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타이어의 자세 / 윤의섭
한 번은 죽었으니까
저렇게 아 하고 하늘 향해 입 벌리고 재생을 기다리는 거다
쓰러지고 나서야 몸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안다
삶은 공허하다라는 말은 바퀴에서 생겨난 것일까
그러나 더는 구르지 않아서 편안해 보이는 중음의 시간
화분이 되면 가슴에서 꽃을 피우기도 하지만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끝에 놓여있다는 것
길을 가지 않고 길에 누워버렸다는 것
빗물이 고이고 쓰레기가 채워져도 둥근 달을 올려볼 수 있다는 것
폐기된 아름다움
버려졌거나 마감했거나 마지막에 다다랐거나
모두 덩그러니 쓰러진다
이것은 살아있을 때의 자세를 고치는 일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다는데
폐타이어는 지상에 누워 스스로 별자리를 만든다
곱게 누웠다
ㅡ 계간 《시와 정신》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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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의섭 시인
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 아주대 국문과 졸업. 同 대학원 박사.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및 1994년 《문학과 사회》 등단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 『묵시록』 등
2020년 김구용문학상 수상
현 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