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의 눈길 고속도로를 과속질주 하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되려 우리에게 손가락 욕을 하는 이상한 인간이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무리한 불법 추월을 해놓고도 미안해하기는 고사하고 우리에게 욕을 한 것이다. 동양인이어서 무시한 걸까.
그래놓고는 쏜살같이 냅다 달려 가버린다.
그는 폭스바겐 은색 골프 소형차.
우리는 신형 푸조 9인승 티피 승합차였다. 그리고 깊은 밤, 이태리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도로상태는 조금 미끄러웠다.
그냥 내버려 둘까 하다가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도 모르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속도계는 어느 사이에 180에 다가가고 있었고 뒤를 따르던 영준의 차량도 놀란 듯 이내 우리 차 뒤를 바짝 붙어서 달리기 시작한다.
나쁜 놈은 이미 자기가 잘못한 걸 알고 있는 듯 우리 차가 뒤를 쫓으니 더 속도를 높여 달아나기 시작했고 우리 차의 속도계는 시속 200km에 육박하고 있었다.
차에는 함께 선교훈련 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타고 있었고 운전석 바로 뒷자리엔 이제 갓 돌이지난 노엘이를 아내가 안고 있었다. 아내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지나고 보니 대단히 위험했고 무모한 짓이었지만 그 상황에선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프랑스 호텔에서 너무나도 억울하고도 심한 인종차별을 당한 후여서 더 그랬다(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하려니 호텔 직원 놈이 여긴 프랑스이니 불어로 말하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영어를 못하니 체크인이 불가능하다나. 통역할 사람이라도 찾아오라고 엿을 먹인다. 그래서 일단 잠시 자리를 떴다가 돌아오니 미국 여성과 실컷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경찰을 불렀다).
죽어라 줄행랑을 치던 은색 골프가 샛길로 급히 빠져나갔다. 마치 겁먹은 쥐새끼처럼 말이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기도 했고 우리도 얼른 로마에 도착해야 해서 가던 길을 가기로 하고 속도를 늦추었다.
미끄러운 눈길에 사고라도 났다면 어찌하려고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내 운전 경력 41년에 가장 위험했고 난폭한 운전이었다.
하나님 앞에, 그리고 아내와 어린 아들, 함께한 모두에게 진심으로 미안하였다.
그리고 몹시도 창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