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님이 교회에서 사임 권고를 받고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아려온다. 나 또한 사임 압력을 꽤 많이 받았다. 쫓아내려는 움직임도 많았다. 그래도 쫓겨나지 않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갈 곳이 없어서였다. 나는 그렇다 치고 아내와 아이들을 굶길 수 없었다. 머리 둘 곳조차 없는데 어디에 짐을 푼단 말인가.
내가 바보라는 것, 멍청하다는 것,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버러지 같은 놈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굴했고, 비루했다.
...
5년 동안 시달렸다. 한 번은 목회 신임투표를 하잔다. 내가 3년은 교회의 기초를 닦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목회를 할 거라고 한 말을 근거로 트집 삼아 한 말이다. 결과에 따라 당장 짐 싸야 할 형편이었다. 나도 정말 내가 쿨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적 없으니 안 하겠다고 하니, 그러면 지난 3년을 잘 했는지를 두고 투표하잔다. 떼 지어 득달같이 달려드니 밀릴 수밖에.
결과는 70%는 반대, 20%는 중립, 10%는 지지이었다. 예상된 결과이기에, 그 수치 자체가 내게 충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쫓겨난다는 수치감과 갈 곳이 없다는 막막함 때문에 힘들었다.
아, 이제 내가 알아서 나가야 하나, 싶어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콧방귀를 뀐다. 사임 여부가 아니니까 괜찮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과 희림, 서은이가 당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도 지지한다고 온갖 뻥을 치며 격려해주었다.
다음 주일 아침, 몇 달간 연속 설교를 할 것을 예고하는 순간, 교인들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진다. 그러고 보면 그분들도 그리 모진 분들은 아니었다. 멱살잡이 하며, 집 가구를 내동댕이치며 나가라고 소리 지른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갈 곳 없어 그냥 묵살하고 퍼질러 앉아 있었더니 5년 째 되는 해에 웃기지도 않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대부분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 순식간에 빈자리를 채웠다.
그 당시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 군데에 서류를 내고 갈 곳을 찾았다. 교수나 교목, 출판사 등, 될 듯 하면서도 성사되지 않았다. 꽤 괜찮은 교회에서, 사례금도 억쑤로 많이 주는 교회에서 청빙 결정되어 이사 갈 날짜까지 잡았는데, 결국 내가 거절했다.
다시 5년의 시간이 흘러, 몇 군데에서 오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모두 거절했다. 거절하는 즐거움도 꽤 크다. 나는 부산에서 로고스교회와 로고스서원을 할거다. 이 저주 받은 유배지에서 말이다. 여전히 부산은 싫고 힘든 곳이지만, 정도 들고, 아주 조금이나마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지금은 의무감 또는 사명감이 훨씬 크지만 말이다.
교회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는 목사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도 있지만, 정반대로 텃세부리는 소위 묵은 교인들 때문에 눈물을 삼키며 쫓겨나는 착하디착한 목사들도 참 많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독하고 질긴 놈이다. 아니면 비루먹은 개이었던가.
믿음은 버티는 것이다. 고상하게 말하면 인내다.
하나님이 지금은 내가 존경하고, 나를 존경하는 성도들을 붙여주셔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목회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는데, 지금은 희망을 품고 있다. 아주 가끔 그분들을 볼 때,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가 잘해야지, 기도 더 많이 해 주어야지, 그런다.
아, 오늘 아침에 박영선 목사님이 친히 전화를 주셔서, 내 책에 대해, 내 사역에 대해 과찬과 격찬, 상찬을 해 주셔서 한껏 부풀어 올랐는데 착 가라앉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갈 데 없어 쪽팔림을 무릅쓰고 뭉개고 앉아있을 많은 목사님들이 부디 버티고 버티기를 바란다. 물론 죽치고 앉아있는 것이 하나의 정답은 아닐 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다양하다. 어찌되었건 죽지마라. 살아남으라. 바벨론 땅에서 포로로 살던 이스라엘처럼 그냥 살아라. 때가 머지않았다!
첫댓글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성도님들로부터 사랑받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귀한 목회자 되옵소서?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