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86]삼의당三宜堂 부부와 미암眉巖 부부 이야기
# 엊그제 동네 ‘늙은 아가씨’들과 담양의 <미암박물관眉巖博物館>을 찾았다. 찾아가는 도중, 미암과 미암의 부인 송덕봉에 대해 일화를 몇 개 알려드리니, 오로지 농사만 아는 아가씨들도 흥미있어 했다. 망중한忘中閑, 점점 누렇게 변해가는 가을들판을 가로지르며 드라이브를 하는데, 좋지 않을 이가 있겠는가. 박물관은 불행히 수리중이라 닫혀 있어 전시물도 보지 못하고 헛걸음만 하고 돌아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미암은 유희춘柳希春(1513-1577. 중종 8년-선조 10년)의 호이며, 조선조 일기문학의 백미 <미암일기>로 유명한 문신이다. 벼슬이 정언, 장령, 전라감사, 이조참판에 이르렀지만, 을사사화와 양재역벽서사건으로 함경도 종성 등에서 귀양살이 19년을 했다. 외할아버지가 <표해록>으로 유명한 최부崔溥이고, 해남이 고향이다. 담양은 처향妻鄕, 말년에 부부가 같이 지낸 곳이다. 그가 쓴 일기는 ‘16세기 타임캡슐’로 불리며,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높다. 하지만,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부인 송덕봉(덕봉은 당호이다)과 주고받은 한문 편지들이 남아 있다는 거다. 남편이 아내의 편지를 모아 아내 생전에 <덕봉집>이라는 문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그 시대 드물게도 금슬이 좋았고 서로를 알아주는 대등한 지기知己였다.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가족간의 정이 주고받은 편지에 드러나 있다.
50대 후반의 미암이 서울에서 벼슬을 살며 몇 달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뻐기는 편지를 쓰자, 덕봉은 답장에서 자기의 사랑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라며 사대부의 도리나 잘 하라고 충고하는 등, 부부의 사랑편지를 읽다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우리의 부부애를, 우리는 40년 동안 얼마나 민주적으로 평등하게 반려자를 존중해주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당연히 그러지 않는 것같아 민망하다. 그들 부부가 멋지지 않은가? 남편이 한시를 지어 선물하자 아내가 한시로 화답했다는 <지락음至樂吟(지극한 즐거움을 읊다>이 박물관 앞 커다란 돌비에 새겨져 있다.
원화난만불수관園花爛漫不須觀
정원의 꽃들이 활짝 피었어도 모름지기 볼 것이 없네
녹죽갱장야등한綠竹鏗鏘也等閑
거문고 퉁소소리 요란해도 마음에 두지 않네(綠竹은 퉁소, 鏗鏘은 거문고소리)
호주연자무흥미好酒姸姿無興味
좋은 술, 아름다운 자태에도 흥미가 없으니
진유유재간편간眞腴唯在簡編間
정말로 즐거운 것은 책 읽는 것뿐이네(腴자는 아랫배가 살찌다는 뜻)
차운次韻한 아내의 답시는 이렇다.
춘풍가경고래관春風佳景古來觀
봄바람에 아름다운 풍경은 예부터 큰 볼거리이고
월하탄금역일한月下彈琴亦一閑
달 아래 거문고는 그 운치가 얼마나 한가로운가
주우망우정호호酒又忘憂情浩浩
술 마시면 근심도 잊고 마음이 확 트이는데(‘클 호’자 浩浩는 물이 넓게 흐르는 모양)
군하편벽간편간君何偏僻簡編間
그대는 어찌하여 책벌레만 되려고 합니까?
# 유희춘과 송덕봉 부부의 사랑편지를 몇 편 읽으니, 생각나는 또다른 부부가 있다. 삼의당(三宜堂) 김씨(1769-1823)과 담락당湛樂堂 하립河립(1769-1830, 립은 삼수변에 욱昱)이 그들이다. 남원 출신 한 동네 총각과 처녀가 연애결혼을 한 듯하다. 천생배필이었던가, 동년동월동일同年同月同日생. 그들은 첫날밤 고상하게도 한시를 주고받았다. 먼저 남편이 운을 떼겠다.
相逢俱足廣寒仙상봉구족광한선
우리 모두 광한전 신선으로 만나
今夜分明續舊緣금야분명속구연
오늘밤 분명 전생 인연을 잇는구려
配合元來天所定배합원래천소정
우리 만남은 원래 하늘이 정해준 듯
世間媒妁摠粉然세간매작총분연
속세의 중매는 그저 꾸며진 일이겠지요(媒妁은 중매, 摠은 모두, 粉然은 꾸며진 일)
젊은 남녀가 화촉華燭을 처음 밝히는 밤, 마음들이 급할 텐데도, 오호라, 새색시가 멋지게 화답을 하는 게 아닌가.
十八善郞十八仙십팔선량십팔선
열여덟 신랑과 열여덟 선녀가
洞房華燭好因緣동방화촉호인연
신방에 화촉을 밝히니 기막힌 인연이네요
生同年月居同간생동년월거동간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같은 마을에서 자랐으니
此夜相逢豈偶然차야상봉개우연
오늘밤 우리의 만남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참으로 풍류를 아는 부부이고녀. 일단 서로 ‘글이 통하’지 않은가. 삼의당은 남편을 향한 사랑시와 자연친화적인 시 등 250여편을 <삼의당집> 문집에 남겼다. 조선후기 여류문학의 꽃을 피워 올렸건만,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남편과 아들들이 벼슬을 크게 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생을 마쳤기 때문이리라. 삼의당이라는 당호도 남편 하립이 지어줬다. 남편의 과거 급제를 위해 서울로 올려보낸 후 십 수년을 독수공방하면서도뒷바라지에 헌신했으나 남편에 대한 사랑이 한결같았다고 한다. 이런 애정시 두 편을 감상해 보자.
<인적없는 사창에 날은 저물고/꽃은 떨어져 가득한데 문은 닫혀 있네/하룻밤 상사의 고통을 알고 싶다면/비단이불 걷어놓고 눈물자국 살펴보시오>
<맑은 밤에 물을 길러 갔더니/밝은 달이 우물 속에서 떠오르네/말없이 난간에 서 있으니/바람에 흔들리는 오동잎 그림자>.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남편은 진안 마령으로 이사해 농사를 짓자고 제안하는데, 순순히 따르는 아내. 평범한 농부가 되어 전원생활을 즐긴 듯하다. 마이산 탑사 가는 길에 <부부공원>이 있고, 그곳에 ‘삼의당 시비’가 세워져 있는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 흔히 문화를 사랑하며 멋과 맛을 아는 사내를 '풍류객風流客'이라고 말하지만, 이들 부부야말로 '풍류부부'이자 '낭만부부'가 아니었던가. 참으로 이 두 부부의 사랑이야기가 주고받은 한시와 편지로 전해 내려와,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주기 위함인가를 생각한다.
부기: 하서河西 김인후金仁厚(1510-1560)를 들어보셨으리라. 하서와 미암은 두 살 차이로 하서가 위이지만, 둘 다 '호남예학의 종장'이라고 불리는 기묘명현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1483-1536)에게 배운 동문으로 죽을 때까지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필암서원은 하서를 모시는 서원. 귀양간 친구에게 한시를 보내는데. 내용은 이렇다. <有美眉巖子 유미미암자/胡然使我思호연사아사/何當共一榻하당공일탑/開卷析毫氂개권석호리> 榻은 걸상, 호리는 책의 적은 분량을 뜻함. 아름다운 미암친구야, 어이해 그대를 그립게 만드는가. 어느 때 한 곳에 어울려 책을 펴고 세밀히 얘기를 하리? 미암도 곧 화답을 했다. <塞北無人間/河西獨我思> 북쪽에 문안할 사람 하나 없으니, 나는 그저 하서친구만 생각합니다는 뜻이 아닌가. 그들의 우정시가 지극히 아름답다. 귀양가는 친구에게 친구의 아들을 사위로 삼으며 위로를 해주는 친구, 우리는 그런 친구를 단 한 명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참고로 신재 최산두 선생은 초계 최가 중시조이고 나는 29대손이다. 흐흐.
가을햇살이 따가워도 너무 따갑다. 오후엔 도무지 어떤 일도 하지 못하겠다. 하기야, 이래야 나락이 제대로 영글겠지만. 백로가 지났으니 한가위도 얼마 남지 않았다. 67KM로 간다지만, 100KM로 후딱 가버리고 눈이나 몽땅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