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시기를, “흘러가는 것은 이 물과 같도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라고 하셨다.
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然其可指而易見者 莫如川流 故於此 發以示人 欲學者時時省察 而無毫髮之間斷也 천지가 변화함에 있어,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이어져서, 한순간도 멈춤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道體가 본래 그러함이다. 그러나 가리켜서 쉽게 알 수 있는 것 중에 냇물이 흘러가는 것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니, 이는 배우는 자가 수시로 성찰하되, 잠깐이라도 끊어짐이 없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此五句所包甚闊 이 다섯 구절이 포함하고 있는 바가 매우 넓다.
吳氏曰 逝者不指水 斯字方指水 오씨가 말하길, “逝者가 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斯자가 비로소 물을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逝訓往 集註謂往過來續 似多了來字 雙峯饒氏曰 不說來者 無以見往者之無窮 往是前面已去底 來是後來接續去底 二者皆往也 누군가 묻기를, “逝를 往(간다)으로 뜻풀이를 하였으니, 집주에서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잇는다고 말하였는데, 來자는 쓸데없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하였다. 쌍봉요씨가 말하길, “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지나간 것의 무궁함을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앞에서 이미 가버린 것이고, 온다는 것은 나중에 와서 이어 간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必有來者續 方見道體之無窮 使往過而來不續 則其幾息而非生道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반드시 오는 것이 있어서 이어주어야만 비로소 道體의 무궁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가는 것이 지나갔지만 오는 것이 이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의 그치게 되어 살아있는 도가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天理流行之際 如少有私欲而間之 便如水被些障塞 不得恁地滔滔流去 又曰 才不省察便間斷 주자가 말하길, “天理가 유행하는 즈음에, 만약 조금이라도 사욕이 생겨서 끼어든다면, 곧바로 마치 물이 다소 가로막힌 것처럼 이렇게 도도하게 흘러갈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조금이라도 성찰하지 않는다면 곧 중간에 끊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天理流行無處不然 無時或已 但隱於人心者 不若形於川流者易見 人能卽此而有發焉 則當自强於體察 致力於謹獨 使之無一息之間斷 則庶幾乎 不虧其本體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천리가 흘러 행해짐에 있어, 그렇지 않은 곳이 없고, 혹시라도 그치는 때도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람의 마음에 숨어있는 것은 냇물의 흐름에 형체화 된 것이 쉽게 보이는 것과 같지가 않다. 사람이 능히 여기에 나아가 발현시킬 수 있다면, 마땅히 체득하여 살펴봄에 스스로 힘써야 하고, 홀로를 삼감에 힘써야 한다. 이로써 그로 하여금 한순간이라도 중간에 끊어짐이 없도록 한다면, 그 본체를 어그러지지 않게 함에 거의 다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又發言外意 欲學者於川流上察識道體之自然 不息而法之 以自强不息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것은 또 말 밖의 뜻을 드러낸 것이니, 배우는 자가 냇물의 흐름에서 道體의 스스로 그러함을 살피고 알아서, 쉬지 않고 그것을 본받음으로써 스스로 힘쓰기를 쉬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程子曰 此道體也 天運而不已 日往則月來 寒往則暑來 水流而不息 物生而不窮 皆與道爲體 運乎晝夜 未嘗已也 是以 君子法之 自强不息 及其至也 純亦不已焉 又曰 自漢以來 儒者皆不識此義 此見聖人之心 純亦不已也 純亦不已 乃天德也 有天德 便可語王道 其要只在謹獨 愚按 自此至終篇 皆勉人進學不已之辭 정자가 말하길, “이것이 道體다. 하늘의 운행은 그침이 없으니,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물은 흘러가되 그치지 않으며, 만물이 생겨나되 끝이 없어서, 모두 道와 더불어 體가 되어, 밤낮으로 운행하여 일찍이 그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노력하여 쉬지 않으며, 그 지극함에 이르면 순수함 또한 그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한나라 이래로 유생들은 모두 이 뜻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성인의 마음에는 순수함이 또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순수함이 그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늘의 덕이다. 천덕을 갖고 있어야만 곧 왕도를 말할 수 있으니, 그 요체는 오직 홀로를 삼감에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부터 마지막 편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쉬지 않고 학문에 나아가도록 격려하는 말이다.
朱子曰 此是形容道體 伊川所謂與道爲體 此一句最妙 某嘗爲人作觀瀾詞 其中有兩句云 觀川流之不息兮 悟有本之無窮 道之本然之體 不可見 觀此 則可見無體之體 如陰陽五行爲太極之體 주자가 말하길, “이것은 도체를 형용한 것인데, 정이천이 말한 이른바 도와 더불어 체가 된다는 것, 이 한 구절이 제일 절묘한 것이다. 나는 일찍이 사람들을 위하여 물결을 관찰하는 말을 지은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 이러한 두 구절이 있다. ‘냇물의 흐름이 그침이 없음을 살펴보면, 근본이 있는 것이 무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道의 본연의 體는 볼 수가 없지만, 여기서 살펴보면 곧 형체가 없는 體를 볼 수 있으니, 예컨대 음양오행이 태극의 體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日往月來等未是道 然無這道便無這箇了 有這道方有這箇 旣有這箇 就上面 便可見得道 是與道做箇骨子 若說天只如此高 地只如此厚 便也無說了 須看其所以如此者如何 해가 지면 달이 뜬다는 것 등은 아직 道가 아니지만, 그러나 이 道가 없다면 곧 이것들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가 있어야만 비로소 이것들이 있는 것이다. 이미 이런 것들이 있다면, 그 위로 나아가면 곧 道를 알아볼 수 있으니, 이는 道와 더불어 골자를 이루는 것이다. 만약 하늘은 그저 이와 같이 높고 땅은 이와 같이 두텁다고만 말한다면, 곧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셈이다. 반드시 그것이 이와 같은 까닭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道本無體 此四者非道之體也 但因此可見道之體耳 那無聲無臭底 便是道 只於無聲無臭上 推究如何見得道 因有四者 方見得那無聲無臭底 所以說與道爲體 道는 본래 형체가 없는 것이니, 이 네 가지 것은 道의 體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道의 體를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이 바로 道다. 그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 위에서 어떻게 하면 道를 알아볼 수 있을지 연구할 적에, 네 가지가 있음으로 인해서 비로소 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道와 더불어 體가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道無形體 却是這物事盛載那道出來 所以指物以見道 道之體便在這許多物事上 只是水上較親切易見 道에는 형체가 없지만, 그러나 이러한 사물들이 저 道를 풍성하게 싣고서 나왔기 때문에, 사물을 가리킴으로써 道를 보여주는 것이다. 道의 體는 곧 이러한 수많은 사물 위에 있지만, 그저 물 위에서는 비교적 친근하고 절실하여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胡氏曰 夫子因所見之一物而言 程子因夫子之說倂擧三者而言 夫道體可見 故不專於水 亦不專於四者 大而造化之流行 近而口鼻之呼吸 莫不皆然 호씨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보신 바 중의 한 사물로 인해 말씀하신 것이고, 정자는 공자님의 말씀으로 인해 3가지 것을 한꺼번에 들어서 말한 것이다. 무릇 道體란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물에 專一하지 않고 또한 네 가지 것에만 專一하지도 않으니, 크게는 조화의 유행부터 가깝게는 입과 코의 호흡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夫子所云 蓋合道器兼體用而言 면재황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은 대체로 道와 器物을 합하고 體(본질)와 用(작용)을 겸해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天之運 日月寒暑之往來 水之流 萬物之生 皆自然不息者 程子雜水流於其中言之 水流蓋其一端耳 道無形體之可見 就此有形體之數端上發見出來 所謂與道爲形體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하늘의 운행과 日月寒暑의 왕래, 물의 흐름, 만물의 생장은 모두 스스로 그러하면서도 그침이 없는 것이다. 정자는 그 안에 물의 흐름을 끼워 섞어서 말하였는데, 물의 흐름은 대체로 그 한 단서일 따름이다. 道에는 볼 수 있는 형체가 없지만, 형체가 있는 몇몇 단서 위로 나아가 발현시켜낸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도와 더불어 형체를 이룬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易乾卦象傳曰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集註之意本此 是乃勉而行之者 신안진씨가 말하길, “주역 건괘 상전에 이르길,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힘쓰기를 쉬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집주의 뜻도 이를 본받은 것으로서, 곧 열심히 노력하여 행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大抵過去底物不息猶天運流行不息如此 亦警學者要當如此不息 蓋聖人之心 純亦不已 所以能見之 주자가 말하길, “대저 지나간 사물이 쉬지 않는다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 흘러 행해져 이와 같이 쉬지 않음과 같다는 것이니, 또한 배우는 자를 경계시켜 마땅히 이와 같이 쉬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대체로 성인의 마음은 그 순수함 또한 그침이 없으니, 이 때문에 그것을 능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道無一息之停 其在天地 則見於日往月來 寒往暑來 水流而不息 物生而不窮 終萬古未嘗間斷 其在人 則本然虛靈知覺之體 常生不已而日用萬事 亦無非天理流行而無少息 故擧是道之全而言 合天地萬物 人心萬事統是一無息之體 分而言 則於穆不已者 天之所以與道爲體也 生生不已者 心之所以與道爲體也 純亦不已者 聖人之心 與天道爲一體也 自强不息者 君子之所學聖人 存心事天而體夫道也 曰 此亦得之 但與道爲體 四字甚精 蓋物生水流非道之體 乃與道爲體者也 누군가 묻기를, “道는 한순간의 멈춤도 없으니, 이는 天地에 있어서는, 곧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며 물이 흐르되 쉬지 않고 만물이 생겨나되 끝이 없으며 종래 만고에 일찍이 중간에 끊긴 적이 없는 것에 드러나 보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본연의 虛靈知覺의 體가 늘상 생겨남에 그침이 없고, 일상생활과 만사 역시 天理의 流行이 아님이 없으며 잠시라도 쉼이 없다는 것에 드러나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의 전부를 들어 말하자면, 천지와 만물, 그리고 인심과 만사를 합하여 모조리 하나라도 쉼이 없는 體인 것입니다. 나누어서 말하자면, 於穆不已(엄숙함이 그치지 않음)라는 것은 하늘이 道와 더불어 體가 되는 것이고, 生生不已(생겨남이 그치지 않음)라는 것은 마음이 道와 더불어 體가 되는 것이며, 純亦不已라는 것은 성인의 마음이 天道와 더불어 일체가 되는 것이고, 自强不息이라는 것은 군자가 성인을 따라 배워서 마음을 보존하여 하늘을 섬기고 저 道를 體行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 역시 잘 터득한 것이다. 그러나 도와 더불어 體가 된다는 이 네 글자는 매우 정교하니, 대체로 만물이 생겨나고 물이 흐름은 道의 體가 아니라, 오히려 道와 더불어 體가 되는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夫子川上之歎有感於道體之無窮 勉人進學以求造乎純亦不已耳 각헌채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냇가에서 탄식한 것은 道體의 무궁함에 느낀 바가 있어서, 사람들을 권면하여 학문에 나아가도록 함으로써 순수함이 또한 그침이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하신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進於此 則安而行之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여기에 나아간다면, 편안하게 행하는 경지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有天德 則便是天理 便做得王道 無天德 則便是私意 是計較 人多無天德 所以做王道不成 주자가 말하길, “天德이 있으면, 곧 이는 天理이니, 곧바로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천덕이 없으면, 곧 이는 사사로운 뜻이고, 따지는 것이니, 사람들은 대부분 천덕이 없기 때문에, 왕도정치를 행하여 이룰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人多於獨處間斷 才不愼獨 便去隱微處間斷了 사람들 대부분은 홀로 있는 곳에서 중간에 끊기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홀로를 조심하지 않으면, 곧바로 은미한 곳으로 가서 중간에 끊기고 마는 것이다.
能愼獨 則無間斷而其理不窮 若不愼獨 便有欲來參入裏面 便間斷了 如何便會如川流底意 능히 愼獨할수 있다면, 중간에 끊어짐이 없으면서 그 이치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만약 愼獨하지 못하면, 곧 욕심이 생겨나와 마음속으로 들어갈 것이니, 곧바로 중간에 끊기고 말 것이니, 어떻게 냇물의 흐름과 같은 뜻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慶源輔氏曰 人心卽天德所寓 天地之道 常久而不已也 則純亦不已 非天德而何 聖人之心 則全具得此天德者也 卽是而推之 便是王道 人心天德王道只是一理 경원보씨가 말하길, “인심은 곧 천덕이 깃들어 있는 곳이고, 천지의 도는 항상 오래가면서도 그침이 없으니, 그 순수함 또한 그침이 없는 것이다. 천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성인의 마음은 이런 천덕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에 나아가 미루어간다면, 곧바로 왕도다. 인심과 천덕과 왕도는 그저 하나의 이치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楚辭辨證騷經 忍而不能舍也 洪氏註 引顔師古曰 舍止息也 屋舍次舍 皆此義 論語不舍晝夜 謂曉夕不息耳 今人或音捨 非是 按辨證 文公著於慶元己未三月 明年庚申四月 公易簀矣 集註舍上聲者 舊音 讀如赦者 定說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초사 변증 소경에는 ‘忍而不能舍也’라고 하였는데, 홍씨가 주석을 달아 안사고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길, 舍는 그쳐서 쉬는 것이니, 屋舍나 次舍는 모두 이런 뜻이다. 논어의 ‘不舍晝夜’라는 것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다. 지금 사람들 중 혹자는 捨라고 발음하기도 하는데, 옳은 것이 아니다. 변증을 살펴보건대, 문공은 경원 기미면 삼월에 저술하였고, 다음 해 경신년 사월에 공이 대자리를 바꾸었다. 집주에서 舍가 上聲이라고 한 것은 옛날 발음이니, 赦라고 읽은 것이 정설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