인감증명서는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후견인 선임이 끝난 후로 미뤄야 한다.
흙침대는 노부부가 가져 가셨다. 집에 흙침대가 하나 있는데, 할아버지와 따로 주무시고 싶어서 나눔을 받는다고 하셨다. 뚝딱뚝딱 침대를 분리하고, 어르신들을 도와 1층까지 침대를 옮겼다. 흙침대를 끝으로 완전히 집을 비웠다.
아버지 댁을 청소하며 50L 쓰레기봉투 열 장을 썼다. 한 사람의 흔적을 정리하는 데 500L가 든 셈이다. 텅 빈 집만큼 마음이 휑하다. 위장도 휑한 것 같아 저녁을 먹고 거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김민정 씨는 처음으로 밥 대신 빵을 먹고 싶다고 했고, 밀양 빵집을 검색해 빵을 먹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민정 씨께 ‘아버지 댁 정리하느라 고생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 김민정 씨도 직원의 팔을 쓰다듬으며 “예, 예.”라고 했다. ‘직원도 고생 많았다’는 말로 짐작했다. 괜히 또 눈물이 났다. 쓰레기 버리러 갈 땐 맑던 하늘이, 돌아가는 길에 비를 내려서 그런가 보다.
2026년 6월 23일 화요일, 구주영
한 사람이 떠난 후, 정리할 일들이 참 많지요. 슬퍼할 겨를도 없어요. 어쩌면 그 일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그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을 서서히 시간을 들여 받아들이게 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유족이 직접 감당하는 게 참 중요하겠다 싶고요. 김민정 씨 몫, 김민정 씨가 감당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은혜
'직원의 팔을 쓰다듬으며 "예, 예."라고 했다.' 민정 씨, 고마워요. 구주영 선생님, 고마워요. 이렇게 일을 하니 몸이 아프죠. 신아름
장례식에서도 김민정 씨는 덤덤한데 구주영 선생님이 많이 우셨지요. 텅 빈 아버지 방 사진을 보며 돌아오는 길에 흘렸을 선생님의 눈물을 짐작합니다. 4월 13일 입원 소식을 듣고 오늘 정리하고 돌아오기까지 두 달 열흘이 걸렸네요.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월평
첫댓글 '김민정 씨도 직원의 팔을 쓰다듬으며 “예, 예.”라고 했다.'
아버지 댁을 정리하느라 김민정 씨, 구주영 선생님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