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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꽃별별 원문보기 글쓴이: 꽃별
[카푸치노와 쿨치키 이야기]
멜란즈
비엔나의 대표적인 커피 스타일인 멜란즈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자. 멜란즈는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스타일의 카푸치노와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보다도 터키에 더 가깝게 있던 이탈리아에서는 일찍부터 커피콩을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을 내려서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있었다. 카푸치노라는 말의 유래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카푸친(Capuchin) 수도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카푸친 수도승들은 밤낮으로 기도와 수행에 정진해야하기 때문에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검은 커피 내린 물을 마치 한약처럼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카푸치노(Cappuccino)는 밀크와 설탕을 함께 넣어 마시는 것이다. 카푸치노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밀크의 품질과 온도이다. 미세한 공기방울을 혼합시켜 밀크의 거품을 만드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카페 데멜(Demel)
일반적으로 카푸치노라고 하면 에스프레소 커피 3분의 1, 스팀 밀크 3분의 1, 거품(휘핑) 밀크 3분의 1로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에스프레소 커피 3분의 1, 거품 밀크 3분의 2를 섞는 것이다. '드라이 카푸치노'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밀크를 적게 넣은 것을 말한다. 냉 카푸치노(Iced cappuccino)도 있다. 카푸치노 프레도(Freddo)라고도 부른다. 말로는 냉 카푸치노이지만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거품 밀크를 얹는 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차가운 거품 밀크를 뜨거운 커피에 얹으면 보통 즉시 차가운 기운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거품 밀크를 얹기 전에 얼음을 한 덩어리 섞는 것이다. 이를 냉카페라테(Iced caffe latte)라고 부른다. 라테는 라틴어로 밀크라는 뜻이다. 프랑스어로는 캬페올레에서 볼수 있듯이 레(Lait)라고 한다. 아무튼 거품 밀크는 차갑게, 그 아래의 커피는 뜨겁게 마시는 것이 패션이 된 때도 있었다.
비엔나를 포위한 터키군의 카라 무스타파 파샤(Kara Mustafa Pasha: 1634-1683)
카푸치노에서 커피의 쓴 맛을 덜게 하기 위해 밀크나 꿀을 넣는 습관은 유명한 카푸친 수도승인 마르코 다비아노(Marco d'Aviano)가 원조라는 얘기가 있다. 복자(福者)로서 존경을 받았던 다비아노는 비엔나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레오폴드1세와 가깝게 지내면서 커피 타임을 자주 가졌다고 한다. 신앙심이 깊은 레오폴드1세는 비엔나에서 카푸친 수도원이 활동하는 것을 크게 지원하였다. 오늘날 합스부르크 왕조의 납골당 겸 영묘인 카이저그루프트(Kaisergruft)가 실은 카푸친 수도원에 속한 교회의 지하에 설치된것도 이러한 사연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다비아노 수도승은 비엔나 궁정에 커피를 마실때 밀크와 설탕 또는 꿀을 타서 마시는 관습을 전파시켰고 이것이 오늘날 멜란즈의 시조였다는 얘기다.
비엔나의 카푸치너키르헤(Kapuzinerkirche)
비엔나에 처음으로 커피를 전파한 사람이 쿨치키(콜쉬츠키)라는 사람이라는 얘기는 이미 언급한바 있다. 터키의 2차 비엔나 공성 때에 쿨치키가 오토만 터키 진영에 잠입하여 비엔나에 유리한 정보를 캐내왔기 때문에 터키군이 퇴각한후 비엔나 방어군 사령관으로부터 보상으로 터키 군이 남기고 간 커피콩을 받았으며 비엔나에 최초의 커피 하우스를 내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또 다른 스토리도 있다. 우선 비엔나 커피 및 비엔나 카페의 아버지라고 하는 쿨치키라는 사람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자. 쿨치키는 어떤 사람인가? 상인 겸 스파이 겸 외교관 겸 군인이었다. 쿨치키의 본명은 프란치체크 예르치 쿨치키(Franciszek Jerzy Kulczycki)이다. 독일어권에서는 그의 이름을 간혹 게오르그 프란츠 콜쉬츠키(Georg Franz Koschitzky)라고 부른다. 쿨치키가 되었든 콜쉬츠키가 되었든 같은 사람이다. 1640년 지금은 우크라이나인 삼보르(Sambor) 부근인 쿨치체(Kulczyce)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쿨치키라는 이름도 콜치스라는 마을이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쿨추키의 부모는 원래 폴란드인으로서 종교도 정교회였다. 때문에 정교회인 쿨츠키가 로마가톨릭인 신성로마제국을 위해 헌신한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그건 그렇고, 어려서부터 영민했던 쿨치키는 특히 어학에 재능이 있어서 터키어를 습득했으며 터키 문화에 대하여도 깊은 연구를 하였다. 청년이 된 쿨치키는 베오그라드(유고슬라비아)에 있는 오스트리아 동방회사(Orientalische Handelskimpagnie)에 입사하여 통역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터키를 자주 왕래했던 그는 돈을 많이 벌어 나중에는 자기의 개인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비엔나를 포위하고 있는 터키군을 몰아내기 위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폴란드 왕 얀 조비에스키
1683년 오토만 터키군이 비엔나를 포위하고 치열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을 때 쿨치키는 비엔나에 있었다. 바야흐로 비엔나의 운명은 노도와 같이 몰려온 터키군의 공성으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시의회의 일각에서는 아예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터키에게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신성로마제국은 로렌인(Lorraine)의 샤를르(Charles) 공작에게 구원병을 요청키로 하고 연락병을 모집했으나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설에는 폴란드의 소비에스키 왕에게 연락하는 임무였다고 한다. 쿨치키가 앞으로 나서서 자원했다. 당시 쿨치키는 비엔나 군대에 입대하여 있었다. 장사속이 깊은 쿨치키는 어차피 비엔나에 가만히 있어도 피해를 볼 것이므로 이 참에 샤를르 대공에게 밀사로 파견되어 성공하면 큰 영광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쿨치키는 충실한 하인 예르치 미하일로비치(Jerzy Michalovic)와 함께 공성중인 터키 군영을 뚫고 프랑스로 향하였다.
터키인의 복장을 한 게오르그 프란츠 콜트쉬츠키(콜쉬츠키) - 예르치 프란치체크 쿨치키
터키인으로 변장한 쿨치키와 하인은 검문을 받으면 유창한 터키말을 하고 터키 노래를 불러 의심을 사지 않았다. 로레인의 샤를르 공작을 만난 쿨치키는 즉시 공작으로부터 곧 구원병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또 다시 구사일생으로 터키 진영을 통과하여 비엔나에 돌아 왔다. 일설에는 소비에스키 폴란드 왕을 만나 구원병을 즉시 파견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쨋든 구원병이 올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은 비엔나 시의회는 '아니, 누가 항복하자고 그랬어? 말도 안된다! 죽기까지 항전하자!'라면서 최후의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갔다. 터키군의 오랜 공성으로 비엔나에는 음식이 부족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지만 모두들 합심하여 터키군의 공격을 용케도 막아냈다. 얼마후 폴란드 왕 얀 조비에스키(Jan Sobieski)가 이끄는 기독교 군대가 비엔나로 달려 왔고 이어 샤를르 대공이 이끄는 군대도 비엔나를 향하여 진격하였다.
레오폴드1세(1640-1705)
폴란드 왕 조비에스키의 결사적 습격과 샤를를 대공의 후방 공격으로 터키군은 퇴각하였으며 비엔나는 공성에서 풀려났다. 비엔나 시민들은 쿨치키의 영웅적인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나중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오스트리아 대공이 된 레오폴드1세는 자기와 동갑인 쿨치키의 노고를 은연중 치하하였다. 시의회는 쿨치키에게 상당한 금액의 상금을 주었으며 귀족들은 쿨치키에게 레오폴드슈타트(Leopoldstadt)에 집을 한채 주어 살게 했다. 조비에스키 왕은 쿨치키에게 보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쿨치키는 터키군이 남기고 간 커피 자루들을 달라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조비에스키 왕이 쿨치키에게 직접 커피 자루를 건네 주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쿨치키가 비엔나 시장으로부터 받은 상금으로 터키 병사들이 남겨 놓고 간 커피 자루들을 샀다고 한다. 쿨치키는 1686년에 슈테판성당에서 가까운 슐로써르가쓸(Schlossergassl)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이름은 '푸른 병 집'(Zur Blauen Flasche)였다. 오늘날 독일기사단 건물이 있는 곳이다. 이것이 비엔나 최초의 커피하우스(카페)였다. 푸른 병이라고 한 것은 당시 커피 콩을 푸른 병에 담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사 수완이 좋은 쿨치키는 그의 커피하우스를 통해 커피 마시는 법을 널리 전파하여 마침내 유럽에서 커피 유행이 불도록 했다. 쿨치키는 상점에서 항상 터키 옷을 입고 작은 절구로 커피 콩을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 비엔나 시민들은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쿨치키의 커피하우스를 찾아 왔다. 쿨치키는 커피에 밀크를 넣어 마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였다. 터키 사람들도 몰랐던 방법이었다. 오늘날 비엔나 아인슈패너 또는 멜란즈의 원조이다. 쿨치키는 1694년 세상을 떠날때까지 비엔나의 유명인사로서 인기를 차지했다. 오늘날 매년 10월이면 비엔나의 카페협회 사람들이 쿨치키를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이때에는 대개 카페마다 창문에 쿨치키의 초상화를 걸어두어 기념한다.
쿨치키(콜쉬츠키)가 오픈한 '푸른병집' 커피하우스의 풍경. 쿨치키가 터키인의 복장으로 커피를 서브하고 있다.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비엔나에 첫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것은 기록상 1685년 1월 17일이라는 것이다. 쿨치키보다 1년 앞선 개점이었다. 그리스 사람인 요한네스 테오다트(Johannes Theodat: Diodato)라는 사람이 하르마르크트(Haarmarkt), 즉 오늘날의 로텐투름슈트라쎄(Rotenturmstrasse) 14번지의 자기 집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는 왕실로부터 커피하우스를 개점하는 특권(오늘날로 보면 허가)을 받았다는 것인데 커피를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마실수 있게 했는지, 또는 커피콩을 팔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레오폴드1세 치하의 비엔나에는 1700년까지 4개의 커피하우스가 영업을 했다고 하며 1800년대에 들어서서는 이미 약 90곳의 커피하우스가 생겨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비엔나의 커피하우스가 가장 피크에 오른 것은 '비엔나회의' 기간이었다고 하는데 그 때에는 이미 비엔나에 150개 이상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으며 1900년대에 들어서서는 약 600곳으로 크게 증가되었다고 한다.
비엔나 4구 콜쉬츠키가쎄에 있는 쿨치키 기념상. 터키 복장을 하고 작은 절구로 커피 콩을 가는 모습이다. 비엔나커피상인조합(길드)이 설치했다. 게오르그 프란츠 쿨치키(콜쉬츠키)는 비엔나 커피애호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숭상되고 있다.
비엔나에는 커피하우스가 1863년 9월에 문을 열었다고 되어 있지만 실은 그것이 유렵에서 처음은 아니었다. 1863년 이전에 이미 파리, 런던, 옥스포드, 그리고 미국의 보스턴에도 커피하우스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쿨치키는 영웅담과 함께 커피전파의 선구자처럼 존경을 받았다. 쿨치키는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차린지 10여년 후인 1694년 세상을 떠났다. 그 10여년 사이에 비엔나에는 여러 곳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 비엔나 커피하우스연합회는 쿨치키를 커피하우스의 파트론으로 삼아 기념했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매년 10월에 비엔나에서는 쿨추키 특별 축제가 마련되고 있다. 축제 기간에는 비엔나의 커피하우스마다 문 앞을 장식하고 쿨추키의 초상화를 걸어 높았다. 비엔나의 콜쉬츠키(Kolschitzky: Kulczycki의 독일어 표기)거리에는 쿨치키 기념상이 있다. 콜쉬츠키가쎄(Kolschitzkygasse)는 쿨치키를 기념하여 붙인 거리 이름이다.
카페 하벨카(Hawelka). 이런 분위기를 독일어로 게뮈틀리히(Gem?tlich)하다고 부른다.
이제 비엔나에서 마실수 있는 커피의 종류에 대하여 정리해보자. - 모카 또는 슈봐르처(Schwarzer)라는 거은 순수한 커피에 우유가 아닌 크림만 조금 넣는 것이다. - 도펠모카(Doppelmokka) 또는 모카 게슈프릿츠트(Mokka gespritzt)는 모카에 브랜디를 넣은 것이다. - 페어랭게르터(Verl?ngerter)는 진한 모카에 물을 많이 넣은 것이다. - 아인슈패너(Einsp?nner)는 도펠모카(더블 모카)에 크림을 많이 넣은 것이다. 크림은 슐라고버스(Schlagobers)라고 하는데 독일인들은 자네(Sahne)라고 부른다. - 튀르키셔(T?rkischer)라고 하는 것은 모카만을 진하게 짜낸 것이다. - 브라우너(Brauner)는 슈봐르처에 밀크를 넣은 것이다. 그로쎄(빅)와 클라이네(스몰)가 있다. - 카푸치너(Kapuziner)는 브라우너에 밀크를 더 넣지 않은 것이다. 클라이너 브라우너는 진한 커피를 더블로 넣고 크림을 넣어 갈색이 보기 좋게 나타난 것을 말한다. - 골트(Gold)는 브라우너에 밀크를 더 넣은 것이다. - 멜란즈(Melange)는 내린 커피에 휘핑 우유와 초콜릿을 넣은 것이 원칙이다. - 피아커(Fiaker)는 내린 커피에 설탕을 넣고 체리브랜디를 섞어 뜨겁게 만든 것이다. 더블 에스프레소에 크림을 듬뿍 넣고 여기에 체리를 얹기도 한다. -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는 모카에 오렌지 리쿼와 설탕, 크림, 굵은 브라운 설탕을 넣은 것이다. - 파리재어(Pharis?er)는 설탕, 카카오 가루, 데운 럼, 더블 모카, 크림, 시나몬에 레몬을 짜서 탄 것이다. 하기야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방법은 수없이 많으므로 일일히 열거할수는 없지만 이상의 리스트는 일반 비엔나 카페에서 주문할수 있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주문하는 것은 멜란즈이며 비엔나 토박이들은 아인슈패너 또는 브라우너를 시킨다.
콜쉬츠키(쿨치키) 기념상 디테일
글; 정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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