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를 읽는 오전
김혜영
그 마을에 눈이 내리네
계단을 올라가는 천사, 눈이 파란 꼬마가 누나에게 묻네
사랑하면 물어뜯는 거야? 목덜미를 깨무는 아빠는
죽지 않는 거지?
그 마을에 낙엽이 내리네
아무도 쓸지 않는 낙엽이 쌓인 길을 달리는 마차
나란히 앉은 연인은 황금빛 노을로 사라지네
노란 천사가 달리는 마차를 멈추네 호숫가로 가지 말아요
난 당신을 건드리지 않아
연인은 낙엽이 쌓인 하늘로 걸어가네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는 바람을 눈 위에 쌓고
남자는 그녀의 침대를 뒤지고 겁에 질린 하녀는
긍정적인 대답만 하네 감자도 여물고 양배추도
다 자랐는데 남자는 말이 없네
전쟁이 시작되었네. 사춘기 꼬마가 침대에
두 손이 묶여 있네 수음하는 아이의 떨리는 눈동자
목사 아빠가 저녁 식사를 금지하네
하얗게 질려가는 아이들
새의 목에 십자가처럼 꽂은 가위, 불이 났어요
아빠, 귀걸이가
필요하지 않아요. 난 엄마가 아니에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천국, 검은 침묵 속에서
천사가 입을 벌리네. 프로이드를 읽는 오전
—《현대시학》 200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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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 1966년 경남 고성 출생. 1997년 《현대시》로 등단. 부산대 영어영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 졸업. 시집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평론집 『메두사와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