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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다해 12월5일 토요일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수도회] 연민의 마음으로 함께 함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29,17-24
† 복음 마태 9,27-31
◈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십니다.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는
(화답송) 분을 기다려 온 이스라엘에게,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자애로운 목자로 오십니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지만, 본디 목자는 임금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왕궁에 앉아 계시는 화려한 임금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 곁에서 상처를 싸매 주시고 터진 곳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멸시받는 죄인들과 소외된 병자들, 나병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비롯하여 목자 없는 양들처럼 방황하고 시달리며 기가
꺾인 채 허덕이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다가가시어 그들의
아픔과 가련함을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이십니다.
위의 말씀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명백하게 말해 줍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상처를 싸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길을 잃지 않고 잘 모여서 목자를 환대할 채비를 하고 있는 양들이
아니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작은 실천을 통하여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면
어떨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도 우리 이웃을 찾아 가시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치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 매일 미사 -
◈ [서울] 대림 제1주간 토요일
2015년 다해 12월5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0,19-21.23-26
복음
<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5―10,1.5ㄱ.6-8
건강 검진을 받을 때는 걱정이 되곤 합니다. 혹시 몸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결과가 나와서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카프 병원(한국 음주 문화 연구센터)에서 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봉헌 미사에 참석하기 어려워서 축하 화환을 보내면서
홈 페이지를 방문했습니다. 홈 페이지에는 ‘음주 습관과 알코올
중독’을 알아보는 자가진단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한잔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약간 걱정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보았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건전한 음주습관을 가진 것으로 나왔습니다. 술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는 말처럼 술자리를 줄여야 하는데, 연말이 다가옵니다.
한국으로 유학 온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10일 정도 지났는데
걱정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한국말을 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신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친구에게 저의 경험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10년 전에 저도 외국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조금 여유를 가지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즐기라고 말 해 주었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우리의 마음도 근심의 바람, 두려움의
바람, 욕망의 바람, 시기의 바람 때문에 흔들리곤 합니다. 조계사에도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의 검거를 피해서 몸을
의탁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따르는 사찰에서, 찾아온 사람을
내 보내는 것도 어려움일 것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도 무조건
기다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폭력시위와 데모를 불허하는 정부에게도,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에게도
겨울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계절이 겨울로 바뀌는 것을 막기는 어렵지만, 얼어붙은 우리 사회를
희망과 사랑으로 녹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사야 예언자가
꿈꾸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집회를 관리하는 경찰에게 따뜻한 국화빵을
전해주는 시위대를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주장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물을
뿌리기보다는 온풍기를 틀어 주면 좋겠습니다. 중압감을 주는
차벽보다는 잠시 쉴 수 있는 천막을 설치해 주면 좋겠습니다. 월드컵
경기를 응원했던 그 뜨거움으로 자신들의 바람을 거침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삶의 주변에서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70이
넘으신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을 잘못 만나서 예전에
살던 곳의 집을 팔고 이사 왔습니다. 한동안 미움과 원망 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사는 것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 어느 날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미워하게 된 사람,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찾아가서 오히려 나도 잘못이 있다고 용서를 청하고, 미움과 원망을
털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가슴 속에 있었던 큰 덩어리가
없어졌습니다. 소화도 잘되고 사는 것도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손해 때문에 나의 영혼이 더 많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회개는
나를 다시금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이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한 자매님은 ‘풍성한 열매’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쉬는 교우 댁을
방문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나 이제 성당에 나가지 않으니 앞으로 오지 마세요.’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시어머니는 ‘내가 개신교회에 나가니 우리 아들과 며느리는 앞으로
성당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오지 마세요.’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방문하기 전에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주보를 전해 드릴 때
주보에 전화번호와 좋은 글을 써서 함께 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화를 내던 형제님도 많이 누그러지셨고, 개신교회에 다니던
할머니도 웃어주었다고 합니다. 아직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이 세상 한번 뿐이고, 죽으면 어찌 될지 모르니 신앙을 가져
볼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이웃들도 그럼 성당에 한번 나가겠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도와 전교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그 자매님의
말씀이 제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크고 화려한 성당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제와 주교, 수도자들만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따뜻한 미소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지치고 힘든 이웃에게 작지만 가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쌀쌀맞게 대하는 쉬는 교우들에게
주보를 전해주고, 다시 한 번 찾아가는 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원망할 일이 있어도,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주님 때문에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네.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 주시네.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고 권능이 넘치시네. 그 지혜는 헤아릴 길 없네. 주님은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네.” 오늘도 주님을 따라
일상의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분들에게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연민의 마음으로 함께함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다해 12월5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 9,35―10,1.5ㄱ.6-8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연민의 마음으로 함께함
예언자 이사야는 귀양살이의 아픔과 서러움 중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통의 때가 곧 끝날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이사 25,8 참조). 그는 하느님께서 탄원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리라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30,19-20)
하느님께서는 ‘비록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숨어계시지
않고’(30,20) 늘 내 인생길에 함께 해주십니다. 따라서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위로와 희망을 주시는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탄원은
주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이요, 주인이신 그분께 의탁하며 생명을
갈구하는 목마름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마태 9,35).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아무 조건 없이 모두를 품는 보편적이고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곁에 머문 이들만이 자유와 해방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9,36-37). 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내 앞의 대상에 대한 일시적이고 스쳐 지나가는 안타까움이나
동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앞의 대상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온전히 동화되어 그의 아픔과 처지를 삼켜 함께 느끼고
아파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시달리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한(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 서민
빈곤층의 막막함, 농민들의 절규, OECD국가 중 노인 빈곤율과 자살율
1위를 기록하는 가운데 고통 받고 있는 노인층의 서러움, 거대 자본의
공룡화 속에 궁지로 내몰리는 골목 서민들의 한숨소리 등.
이토록 아파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절규하는 이들 앞에 경제논리나
정치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몰인정함과 무자비함을 넘어선
폭력입니다. 거기에 가엾이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면을 쓴 거짓말쟁이이겠지요.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 돈도, 정치도 권력도 모두 사람을 위한 것 아닙니까?
우리 모두 조건 없이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길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연민의 마음으로 온
세상 모든 이들을 자유와 해방으로 이끄는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10,1.5.8).
오늘 예수님의 이 부르심을 듣고 연민의 마음으로 함께 울 수 있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주님! 존엄한 인간이 신음하고 비인간화 하는
현실을 보며 가엾음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위해 울 수 있게 하시고,
권력의 마약에 중독된 정치인들과 돈에 눈먼 자본가들을 가엾이 여기게
하소서. 아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다해 12월5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이사 30,19)
여러분은 기도하면 잘 이루어집니까?
눈물로 호소하고 울부짖어도 되는 일이 없습니까?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부르짖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고 다 들어주신다고 확신하네요.
그날이 오면... 그날은 메시아께서 오시는 날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을 믿고 수천년을 살아왔답니다.
마침내 그분이 오셨는데도 못 알아보고 아직도 기다린다네요.
성탄을 기다리면서 정말 믿음과 확신을 갖고
다시한번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 보면 어떨까요?
그분이 오신다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고
안 오신다해도 언젠가는 이루어주실 것이니까요.
한두 번 해보고 안 된다 소용없다 하지말고 될 때까지 해봅시다.
적어도 이번 성탄 때까지는 일편단심으로
간절하게 자비를 청해 봅시다.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밤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한상우 바오로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다해 12월5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9,35―10,1.5ㄱ.6-8)
지극한 창조주의 사랑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온전히 하나되는 길은 거저 받은 것을 우리가 거저 주는 길 뿐입니다.
분열과 대립은 거저 받은 것을 우리가 거저 나누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거저 주시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따뜻한 주님의 마음 앞에 서있는 우리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나눔과 주고받음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가치인지를 새삼 뜨겁게 체험합니다.
살아있음의 기쁨은 주고받음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주저앉아 있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먼저 용기를
주시는 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생명과 사랑의 일치이신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공동체로 초대하십니다.
공동체의 정신이란 거저 받은 것을 형제들과 거저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지게 하는 일치는 거저 받은 것을
우리가 거저 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사랑임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대림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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