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9: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 '무리'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 된 각지파 족장들과 장로들을 뜻한다. 이들은 기브온 사신들의 말이 끝난 후, 기브온 사람들의 양식을 취했는데, 이 구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2가지 견해가 있다. (1)곰팡이 난 떡을 먹어봄으로써 기브온 사람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는 견해와 (2)조약을 맺을 때 화평과 우호를 상징하는 친교의 떡을 먹었던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풍속을 따라 기브온 사람들의 양식을 먹었다는 견해이다.
이 2가지 견해 모두 일리는 있으나 전자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 있다.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 본서 저자가 특별히 이말을 기입한 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화친 조약을 맺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조약이 잘못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정탐꾼의 말만을 믿고서 전투를 시작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기브온 거민들의 말만 믿고서 화친 조약을 맺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당시 여호수아는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뜻을 묻기 위해 대제사장 엘르아살을 통해 '우림과 둠밈'(출 28:30 주석 참조)의 판결법을 사용했어야 옳았다...[수 9:15]"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 비록 알지는 못하였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여호수아가 기브온 거민들과 화친 조약을 체결한 것은 '가나안 사람들과 언약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명백히 어긴 큰 실수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온 거민들과 화친 조약을 맺은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1)출애굽 이후 줄곧 적대 세력들만 상대해 오다가 이처럼 우호 세력이 나타나자 쉽게 호감이 갔을 수 있겠고 (2)더군다나 기브온 사신들의 복종적인 태도에 마음이 우쭐하여졌을 것이고,
(3)또한 정치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힘센 민족과 동맹을 맺을 경우, 장차 있을 정복 과정에서 상당한 혜택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약을 맺고...맹세하였더라 - 개인의 언약시 뿐 아니라, 더욱이 국가간의 언약은 반드시 그들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3일 후 이스라엘이 그 사신들은 원방의 사신들이 아니라, 인근 가나안 족속의 사신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지라도, 여호가의 이름으로 맹세한 맹약 때문에 이미 체결한 화친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수 9:16]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
삼일이 지나서야...들으니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사신들의 신분을 알게 된 때는 기브온 사람들과 언약을 맺은 후 3일이 지나서였다. 3일 뒤 알게 된 이유는 기브온 거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길갈에서 걸어서 3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고대 국가간의 관습상 화친 조약을 맺은 국가는 상호 상대방의 국가를 방문하는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3일 뒤에 그들을 방문한 결과 사신들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았다는 분노심과 수치심으로 마음이 착잡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큰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히위 족속인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을 속이기 훨씬 이전, 이미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인 야곱의 12아들들이 히위 족속을 먼저 속였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곧 여동생 '디나'가 당한 수욕을 보복하기 위해 야곱의 아들들이 짐짓 할례를 이용하여
그들을 속인 후 무참히 살륙했던 일이 있었다). 이제 그 '디나 사건'이 있은지 근 500년 후에, 역으로 이스라엘이 히위 족속에게 속임을 당한 것이다. 곧 뿌린 씨를 거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하나님의 경륜상, 히위 족속인 기브온 거민이 진멸 중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그 디나 사건에 대한 배상인지도 모른다....[수 9:17]"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 삼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기브온 - 예루살렘 서북쪽 9.6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722m 가량의 가나안 중부 주요 성읍이다... 기브온이란 이름은 본장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후일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할할 때에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리고 삼하 21장에는 사울이 많은 기브온 족속을 죽인 사실이 나타나 있는데, 그래서 훗날 다윗 왕 때에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집에 보복을 가할 것을 요구했고, 다윗은 그들에게 돈을 주며 무마하려 했다.
기브온에서 발생한 일 중 또다른 큰 일은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거대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일이다. 솔로몬이 그날 밤 기브온에서 잠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솔로몬을 향하여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주리라 하셨고 그때 솔로몬 왕은 지혜를 구했다. 그외에 기브온 산당은 두번 언급되었다. 그때로부터 약 500년 후에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다른 기브온 사람 몇 명은 느헤미야를 도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도 했다.
그비라 - 히위 족속 중의 한 성읍으로, 나중에 베냐민 지파의 영토가 되었다. 후일 포로로 잡혀갔다가 스룹바벨)과 더불어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비라 거민들도 섞여 있었다. 오늘날 이곳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 자파로 가는 도중에 있는 킬얕 엘 이납 북쪽 3.2km 지점에 위치한 '길벳엘 케피레'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기브온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3시간 가량 떨어진 거리이다. 브에롯 - 이 성읍 역시 나중에 베냐민 지파 중에 속하였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다시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삼하 4장에는 베냐민 족속의 브에롯 사람 림몬의 두 아들인 바아나와 레갑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예 부대인 다윗의 30용사 가운데 하나가 브에롯 출신인데, 그는 요압의 병기잡은 자였던 '나하래'였다. 오늘날 이곳은 예루살렘 북방 약 1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엘 비레' 지역으로 추정된다. 기럇여아림 - 기브온 족속의 성읍들 가운데 하나로 '바알라' 또는 '기럇바알'이란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후에 이 성읍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의 경계선에 위치하였다.
역사상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돌려 보낸 후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때까지, 그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근 20년 동안이나 체류한 적이 있었다. 한편 '수풀의 마을'이란 뜻의 기럇여아림의 오늘날의 위치는 기브아로부터 약 6.5km 떨어진 쿨엣 - 엘 - 에나브 '포도의마을'이란 뜻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