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서울대학교 재학생을 망치로 내려친 후 도주한 일명 ‘서울대 망치’가 지난 16일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대 망치는 서울대에서 15년간 절도 행위를 벌여 온 유명한 인물이었다. 절도에 그치지 않고 급기야 폭행까지 저지른 것. 폭행 사건 후 자취를 감췄던 그가 3개월 만에 다시 캠퍼스에 출몰해 학생들은 경악했다. 이토록 그가 서울대를 떠나지 못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서울대 망치의 그간 행적을 추적해봤다.
‘서울대 망치’ 이 아무개 씨(42)가 강도 상해, 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됐을 때 일부 서울대 학생들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전에도 이 씨는 서울대에서 상습 절도 혐의로 네 차례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씨의 최근 복역기간은 1년 6개월로 2011년 5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에도 이 씨는 서울대에 다시 나타나 절도 행위를 이어나갔다. 2013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21회에 걸쳐 서울대 행정실, 사무실, 주차된 차량 등을 망치로 깨고 현금 211만 원과 식권 95장을 탈취했다. 지난해 7월 새벽 3시경 서울대 미대 사무실에 침입해 교직원의 현금 20만 원을 훔치는 등 이 씨는 주로 심야시간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왔다.
전과 4범의 이 씨지만, 학생한테 상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1월 12일 새벽 2시경 이 씨는 물건을 훔칠 목적으로 서울대 음악대 행정실 유리창을 망치로 깨고 침입했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던 박 아무개 씨(22)는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복도로 나왔고 이 씨를 붙잡았다. 당황한 이 씨는 손에 들고 있던 망치로 박 씨의 머리를 때리고 도망쳤다.
범행 장소는 이 씨가 평소 자주 들락거리던 곳인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건물 4층, 출입문에 자동 잠금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몇 개의 건물 중 하나였다. 게다가 교수, 연구원, 작곡과 학생 등이 늦게까지 공부하는 건물로 24시간 개방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서 10년 넘게 상주하다시피 한 이 씨는 교내 보안시스템을 훤히 꿰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한 경비원은 “이 씨가 주로 생활과학대학 7층 옥상으로 가는 계단과 인문대 근처에서 어슬렁댄다. 이곳은 경비원이 건물 안쪽에서 문을 잠가야 한다. 보통 자정쯤 1층 출입문을 모두 잠그는데 밤늦게 귀가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문을 열고 나가면 또 입구가 개방된다. 이 씨는 잠깐 사이에 침입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망치로 얻어맞은 박 씨는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다. 머리에 13바늘 꿰매는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은 박 씨는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같은 과 친구들은 전했다.
경찰은 이 씨가 범행 현장에 떨어뜨린 안경과 모자에서 DNA를 채취해 신원을 확인하고, CCTV 분석을 통해 이 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또 이 씨가 나타날 만한 곳을 지정해 서울대 캠퍼스 교직원뿐 아니라 신림동, 낙성대 인근 주민들에게도 이 씨의 얼굴을 알려주고 연락망을 구축했다.
범행 후 3개월이 지난 4월 16일 경찰은 서울대 교직원으로부터 이 씨를 학교에서 봤다는 제보를 받고 즉시 출동했고, 학교 본관 옆 벤치에 앉아있던 이 씨를 검거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생계형 범죄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그동안 일정한 주거지도 없이 서울대 빈 강의실에서 잠을 자고, 훔친 식권 등으로 학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또 신림동 고시촌 인근 PC방과 만화방을 전전하며 생활해왔다.
이 씨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한 후 구직활동 없이 20대부터 15년간 쭉 서울대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는 ‘가진 자’와 ‘배운 자’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생들에게 이 정도 피해는 아무렇지 않다”고 진술하는 등 이 씨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의 폭행 사건이 서울대 학생들에겐 교내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재학생들끼리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외부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총학생회에선 교육환경개선협의회를 열어 허술한 경비 시스템을 보완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서울대 총학생회 부회장 김예나 씨는 “각 단과대학 도서관, 강의실 등에서 도난 사건이 워낙 빈번했었다”며 “지금까지는 도난 사건이나 외부인 출입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도 교내 안전에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