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 컴스 더 손(Here comes the son)
김창식
‘소니(Sonny)’! 팝송 ‘서니(Sunny)’ 이야기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도 아니에요. 일본의 가전기업 ‘소니(Sony)'는 더더구나 아니고요. ‘소니’는 잉글랜드 축구 리그(EPL)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손흥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 걸맞은 애칭도 있습니다. ‘손샤인(Sonshine)' '손세이셔널(Sonsational)’. 예술적인 별칭도 있지요. ‘히어 컴스 더 손(Here comes the son‧손이 떠오른다)'. 소속 구단인 토트넘 홋스퍼 트위터에서 사용하는 이 멘트는 비틀스 노래 'Here comes the sun(태양이 떠오른다)'을 패러디한 것이에요.
손흥민과 우리 가족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정작 손흥민 선수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손흥민과 필자의 둘째 아이는 나이(29세), 키(183센티)가 같습니다. 해맑은 얼굴, 헤어스타일, 수줍은 듯 짓는 미소도 닮았어요. 그래서 한층 더 정이 갑니다. 다만 손흥민은 ‘엄친아’ 이미지지만, 둘째 아이는 자유분방하고 스케일이 큰 편입니다. 조금은 ‘스웨그(swag‧허세)’도 있는 편이고요. 크고 작은 사고도 곧잘 쳐 부모에게 걱정을 안기면서도 “아빠만 잘 하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도 없다”고 되레 큰소리를 치는군요.
한번은 아이와 ‘티키타카(tiqui-taca‧축구용어‧빠르게 오가는 짧은 패스)’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은 현재의 삶을 즐기는 ‘욜로족(YOLO族)’ 기질이 있는 나(아버지)인지라 켕기기도 해서 내심 긴장했습니다.
“아빠, 강남에 가면 말야, 외제차가 그냥 택시더라.”
“그만큼 흔하단 말이겠지.”
“근데 비까번쩍한 초고층 건물도 줄 섰어.”
“당연한 거 아냐? 강남이니까. 그게 어때서?”
“이런 거 생각해 봤어? 건물마다 주인이 있다는 거.”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물 마다 주인이 있다는 걸 그때 새삼 알았습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손흥민 선수는 지난 1월 2일 2020~21시즌 홈경기 리즈 유나이티드전에 선발 출전했지요. 텔레파시가 통하는 단짝 공격수 해리 케인의 패스를 골문으로 쇄도하며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이로써 139년 토트넘 구단 역사에서 100골의 대기록을 달성했고, 명실상부한 레전드가 된 것이에요. 손흥민은 2월 7일 현재 13골을 기록해 EPL 득점 랭킹 공동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1월 6일 있었던 카라바오컵(리그컵) 준결승전에서는 브렌트퍼드를 상대로 골을 터트려 유럽 1부 리그 통산 150골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손흥민이 지난해 12월 번리 전에서 기록한 ‘777(보잉사 항공기 이름 아니에요!)’ 골은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자기 지역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아 7초간 7명의 수비수를 따돌리고 70m를 드리블해 골을 넣었죠. 이 골로 지난해 ‘FIFA 2020 푸슈카스상'을 받기도 했지만, 이 골은 월드컵을 포함한 국제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이 아닌가 합니다. 골 장면을 보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조자룡을 떠올렸어요. 수천 명 조조 진영을 유비의 아들 아두(후주 유선)를 가슴에 품고 필마단기(匹馬單騎)로 헤쳐 나온 상산 조자룡 말이죠.
이제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갈색폭격기 '차붐(Tcha Bum‧차범근 선수의 애칭)을 넘어 명실 공히 역대 아시아 선수 1위이자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공격수로서의 손흥민은 ‘생각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에 가깝습니다. 스피드와 기술, 돌파력을 두루 갖춘 데다 양발을 다 잘 쓰는군요.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는 날카로운 침투력은 그만의 전매특허지요. 축구를 떠나서도(볼을 갖고 있지 않을 때도) 성실하고 절제하는 삶을 삽니다. 메시, 호날두에 버금가는 ‘셀럽(Celebrity‧유명인)’이 되었는데도 그 ‘흔한’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과는 담을 쌓고 지내 더욱 호감이 갑니다.
참, 글 첫머리에서 손흥민과 둘째아이가 닮았다고 했죠? 무엇보다 경기(일)가 잘 안 풀릴 때면 짓는 짜증스런 표정이 판밖이입니다. 그 표정 역시 ‘당근’ 귀엽지만요. 지성이면 하늘도 움직인다고 어젯밤 꿈속에서 손흥민 선수를 만났답니다. 둘째아이와 함께였는데 서로 잘 아는 모양이었어요. 우리 국민 모두의 아들이자 내 아이이기도 한 손흥민과는 의례적인 이야기만 나누어 아쉽습니다. 진즉 만났어야 했는데 반갑다, 코로나 조심하자 등등.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맞은편 자리가 비었어요. 어찌 된 셈인가 두리번거리는데 핸드폰 벨이 울리는 군요. 아이에게서 온 메시지네요. “아빠 먼저 간당”.
지난해는 돌이키기도 싫은 끔찍한 해였죠. 코로나가 만연한 그 엄혹한 해를 나며 나이가 든 축은 음악 경연 TV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을 보며 시름을 달랬고, 그보다 어린 층은 손흥민의 활약상을 밤을 새워 지켜보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이제 새봄을 맞아 온누리에 싹이 움트고 태양이 떠오릅니다. ‘히어 컴스 더 손(Here comes the son)’. 아니 이미 중천(中天)에 떴나요? # <<수필과 비평>> 2021, 3
2008년 '한국수필' 수필, 2011년 '시와문화' 문화평론 등단.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을 사랑했네>(예정). 현재 <<한국산문>>에 '김창식의 문화 감성터치' 연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