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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항산 김승석
주말 농부로 변신한지 어언 스물 한해가 지났습니다. 해마다 쇠약해가는 몸으로는 농사일이 힘들고 버겁다고 느끼지만 춘분이 지나면 감귤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 키위나무, 무화과나무 등의 가지치기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통풍이 원활하고 햇볕이 잘 들도록 해야만 나무가 병드는 걸 막고 균형 있게 자라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부터 3월 중순까지 예년에 비해 비가 자주 와서 땅의 습도가 높은 편입니다. 햇빛과 통풍이 부족하면 생기는 감귤 이파리의 흰 가루 병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강한 전지剪枝를 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 3월 말경에 접어들면서 일조량이 많아지고 기온도 상승하여 감나무와 밤나무에는 연분홍색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춘분 무렵 우아하게 순백의 꽃을 피운 목련은 서둘러 낙화를 하고 그 자리에 연두색 새싹을 틔우고 있고, 그 옆 만개한 하얀 벚꽃과 분홍색 복사꽃과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청명을 사나흘 앞두고 전정剪定하기 위해 가위와 톱을 허리에 차고 과원에 들어섰습니다. 아직은 뿌리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올리지 못한 탓인지 겨우내 쪼글쪼글해진 감귤나무 이파리는 주름이 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나무는 봄에 뿌리에서 물을 빨아 올려 꽃을 먼저 피운 후 연분홍색 새싹이 돋아나고 그로부터 이삼일 지나면 어두운 분홍색이 되었다가 연한 새순의 색, 그 다음엔 녹엽의 색 등으로 순차 변해 갑니다. 제일 늦둥이는 대추나무입니다. 이러한 초색생명들의 변화는 “색체는 빛의 고통이다”라고 괴테가 말했듯이 일조량과 통풍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란야 농원은 제 안식처입니다. 그리 넓지 않지만 이곳에 갖가지 나무들이 빙 둘러쳐져 있고 여러 종류의 화초들이 철따라 피어나고 있어서 고요하고 아늑하기 때문입니다. 가지치기나 잡초를 뽑을 때는 온갖 망념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로움을 만끽합니다.
가지치기의 과정을 내 삶의 루틴routine에 가져와서 어떻게 유용하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 왔습니다. 제 마음의 흐름에 잠재해 있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 성냄, 자만 등은 지문처럼 뿌리를 내려 언제든지 나무의 우듬지가 해바라기를 하듯이 새싹을 틔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이를 습기習氣라고 표현하는데,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깨어나게 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일찍이 제가 배우고 익힌 붓다의 위없는 가르침(sāsana) 가운데, 가슴속에 깊이 새겨둔 『법구경』의 여러 게송(偈頌, gāthā)들을 가려 뽑아서 ‘육구게’로 만들어 암송하면서 그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내 마음의 게송’이라고 이름 붙이고 탐·진·치 삼독을 씻어내는 물 없는 목욕에 빗대고 있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불취어상不取於相’의 마음과 같다고 할까요.
“진리 가운데 ‘사성제’가 최상이다. / 길 가운데 ‘팔정도’가 최상이다. / 행복 가운데 열반이 최상이다. / 사랑 가운데 자애(mettā)가 최상이다. / 온갖 영약 가운데 모든 것의 무자성無自性을 깨닫는 것이 최상이다. / 참을성[忍辱] 가운데 관용이 최상이다.”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는 빠알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다섯 번째인 『쿳다까 니까야』의 여덟 번째 경전으로 직계제자인 264분 장로 스님들(테라)의 1,279개 게송(가타)이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망팔望八을 바라보는 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사리뿟따 존자의 게송이 있습니다.
“나는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 나는 삶을 바라지 않습니다. / 나는 알아차리고[正知] 마음 챙기면서[正念] / 이 몸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이 게송을 읊조리고 나면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 사념처 수행에 매진하여야겠다는 열의가 타오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제8품(依法出生分)에서 세존께서 “이 법문 가운데서 단지 네 구절로 된 게송(四句偈)이라도 뽑아내어 남들에게 상세히 가르쳐주고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이것이 이로 인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더 많은 공덕의 무더기를 쌓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금강경』의 제32품(應化非眞分)의 사구게, 즉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는 오언절구입니다. 이 게송은 한문으로는 20음절(=5x4)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형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마음은 수많은 생각들과 느낌들에 의해 동요합니다. 속이 쓰리면 약을 먹어야 하듯이 번뇌 망상에 사로잡힌 마음을 멈추기 위해서는 게송을 읊조리는 게 효험의 좋은 약이 됩니다.
저는 이런 순서로 게송을 읊조립니다. ➀ 편안하게 좌정합니다.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➁ 눈을 지그시 감고 느리게 길게 들숨과 날숨을 약 3분 정도 반복합니다. ➂ 숨이 조용해지고 숨에 집중이 됐다고 느끼면 숨을 들이 쉬고 숨을 내쉬는 찰나에 게송의 한 구절씩을 읊조립니다. ➃ 게송이 끝날 때까지 반복합니다.
숨결이 미세해져 고요한 마음 상태에 도달하면 게송의 한 구절에 10∼16개의 음절이 들어 있더라도 단숨에 게송을 외울 수 있습니다. 게송을 읊조리는 순간에 잡념이 생길 수도 있으나,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냥 잡념이 일어났음을 즉시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가면 그 잡념은 불현듯 사라져버리고 다시 게송을 이어서 읊조릴 수가 있습니다.
붓다의 호흡관법은 수행자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게송의 읊조림은 깨닫기로 가는 나침판 역할을 합니다.
첫댓글 .. 가지치기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육구게
“진리 가운데 ‘사성제’가 최상이다.
/ 길 가운데 ‘팔정도’가 최상이다.
/ 행복 가운데 열반이 최상이다.
/ 사랑 가운데 자애(mettā)가 최상이다.
/ 온갖 영약 가운데 모든 것의 무자성無自性을 깨닫는 것이 최상이다.
/ 참을성[忍辱] 가운데 관용이 최상이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