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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敬遠)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함을 말한다.
敬 : 공경할 경
遠 : 멀 원
[동의]
경이원지(敬而遠之)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경이원지(敬而遠之)라고도 한다. 즉, 존경을 하는 듯해도 속으로는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또 "그 사람 경원해야 할 사람이다"라고 말할 경우의 그 사람이란, 겉 다르고 속 다른 엉큼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뜻을 암시한다.
이 말은 논어(論語)의 옹야편(雍也篇)에 있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백성의 도리[義]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知)라고 말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問仁 曰; 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문인 왈; 선난이후획 가위인의.
이어서 번지가 “인(仁)이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어려움을 먼저 하고 얻음을 뒤에 하면 가히 인(仁)이라 이를 만하니라.”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제자와의 문답에서 제자의 자질과 상태를 파악하여 그에 맞게 답변했다. 가령 저돌적인 자로(子路)에게는 지(知)와 관련하여 위정(爲政)편 17장에서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이 앎이라”라고 하여 겸손하고 솔직한 자세를 취하도록 가르침을 주었다.
知之謂知之 不知謂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불지위불지 시지야.
위 문장에서 번지는 장문중(臧文仲)을 염두에 두고 공자에게 지(知)와 인(仁)에 대해 물은 것 같다. 장문중은 노(魯)나라 권력자로서 임금만이 가능한 점치는 거북인 채(蔡)를 개인 사당에 두고 또한 귀신을 잘 섬긴답시고 사당에 온갖 화려한 치장을 한 인물이다.
또한 원거(鶢鶋)라는 바다새를 국가 차원에서 섬기자고 하는 등 신비적인 의식을 중요시하였다(공야장편 17장). 점술과 제사의식을 통해 정사(政事)를 펼친 장문중이 당시 세간에는 지자(知者)로 알려져 있었다.
공자는 이러한 장문중의 행태를 결코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공자는 장문중에 대해 3가지 불인(不仁)한 행위로 불무민의(不務民義)하고 3가지 부지(不知)한 행위로 첨독귀신(諂瀆鬼神; 귀신에 아첨하여 모독함)한 자이기에 결코 지자(知者)가 아니라 하였다. (춘추좌전 문공 2년편과 논어 역해 1권 공야장편 17장 참조)
따라서 공자가 번지에게 전통적 예법에 따라 귀신(하늘신, 산천의 신, 조상신, 토지신)을 섬기기는 하되, 귀신을 신비화하지는 말라고(敬鬼神而遠之) 가르침을 준 것은 번지가 장문중을 염두에 두고 질문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인(仁)과 관련해서도 장문중의 3가지 불인(不仁)한 행위를 염두에 두고는 번지에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었다.
주자(朱子)가 말했다.
民은 亦人也라 獲은 謂得也라
민은 역인야라 획은 위득야라
민(民)은 또한 사람이라. 획(獲)은 얻음이라.
專用力於人道之所宜하고 而不惑於鬼神之不可知는 知者之事也오
전용력어인도지소의하고 이불혹어귀신지불가지는 지자지사야오
사람의 도리의 마땅한 바에 오로지 힘을 쓰고, 귀신의 알 수 없음에 미혹되지 않음은 지자(知者)의 일이라.
先其事之所難하고 而後其效之所得은 仁者之心也니 此必因樊遲之失而告之니라
선기사지소난하고 이후기효지소득은 인자지심야니 차필인번지지실이고지니라
그 일의 어려운 바를 먼저 하고 그 효력의 얻는 바를 뒤에 함은 인자(仁者)의 마음이니, 이는 반드시 번지의 잘못으로 인하여 (공자께서) 가르쳐 주심이라.
不務爲善而專媚神하여 以求福하고 不務去惡而專媚神하여 以免禍하면 皆不知也라
불무위선이전미신하여 이구복하고 불무거악이전미신하여 이면화하면 개불지야라
선(善)을 행하는데 힘쓰지 않고 오로지 신(神)에게 아첨하여서 복(福)을 구하고, 악(惡)을 버리는 데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신(神)에게 아첨하여서 화(禍)를 면하면 모두 다 지(知)가 아니니라.
정자(程子)가 말했다.
人多信鬼神은 惑也오 不信者는 又不能敬이니 能敬能遠이면 可謂知矣라
인다신귀신은 혹야오 불신자는 우불능경이니 능경능원이면 가위지의라
사람들이 귀신을 많이 신봉하는 것은 이것은 현혹당하는 것이며, 믿지 않는 것은 공경하지 않는 것이니, 공경할 수 있으면서 멀리할 수 있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又先難은 克己也오 以所難爲先하고 而不計所獲은 仁也라
우선난은 극기야오 이소난위선하고 이불계소획은 인야라
또한 어려운 일을 먼저 하는 것은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는 일이니,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는 이익을 따지지 않는 것이 인(仁)이다
여씨(呂氏)가 말했다.
當務爲急이오 不求所難知며 力行所知요 不憚所難爲니라
당무위급이오 불구소난지며 역행소지요 불탄소난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우선으로 여기고, 알기 어려운 것(귀신)을 추구하지 않으며, 알고 있는 것은 실천하기를 힘쓰고 행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노력이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일은 소용이 없다. 일찍이 소동파(蘇東坡) 가라사대 “그래도 높이 올라야 멀리 볼 수 있고, 노를 저어야 깊은 물을 건널 수 있다.” 즉, 존경을 하는 듯해도 속으로는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登高以望遠 搖槳以泳深.
등고이망원 요장이영심.
귀신을 경원(敬遠)한다
번지가 지혜와 인을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사람의 올바른 도의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하면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다.
仁者 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인자 선난이후획 가위인의.
인이란 어려움을 먼저하고 이익을 뒤로하면 인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의에 따른 삶을 살기보다는 이익에 따라 사는 경우가 많다. 이익에 따라 살면 남과 경쟁하여 이겨야 하기 때문에 삶이 피곤하다. 의에 따른 삶은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양심이 길러지기 때문에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삶은 당장 미래가 궁금하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미래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요령을 찾거나 요행을 기다리는데 시간을 낭비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귀신의 힘을 빌어 복을 구하고 화를 물리치려는 어리석은 잣은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귀신을 멀리하라는 것은 잘되게 해 달라고 빌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경원(敬遠)이라는 말이 나왔다 존경하되 가까이 말라, 또는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못마땅해 하는 것을 뜻한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해야 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을 쉽게 하되 이익은 먼저 가지고 싶어 한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지면 반목과 분열이 넘치게 된다.
힘든 일은 내가 남보다 먼저 하고 이익은 남보다 나중에 가지겠다는 마음으로 나간다면 서로가 상대방을 배려하게 된다. 서로 반성하며 화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樊遲問知한대 子曰 務民之義요 敬鬼神而遠之면 可謂知矣니라.
번지문지한대 자왈 무민지의요 경귀신이원지면 가위지의니라.
번지가 지(知)에 대해 묻자 공자 曰 사람이 지켜야할 도의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知)라 할 수 있다.
問仁한대 曰 仁者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문인한대 왈 인자선난이후획이면 가위인의니라.
다시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 왈 인자(仁者)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은 나중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仁)이라 할 수 있다.
민(民)은 백성도 되지만 더 포괄적으로 사람이라고 본다. 공자님 전용 운전 기사였던 번지(樊遲)는 좀 우둔해서 공자께서 가장 쉬운 말로 기초부터 일러 준다. 아마도 좀 탐욕스럽고, 미신을 잘 믿었던 모양이다.
귀신(鬼神)은 양신(陽神)과 음귀(陰鬼)의 합친 말인데, 양신(陽神)은 공경의 대상이고, 음귀(陰鬼)는 멀리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이를 잘 분별하는 것도 지혜란 것이다. 오로지 사람의 도리인 인도(人道)의 마땅한 바에 힘을 쓰고, 귀신의 알 수 없는 것에 혹하지 않는 것이 지(知)의 일이라고 한 것이다.
요즘은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귀신의 영역도 그만큼 축소 되었지만 옛날에는 자연 현상의 이변이나 재변(災變)들이 모두 귀신의 장난으로 여겨서 숱한 귀신들을 숭배했었기에 사람의 지각과 분별력으로 이를 잘 분변하는 것이 지혜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미신을 무지(無知)의 소치라고 했다.
그러나 귀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귀신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으니, 귀신을 통째로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을 섭리하는 또 다른 존재인 그 무엇을 귀신이라고 한다면 그런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할 수 있다면 지(知)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인 중에서 광신도가 되는 것도 공경하되 멀리하지를 못한 무지(無知)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획(獲)은 획득(獲得)이란 말처럼 얻음을 이른다. 공자께서 번지에게 선난후획(先難後獲)을 말씀하신 것도 번지의 선획(先獲)의 병통을 고쳐주려고 이런 선사후득(先事後得)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미리 그 공효(功效)를 계산하고 이후에 그 일을 한다면 그 일이 비록 공적인 것이라 하여도 그 뜻은 사(私)가 되니까 비록 공(功)은 이룰 수 있더라도 인(仁)과는 거리가 있다. 인자(仁者)는 먼저 그 일을 하고, 그 공효(功效)는 계산하지 않아서 오직 천리(天理)의 자연을 따르고 이(利)를 바라는 사심(私心)이 없다.
오히려 남보다 앞장서서 어렵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솔선수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자(仁者)는 하늘의 마음으로 한마음을 가진 사람이니까 남을 위해서 내가 먼저 어려운 일을 해 나가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되니까 남의 고통을 내가 먼저 가지며 그 일로 수반되는 공효(功效)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마치 어버이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모든 어려운 일을 해 나가는 그 마음과 같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 어버이가 자식 키운 공(功)을 자랑하거나 생색내는 부모가 없듯이 말이다.
이 뜻을 한나라의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길 “인인(仁人)은 그 의(義)를 바르게 하고, 그 이로움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道)를 밝히고, 그 공(功)을 계산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이를 말함과 같다.
정이천(程伊川)도 말하길 “어려운 일을 먼저 함은 극기(克己)의 일이니,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인(仁)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안연(顔淵)이 인(仁)을 물었을 때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것이 바로 인(仁)이라고 대답했으며, 안연편 21장에 번지가 공자를 따라 무우(舞雩) 아래에서 놀 적에 숭덕(崇德)을 묻자 선사후득(先事後得)이라고 답한 것처럼 일을 먼저 하고 소득을 뒤로 하는 것이 덕(德)을 높이는 길이자 바로 인(仁)의 길로 통하는 것이다.
경원(敬遠)이란 말은 여러 가지로 쓰이고 있다. 존경은 하면서도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그런 뜻으로도 쓰이고,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 하면서 속으로는 못마땅해 하는 뜻으로 쓰인다.
또 ‘그 사람 경원해야 할 사람이야’했을 경우의 그 사람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엉큼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이 경원(敬遠)이란 말은 논어(論語) 웅야편(雄也篇)에 있는 공자의 말이다.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어떤 것이냐고 묻자 공자(孔子)는 대답하기를 “백성은 백성의 도리(道理)를 정성껏 다 하면 그것이 의(義)가 되는 것이요, 귀신을 공경하면서 멀리하면 이것이 지(知)가 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백성의 도리란 곧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똑같은 물음에 대해서도 상대방에 따라 각각 다른 대답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대개는 상대방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처방과 같은 것이었다.
지(知)는 지혜(知慧)도 될 수 있고 지각(知覺)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역시 우리말의 ‘앎’즉 옳게 알고 옳게 깨달은 참다운 앎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묻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흔히 보통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올바른 지식보다는 잘 믿어지지 않는 미묘한 존재나 이치 같은 앎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공자 당시에도 그런 폐단이 많았고 번지(樊遲)도 또한 그런데 관심을 가지고 물은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실천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귀신의 힘을 빌려서 복을 구하고 화(禍)를 물리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아는 사람의 올바른 삶의 자세다.”라고 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어느 나라든 안정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신적인 국민의 통일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그래서 나라마다 엄(嚴)한 국법(國法)이란 것을 정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불교로 정신통일을 가져왔던 나라는 불교로 인해 망하고, 유교로 정신통일을 이룩한 시대는 유교로 인해 세상이 침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종교의 기반을 이루는 건전한 철학이나 사상이 차츰 그것과는 반대되는 교리나 행사로 변질되어 사람이 해야 할 도리는 하지 않고 부처님이니 신이니 하는 것에 매달려 보려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타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篇)에 보면 공자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정말 조상이 앞에 있는 것처럼 했고 조상 이외(以外)의 신(神)에게 제사를 드릴 때는 정말 신이 있는 것처럼 했다고 했다.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공자는 영혼이나 신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도 한다. 보이지 않더라도 정성으로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감사의 제사는 드렸어도 복을 빌기 위한 제사는 드리지 않았다. 그것은 귀신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속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귀신을 멀리하라는 것은 잘 되게 해달라고 빌지 말라는 뜻이다.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보면 공자(孔子)가 오랜 병으로 뉘어 있자 자로(子路)가 신명에게 기도를 드리고 싶다면서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공자는 “내가 기도한 지 이미 오래다”라고 대답하며 이를 못하게 했다.
예수도 말했듯이 하느님은 이미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바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새삼 중언부언(重言復言) 매달리는 것은 하나님을 인간이나 똑같이 대하는 불순한 행동이다. 사람의 할 일을 묵묵히 실천하면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길인 것이다.
공자가 말한 기도한 지 오래란 뜻은 성자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하나의 기도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敬(경)자는 회의문자로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苟(구)의 합자(合字)이다. 등글월문(攵)部는 급박하여 다가온다는 뜻이다. 혁은 엄격하게 격려한다는 뜻으로 말을 삼가는 뜻이 있는데 다시 등글월문(攵)部를 더하여 敬(경)은 한층 더 게을리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래서 삼가다, 조심하다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공손할 공(恭), 공경할 흠(欽), 공경할 지(祗), 공경할 건(虔)이다. 용례로는 노인을 공경함을 경로(敬老), 공경하는 마음을 경의(敬意), 존경하고 사모함을 경모(敬慕),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을 경청(敬聽),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인사를 경례(敬禮), 존경하여 일컬음을 경칭(敬稱), 초월적이거나 위대한 대상 앞에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상태에 있음을 경건(敬虔), 공경하고 중하게 여김을 경중(敬重), 공경하고 사랑함을 경애(敬愛), 존경하여 높이어 부르는 말을 경어(敬語),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존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함을 경원(敬遠), 공경하여 삼가 답장한다는 경복(敬復),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을 경이원지(敬而遠之),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함을 경천애인(敬天愛人), 노인을 공경하는 생각을 경로사상(敬老思想),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경외지심(敬畏之心) 등에 쓰인다.
▶ 遠(원)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袁(원)은 뜻을 나타내는 옷 의(衣)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止(지; 발)를 바탕으로 哀(애, 원)이 합(合)하여 옷이 치렁치렁한 모양이나 옷이 길다는 뜻과, 책받침(辶)部는 움직이는 일, 나아가는 일의 뜻으로 遠(원)은 길게 하다, 길다, 멀어지다, 멀다 등을 말한다. 그래서 멀다, 심오하다, 깊다, 많다, 세월이 오래되다, 멀리하다, 멀어지다, 소원하다, 내쫓다, 추방하다, 싫어하다, 어긋나다, 먼 데, 선조(先祖)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미륵 미(彌), 멀 유(悠), 길 영(永), 멀 하(遐), 멀 요(遙), 멀 료/요(遼), 길 장(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까울 근(近)이다. 용례로는 멀고 가까움을 원근(遠近),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원격(遠隔), 먼 곳으로 싸우러 가는 것을 원정(遠征), 먼 데 것은 잘 보이고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시력을 원시(遠視),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바다를 원양(遠洋), 멀리 가서 놂을 원유(遠遊), 중심으로 부터 멀어져 감을 원심(遠心), 아득한 먼 시대를 원대(遠代), 멀리 바라다 봄을 원망(遠望),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을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곳에 있어서 올 수가 없음을 원막치지(遠莫致之),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임을 원화소복(遠禍召福), 먼 데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함을 원족근린(遠族近隣),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원수근화(遠水近火)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