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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관정왕유경(佛說灌頂王喩經) 해제
1. 개요
세 부류의 왕에 대한 비유를 통해 끊임없이 수행 정진하는 비구의 자세를 설한 경전이다.
2. 성립과 한역
북송(北宋)시대에 시호(施護, Dānapāla)가 1010년에 번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없음.
4. 구성과 내용
왕의 비유를 통해 비구의 수행 자세를 설명한다. 359자의 소경(小經)으로 경의 앞부분에 역자의 서문이 붙어 있다.
부처님이 사위국에 있을 때, 비구들에게 세 왕의 비유를 들려주었다. 어떤 곳에 세 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기 왕이 되자 왕위를 물려준 선왕의 은혜를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를 받들었다.
첫 번째 왕은 나이가 어릴 때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선왕을 죽을 때까지 받들었으며, 두 번째 왕은 자신의 명성이 어느 정도 있을 때 왕위를 물려받은 사람이었으나 그래도 선왕을 받들었다. 세 번째 왕은 위엄과 위세가 있었고 명성 또한 높을 때 왕위를 받았지만 선왕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이러한 세 왕의 비유를 통해 세 부류의 비구에 대해 설한다. 즉 첫 번째는 불도를 닦겠다고 결심하여 출가한 비구가 출가하여서도 계속 불도를 닦는 경우, 불도를 닦아 그 이치를 체득했으나 멈추지 않고 불도를 계속 닦는 비구, 또한 모든 번뇌를 다 떨어버리고 일체의 속박을 벗고 열반의 경지에 들었으나 불도를 닦는 마음이 변함없는 비구가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항상 불도를 수행하는 정진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불설관정왕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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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
大宋新譯三藏聖教序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太宗神功聖德文武皇帝) 지음
太宗神功聖德文武皇帝製
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
大矣哉!我佛之教也。化導群迷,闡揚宗性。廣博宏辯,英彦莫能究其旨;精微妙說,庸愚豈可度其源。義理幽玄,眞空莫測;包括萬象,譬喩無垠。綜法網之紀綱,演無際之正教;拔四生於苦海,譯三藏之祕言。天地變化乎陰陽,日月盈虧乎寒暑。大則說諸善惡,細則比於恒沙。含識萬端,弗可盡述,若窺像法,如影隨形。離六情以長存,歷千劫而可久,須彌納藏於芥子,如來坦蕩於無邊。
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가 저 멀리 향계(香界)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達磨西來,法傳東土,宣揚妙理,順從指歸。彼岸菩提,愛河生滅,用行於五濁惡趣,拯溺於三業途中。經垂世以難窮,道無私而永泰。雪山貝葉,若銀臺之耀目;歲月煙蘿,起香界之自遠。巍巍罕測,杳杳難名。所以道資十聖,德被三賢,至道起於乾元,衆妙生乎太易。摠繁形類,竅鑿昏明,絕彼是非,開茲蒙昧。
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은 항상 사인(四忍)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다운 지혜가 거듭 열린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에서 사시(四始)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
有西域法師天息災等,常持四忍,早悟三乘,翻貝葉之眞詮,續人天之聖教。芳猷重啓,運偶昌時,潤五聲於文章,暢四始於風律。堂堂容止,穆穆輝華。曠劫而昏墊重明,玄門昭顯;軌範而彌光妙法,淨界騰音。利益有情,俱登覺岸,無成障礙,救諸疲羸。冥昧慈悲,浩汗物表,柔伏貪很,啓滌昏愚。演小乘聲聞合其儀,論大乘正覺立其性,含靈悟而蒙福,藏教缺而重興。
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
幻化迷途,火宅深喩,雖設其教,不知者多。善念生而無量潛臻,惡業興而隨緣皆墯,調御四衆,積行十方。澍花雨於金輪,護恒沙於玉闕,有頂之風不可壞,無際之水弗能漂。澄寂湛然,圓明淸淨之智慧,性空無染,妄想解脫之因緣。可以離煩惱於心田,可以得淸涼於宇宙。
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朕慚非博學,釋典微閑,豈堪序文,以示來者?如縻螢爝火,不足比之於皎日;將微蠡量海,未能窮盡於深淵者哉!
어제계작성교서(御製繼作聖教序)
御製繼作聖教序
높고 밝은 것이 처음으로 나뉘자 삼진(三辰)이 비로소 차례로 나타났고, 두텁게 실어주는 것이 비로소 안정되자, 만물이 이로써 실마리를 일으켰으니, 맑음과 탁함의 본체가 이미 밝혀진 것이요, 선과 악의 근원이 여기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다음에 문물(文物)로 그 가르침을 세우고 바른 법전[正典]으로 그 세속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익의 공은 모두 이치로 돌아간다. 이렇게 상법(像法)이 서쪽 나라에서 와 진제(眞諦)가 중국에 유포되었지만 천고의 세월을 관통하는 진실한 이치는 궁구할 방법이 없고, 구위(九圍)를 포괄하는 현묘한 문은 궁구할 수가 없다. 허망한 생각으로 말하자면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고, 참된 모습을 나타내자면 터럭 하나에도 원만하니, 광대한 그 가르침을 어찌 기술할 수 있겠는가!
高明肇分,三辰方乃序其次;厚載初定,萬彙於以發乎端。淸濁之體旣彰,善惡之源是顯。然後以文物立其教,以正典化其俗,利益之功,同歸於理。於是乎,像法來於西國,眞諦流於中夏。洞貫千古,眞實之理無以窮;囊括九圍,玄妙之門莫能究。言乎妄想,則五蘊皆空;現乃眞容,則一毫圓滿。廣大之教,豈能紀述者哉!
삼가 살피건대,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께서는 법성이 두루 원만하시어 인자함을 널리 베푸셨다. 오랑캐들을 교화하시자 만방(萬邦)이 바큇살처럼 몰려들어 온 백성을 인수(仁壽)의 영역에 올려놓으셨고, 교법을 숭상하시자 사해(四海)가 구름처럼 뒤따라 창생에게 풍요로운 땅을 베푸셨다. 존귀한 경전이 방대함을 보시고는 방편을 시설해 물에 빠진 자들을 구제하셨고, 법계가 광활함을 아시고는 정진을 행하여 나태한 자들을 거두셨다. 이에 아늑한 절을 선택해 저 참된 문서들을 교열하고는 천축의 고승들에게 명령하여 패다라(貝多羅)의 부처님 말씀을 번역하게 하셨다. 상아 붓대가 휘날리며 황금의 글자를 완성하고, 구슬을 엮어 다시 낭함(琅函)에 안치하자 용궁(龍宮)의 성스러운 문장이 새롭게 탈바꿈하였으니, 취령(鷲嶺)의 필추(苾芻)들마저 우러러 감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삼승(三乘)이 모두 하나로 꿰뚫어지고 사제(四諦)가 함께 원만해졌으니, 고(苦)가 공하다는 참되고 바른 말씀을 완전히 밝히고, 정밀히 연구한 비밀스러운 뜻을 환히 드러냈다. 상(相)을 찬탄하는 상이 바로 진실한 상이고, 공(空)을 논하는 것도 공하여 모조리 공이라 하였으니, 화엄(華嚴)의 이치와 궤도를 같이하고, 금상(金像)의 가르침과 규구(規矩)가 동일하였다.
伏覩太宗神功聖德文武皇帝,法性周圓,仁慈普布。化蠻貊則萬邦輻湊,躋蒸民於仁壽之鄕;崇教法則四海雲從,惠蒼生於富庶之域。見尊經之浩汗,設方便以救沈淪;知法界之恢宏,行精進而攝懈怠。乃擇其邃宇,挍彼眞文,命天竺之高僧,譯貝多之佛語。象管翻成於金字,珠編復置於琅函,龍宮之聖藻惟新,鷲嶺之苾芻仰歎。由是三乘共貫,四諦同圓。盡苦空眞正之言,顯祕密精硏之義。讚相相乎實相,論空空乎盡空。華嚴之理合軌轍,金像之教同規矩。
짐은 대업(大業)을 계승하여 삼가 황위에 임했기에 항상 조심하면서 만백성을 어루만지고 매일 긍긍하면서 선황의 훈계를 지켜왔다. 불교경전[釋典]에 대해서는 더구나 정밀하지도 상세하지도 못하니, 진실로 그 그윽하고 심오한 뜻을 어찌 탐색하고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역경원(譯經院)의 서역 승려 법현(法賢)이 간절한 글을 올리고 그 뜻을 너무도 열심히 피력하였다. “선황제께서는 참된 교화의 바람을 크게 펼치고 부처님의 뜻을 높이 전하셨으며, 전대의 왕들이 빠뜨린 전적을 흥성시키고 각로(覺路)의 무너진 기강을 다시 떨치셨다”고 하면서, 하늘이 이룬 공로를 높이 휘날리고 성황의 글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나에게 서문을 지어 성인의 가르침을 계승해달라고 청하였다.
朕纘嗣丕搆,恭臨寶圖。常翼翼而撫兆民,每兢兢而守先訓。以至釋典,尤未精詳。諒其幽深,曷能探測?有譯經西域僧法賢,奏章懇切,致意專勤。以先皇帝大闡眞風,高傳佛旨。興前王之墜典,振覺路之頹綱。欲旌天造之功庸,用廣聖文之述作。請予製序,繼聖教焉。
성고(聖考)께서 승하하시고 추호(追號)가 아직 잊히지도 않았는데 정사 밖에 마음을 둘 겨를 어디 있었겠는가? 담제(禫祭)를 마치고 이제야 생각이 은미하고 오묘한 곳에 미치게 된 것이다. 어려서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능통한 재주가 본래 부족한 걸 어쩌랴. 법해(法海)의 나루터와 언덕을 어찌 궁구하리오! 공문(空門)의 문턱으로 나아가질 못하니, 대략 대의나마 서술하여 이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부응할 따름이다. 소발자국에 고인 빗물이라 태양을 씻는 파도에 빗대기에는 부족하니, 한척짜리 채찍이 어찌 드넓은 하늘의 그림자를 측량할 수 있으랴! 이렇게나마 짧은 서문을 지어 이로써 성인들의 공로를 기록할 따름이다.
自聖考上僊,追號罔息,政事之外,何暇經心?今已禫除,思臻微奧。雖幼承慈誨,奈夙乏通才。焉窮乎法海之津涯,莫造乎空門之閫域。略敷大意,以徇輿情。蹄涔不足擬浴日之波,尺箠豈能量昊天之影。聊述短序,以紀聖功者焉。
불설관정왕유경(佛說灌頂王喩經)
佛說灌頂王喩經
서천(西天) 역경삼장(譯經三藏) 조봉대부(朝奉大夫) 시광록경(試光祿卿) 전법대사(傳法大師) 사자(賜紫) 신(臣) 시호(施護) 등 명을 받들어 한역
西天譯經三藏朝奉大夫試光祿卿傳法大師賜紫臣施護等奉 詔譯
그때에 세존께서는 사위국(舍衛國)에 계시면서 어떤 인연이 있어서 필추(苾芻: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세 종류의 그 찰제리왕(刹帝利王)은 일생에 세 번을 어떤 곳에서 왕의 관정(灌頂)을 받고 목숨을 마칠 때까지 항상 그것을 명심한다.
爾時世尊,在舍衛國,以因緣故,告諸苾芻言:“汝等當知,有三剎帝利王,於三時中,在於某方,受王灌頂;而彼三王,乃至盡壽,常所思念。何等爲三?謂第一王,年方少盛,依灌頂法,在於某方,受王灌頂;得灌頂已,乃至盡壽,常所思念。又第二王,功力漸大,依灌頂法,在於某方,受王灌頂;得灌頂已,乃至盡壽,常所思念。又第三王,有大威力,戰勇最勝,一切對敵,而悉信伏;以最勝故,得勝安住,依灌頂法,在於某方,受王灌頂;得灌頂已,乃至盡壽,常所思念。
세 번이란, 첫째왕은 나이가 한창 젊어서 관정법에 의하여 어떤 곳에서 왕의 관정을 받고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항상 그 일을 명심한다. 둘째왕은 공덕의 힘이 차츰 커져서 관정법에 의하여 어떤 곳에서 왕의 관정을 받고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항상 그것을 생각한다. 또 셋째왕은 큰 위력이 있고 가장 훌륭하게 잘 싸워 모든 적을 다 항복 받음으로써, 가장 훌륭하기 때문에 제일 편안하게 산다. 그리고 관정법에 의하여 어떤 곳에서 왕의 관정을 받고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항상 그 일을 명심한다.
汝諸苾芻,亦復如是,於三時中,在於某方,作修證事,乃至盡壽,常所思念。何等爲三?謂有苾芻,發正信心,捨家出家,剃除鬚髮,被袈裟衣;此爲第一,在於某方修苾芻事,乃至盡壽,常所思念。又有苾芻,修諸勝行,爲證滅故,斷諸,集法;如是知已,遠塵離垢,於諸法中,得法眼淨;此爲第二,在於某方修苾芻事,乃至盡壽,常所思念。又有苾芻,諸漏已盡,非漏隨增,心善解脫,慧善解脫,自智所證,已得成就: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受後有;此爲第三,在於某方證聖果事,乃至盡壽,常所思念。”
佛說灌頂王喩經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