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금요일 강론>(2024. 10. 4. 금)(루카 10,13-16)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복음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3-16).”
1)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이미 지은 죄에 대한 ‘선고’로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고, 예수님이 ‘잃은 양’ 하나를
찾으려고 애쓰는 목자이신 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말씀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받을 것이라는 ‘경고’이고,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라고 타이르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라는 특정 도시들만
꾸짖으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전체를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불행하여라.”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즉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2) ‘티로’와 ‘시돈’은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
또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뜻합니다.
하느님을 몰라서 안 믿었더라도, 또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안 믿었더라도, 죄는 죄이고,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안 믿은 사람들과
믿는다고 자처하면서도 믿는 사람답게 살지 않은
사람들과는 좀 다른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또는 복음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느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살았지만,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살고, 착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들을 기회가 없어서 전혀 몰랐던 경우와 듣고서도
거부한 경우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에 성탄절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고, 그날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알 기회가 없어서 믿지 못했다는 변명은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 지역 사람들이나 이슬람 지역 사람들이라면
그런 변명이 통할 수도 있겠지만...
3) 13절의 예수님 말씀의 뜻은, “너희가 얼마나 큰 은총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깨닫고, 지금 회개하여라.”입니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은 “너희가 받은 은총들”입니다.>
“나는 받은 은총이 없다. 그러니 회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에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면,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큰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누군가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짚어보면서 “이것도
은총이었고, 저것도 은총이었다.” 라고 가르쳐 줄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가 “그게 무슨 은총이냐?” 라고 부정해
버리면 도와줄 방법이 없고,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뉘우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카파르나움’은 자만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교만한 위선자들을 가리킵니다.
“나는 정말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틀림없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라고
스스로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따로 회개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교만과 위선부터가 죄입니다.
16절의 말씀은, 복음을 선포하려고 떠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곧 ‘예수님의 말씀’이고,
‘구원의 진리’ 라는 것을 보증해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제자들(신앙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곧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이며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고, 복음을 거부하고,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원받기를 거부함으로써
구원받지 못합니다.
4) 우리는 ‘회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개를 단순하게 죄를 뉘우치는 일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죄를 뉘우치는 것은 회개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회개는 인생과 삶 전체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전부 다,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변화시킨 다음에는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회개입니다.
배반자 유다의 경우를 보면, 그는 자기 죄를 뉘우쳤지만
회개하지는 않았고, 그냥 자살해버렸습니다(마태 27,3-5).
배반자 유다가 자살한 것은 죄책감 때문일 텐데,
용서받기를 거부한 일이기도 하고, 용서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버린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멸망으로 갔습니다(마태 26,24).
[출처]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