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의 이어지는 글이다. 자기 자신에서 도망치는 사람들. “자기 불만족이야말로 모든 병의 뿌리다. 어디에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자신을 스스로 갈아먹는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해본 뒤에야 새로운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직업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취미를 바꿨다. 그런데 바꿀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같은 자리다. 새로운 것으로 도망칠 수 없게 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을 때, 그때 절망이 시작된다. 답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자기 안에 있다. 자기와 화해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자기 자신과 함께 여행한다.
짐이 짐꾼보다 무거우면 짐꾼이 깔린다. “대부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을 잘하는 것과,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다르다. 이는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짐을 지는 사람은 항상 짐보다 강해야 한다. 일을 고를 때 일의 크기만 고르지 마라. 어떤 일은 시작할 때 작아 보이지만, 시작하면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낳는다. 시작은 내가 선택하지만, 끝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에는 손대지 마라. 여기서 솔직한 질문해야 한다. 당신이 정말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즐겁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대부분은 자기 답을 찾는 대신 남의 답을 베낀다. 친구가 정치를 하니까 나도 정치를 하거나, 이웃이 큰 집을 지으니 나도 큰 집을 짓는다. 남의 삶을 자기 삶이라 착각하고 남의 그릇 크기를 자기 그릇 크기라 착각한다. 그렇게 자기보다 큰 삶을 살다가, 결국 그 무게에 깔린다. 자신의 크기를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하다. 그것이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당신이 그것을 가진 것인가, 그것이 당신을 가진 것인가. 인간 고통의 가장 비옥한 원천인 재산을 보자. 당신이 겪는 모든 불행, 죽음, 질병, 두려움, 후회를 돈이 주는 고통과 비교해 보라. 돈의 고통이 나머지를 압도할 것이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은 그리 아프지 않다. 그러나 한 번 가졌다가 잃은 것은 살점이 뜯기듯 아프다. 돈을 가진 사람에게 달라붙어, 떼어낼 때 반드시 피가 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자기가 가진 것을 잃을 때의 고통은 같다. 그렇다면 잃을 것이 적은 사람이 더 안전하지 않겠는가? 운명이 한 번도 미소 짓지 않은 사람이, 운명이 미소 지었다가 등을 돌린 사람보다 더 명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도둑이, 화재가, 운명이 무섭지 않다. 우리는 재산을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재산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다. 지키느라 불안하고, 불리느라 바쁘고, 잃을까 봐 잠을 못 잔다. 주인은 재산인데, 노예는 우리다. 가장 좋은 재산의 양은, 가난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하면서도, 가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양이다.
“친구를 고를 때, 가능한 한 욕망이 적은 사람을 골라라. 악덕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돌 때, 우리는 감염자 옆에 앉지 않으려 한다. 병이 전염됨을 알기 때문이다. 성격도 마찬가지다. 옆에 앉은 사람의 성격을 닿는 것만으로도 옮아온다. 건강한 과일 사이에 썩은 과일이 있으면, 건강한 과일이 먼저 썩지!, 썩은 과일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덜 나쁜 사람을 택하면 된다. 피해야 할 사람은 음울한 사람이다. 불평하고, 불만을 찾아내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충실하고 호의적이라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당신의 평온이 무너진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 한탄을 한다. “권력자들은 부패했다.“, ”젊은이들은 형편없다.“ ”물가는 비싸다.“ ”날씨는 왜 이리 나쁘냐. “그들의 입에서는 늘 한탄이 흘러나온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의 식습관도 닮아간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말투도 닮아간다. 함께 쉬는 사람의 가치관도 닮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구에게 감염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운명이 빌려온 것을 돌려달라고 할 때 놀라지 마라. 빌려준 것에 이자를 붙이지 않는 그것만 해도, 운명은 관대했다. “운명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빌려줄 뿐이다. 당신의 재산, 직위, 건강, 몸까지도 당신이 내 것이라 부르는 모든 것은 소유가 아니라 대여다. 운명이 잠시 맡겨놓은 것이다. 현자는 이를 알기에 빌린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남의 것이고 빌린 것이라고, 싸게 여기지도 않는다. 남의 재산을 자기 것보다, 조심스럽게 다루는 양심적인 관리인처럼 현자는 맡겨진 삶을 다룬다. 그리고 돌려달라는 요구가 왔을 때, 이렇게 말한다. ” 감사한다. 당신이 맡긴 것을 잘 관리했다. 이제 돌려드린다. 더 맡기고 싶으면 맡기시고, 거두고 싶으면 거두시라. 나는 머뭇거리지 않겠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사람은 잘 살 수도 없다. 잘 떠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잘 머무는 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떠남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머무는 동안 내내 두려워한다. 빌린 것을 돌려줄 각오가 없는 사람은 빌린 것을 즐길 수도 없다. 운명이 빌려준 것을 돌려달라고 할 때 놀라지 마라. 빌려준 것에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만 해도, 운명은 관대했다.
분노는 잠깐의 광기다. 이성이 비켜선 자리를 광기가 차지한다. 사람이 분노에 쏟은 에너지와 시간은, 원래 일어난 사건이 빼앗은 것보다 언제나 크다. 분노에 불탄 사람은 분노의 대상보다 더 큰 피해를 본다. 적이 당신에게 입힌 상처보다, 당신이 분노로 자기에게 입힌 상처가 더 깊다. 분노는 불타고 있을 때 자기가 불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분노가 가라앉은 뒤에야 자기가 한 일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후회한다. “얼마나 많은 것이 분노할 만한 가치가 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분노한 대부분은 내일이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들이다. 그 사소한 것이 당신의 하루를 무너뜨렸다. 분노에 바친 시간의 대부분은, 분노할 가치가 없는 것들에 바쳐진 것이다.
3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다. 혼자인 시간이 당신을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에 태어났다. “그런데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죄처럼 느낀다. 이것은 행동의 정의가 너무 좁아서 생기는 착각이다. 당신의 9할은 당신이 아니다. “이름을 빼면, 직위를 빼면, 그때 남은 것이 진짜 당신이다. “당신을 이루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바깥의 당신이다. 직위, 이름, 평판, 역할,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가 9할이다. 다른 하나는 안의 당신이다. 사유, 태도, 원칙, 자신과의 약속들 이것은 1할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자신에 가까운 그 1할을 평생 같은 집에서 살면서,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방처럼,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인가? “가장 위대한 것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은, 가장 사소한 것에, 자기를 소진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운명이 빼앗아 가지 않더라도 인간 인생은 이 우주를 이해하기에 너무 짧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짧은 시간마저 제대로 쓰지 못한다. 다음 약속, 다음 일, 다음 걱정에 매달리느라 시선은 항상 아래로 향한다. 사색하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다.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가장 바빴던 사람이 아니다. “한가로운 삶은 쓸모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역사는 분주함을 기억하지 않는다. 깊이를 기억한다. 역사가 기억하는 사람은 가장 바빴던 사람이 아니라, 가장 깊이 생각한 사람이다. “지금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세 가지 삶이 있다. 쾌락의 삶, 성찰의 삶, 행동의 삶, 그러나 이 셋은 떨어져 있지 않다. “어느 삶이 최선인지는 오랜 논쟁거리다. 셋 중 하나만 가진 삶은 불완전하다. 성찰만 있으면 세상과 단절되고, 행동만 있으면 방향을 잃고, 쾌락만 있으면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셋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삶이 된다.
”활은 항상 당겨져 있으면 부러진다, 때로는 줄을 풀어줘야 한다.“
이것이 멈추는 연습이다. 멈추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느림이 당신을 구원한다. “빨리 먹으면 맛을 모른다. 빨리 읽으면 내용을 모른다. 빨리 살면 삶을 모른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 우주를 이해하기에도 부족하다. 삶의 의미를 묻고, 자기 안의 진실을 발견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을 빠르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빠른 황제 ‘칼리굴라’가 있었다. 마음에 떠오른 것은 즉각 행동에 옮겼다. 바다 위를 마차로 건너고 싶다는 충동이 일자, 이탈리아의 모든 배를 끌어모아 다리를 만들었다. 그 배들이 다리가 되는 동안, 곡식을 운반할 배가 사라졌다. 로마는 7일분의 식량만 남기고 굶주릴 위기에 처했다. 빠른 충동이 제국을 흔든 것이다. 멈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광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빠르게 살려 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아끼는 것은 느리게 사는 사람이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다. 사는 법을 알고 있다는 증거다.
2026.08.01.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
하와이 대저택 번역
세네카 지음
논픽션 간행
첫댓글
활도 장구도
안 쓸 뗀 풀어 놓거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벽 풀벌레 소리
들리기 시작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