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를 쌓음 롬2:4~5절 2024.3.24. 주일 오전
* 비판할 자질이 없음
인간이 남을 판단하게 되는 것은 선과 악의 시선으로 행위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즉 행위를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로 구분 지어 놓고 보기 때문에 소위 선한 행위를 한 자가 악한 행위를 한 자를 판단하게 됩니다. 욥과 욥의 세친구의 대화의 기준도 결국은 선과 악이었습니다. 재앙을 받은 욥을 향해서 '네가 죄를 지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욥의 친구들이나 '내가 언제 악을 행했던가'라고 말하는 욥이나 이들은 똑같이 선과 악이 기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은 행하고 악은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고 오늘날 우리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악을 행하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이 생각이 결국 인간을 판단하게 만듭니다. '나는 선한 일을 했다'라는 생각이 자신에게 굳어질 때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선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행위가 선의 기준으로 굳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남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기를 인간은 예배를 드려도 죄인이고 십일조를 해도 죄인이고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해도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행위가 선의 기준이 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하루에 성경을 5장은 봐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이 곧 선이 되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5장을 보지 못한 것은 악으로 규정됩니다. 교회가 일년에 5명을 전도하자고 목표를 세웠다면 5명을 전도한 사람은 교회에서 의가 되지만 전도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열심히 없는 악한 성도로 전락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판단 자체가 악이라 합니다. 즉 인간이 선악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그 자체를 이미 악으로 말씀합니다. 이렇게 선악을 기준으로 행위를 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는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노는 악한 일을 한 사람과 선한 일을 한 사람을 구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롬1:18~21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는 모든 자에게 내려지는 진노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것은 창조된 인간의 원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자신이 왕이 된 채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재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해서 진노하신다면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진노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잃어버린 원래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진노의 기준이 되어서 우리를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선한 일을 해도 이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해도 그것으로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선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만한 영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드러낼 선이 무엇이며, 남을 비판하고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오늘 본문 4절에서도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많이 강조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해야 성도되고 회개해야 구원받는 것처럼 강조하다 보니까 결국 회개하는 것이 선의 기준으로 존재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자연히 악에 속한 것이 되고 회개한 사람은 선에 속한 사람으로 판단 되어버리기 때문에 고의적으로라도 회개하려고 하는 것이 지금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회개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모습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4절에서는 하나님이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죄인이 회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회개로 인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회개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싶어서 회개해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한 것은 다만 인간의 뉘우침이고 종교적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자하심을 아는 성도라면 회개를 하고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신을 인도하셨음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자신의 공로로 앞세워서 자신의 회개를 선의 기준으로 삼아버리고 회개치 않은 자들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나를 용납하시고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를 했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를 인도하신 결과이지 결코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남이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판단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회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구로 삼아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만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한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끝까지 자기의 고집을 내세웁니다. 창조된 원래 인간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선악을 기준으로 해서 자신의 선을 높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것은 선한 행동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까? 그 고집이 버려셔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그 고집을 두고 살 때 나에 의해서 누군가가 판단되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판단이란 곧 심판을 의미합니다. 나 또한 하나님의 판단 아래 있는 죄인인데 내가 누구를 판단하겠습니까? 이런 마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은 인간의 선한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보겠다는 것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무엇을 하고 바친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것은 '나에게는 의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과 너무 다른 죄인이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행함이 필요합니까?
* 하나님의 진노에서 사는 길
하나님이 원하신 행함은 인간의 손을 통해서 보여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린 다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이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 탄식해야 했던 것입니다. 행함이란 예수님을 통해서 완벽하게 보여졌습니다. 우리가 드러낼 수 없는 모습들이 주님을 통해서 완벽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 자신의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거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의도를 버려야 합니다. 주님으로만 감사할 때 그것만으로 하나님은 기뻐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만족하신 ‘의’이시고 영광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필요한 것은 그분만이 죄 용서요, ‘의’이시며,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의요, 그리스도가 없으면 죄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그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고 죄악으로 구성된 인간의 본질을 깨닫아 예수 아니면 전혀 희망이 없는 자라고 고백하며 예수님만을 붙들고 생명인 것을 자랑할 때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영광인 것입니다. 인간 세계에는 모든 것이 죄악으로 구성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저주받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미 인간의 머리 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노아 때에 내린 하나님의 진노,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하나님의 진노를 인간은 그 누구도 거부하거나 피할 자는 없습니다. 도리어 인간들의 삶이란 생각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그 진노를 매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고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지 않으면 무서운 불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길은 떡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재물이나 세상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다시 태어나 내가 아닌 예수로 살아갈 때 즉 예수가 나의 의로 살아날 때 만이 인간이 사는 길이 됩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존재할 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 중심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고 예수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이 의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종교의식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교회서 가르치는 열심 있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예수님만을 존귀하게 하기 위해서 그분만을 높이고, 진실로 사랑하고, 내 마음에 가장 값진 보배로 자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이 진노에서 사는 생명의 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