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 총재 한마디에 전 세계 주식시장과 유가가 반등하는 걸 보면 왜 미국은 침묵하는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금융 흐름에 제법 안목이 있는 레이쓰하이는 'G2-슈퍼달러의 대반격'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중국을 혼내려는 미국의 저의가 있다고 기술한다.
중국이 마침 특별인출권(SDR) 리저브 통화에 지정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출범하면서 금융굴기 하려던 찰나 주가가 폭락했다. 증시 추락과 유가 폭락은 아직 결말을 내지 못한 것 같다. 27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발언, 한 달 후 상하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 메시지가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신흥국 증시는 작년 고점 대비 26% 추락했고, 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생산원가가 배럴당 11달러여서 바닥을 알 수 없다. 현재 전 세계 생산량은 하루 9630만배럴, 소비는 9450만배럴로 180만배럴이 남는 판에 이란이 50만배럴 이상을 쏟아내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기름값이 기름에 빠져 죽는 모양새다.
이제 역(逆)오일쇼크 시대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생산 타격으로 인한 손실이 유가 하락으로 인한 이득보다 국내총생산(GDP)에 0.3%포인트 크다는 보고서를 냈다. 한국은 이런 계산을 하는 기관도 없다. 산유국 수출, 해외플랜트·조선·철강·건설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역오일쇼크가 더 크리라.
주가와 유가의 쌍둥이 추락에 "2008년 같은 큰 위기가 덮칠 것 같다"는 걱정이 크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은 "테일 리스크(tail risk)가 잘못 전개되면 몰라도 위기 자체는 아니다"고 설명한다.
작년 12월 이후 한국에서 외국 자본이 주식과 채권을 합쳐 16조원가량 팔고 떠났지만 한국만 불리했던 것은 아니다. 루블화는 무려 87% 폭락했고 사우디는 재정적자가 GDP의 15%에 달한다.
양대 시장 대폭락에 가렸지만 연초 4차 산업혁명을 소개하는 행사가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CES와 다보스포럼이었다. 양대 행사는 공교롭게도 정보통신혁명 이후 산업 발전의 장래를 다뤘다. 초지능·초연결 사회 진입 단계에서 산업 발전의 변화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핀테크 드론 자율운전 같은 기술을 세계 각국이 선보였다. 인텔은 3차원 사진기술을 내보였고 BMW는 스스로 주차하는 차를 내년부터 판매한다고 하는 순간 테슬라는 이미 그런 기술을 탑재했다고 발표했다. 가파(GAFAT),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는 아예 전시회에 출품조차 하지 않는 자존감을 뽑낸다. 팡스(FANGs·넷플릭스 포함)는 인도에 진출한다는 선전이 요란했다.
한국 벤처 1세대 B 회장은 CES를 이렇게 평가했다.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대가를 확실히 보상해주는 체계다. 슘페터 정신이 살아 있어 최우수 두뇌와 돈이 몰린다."
7년간 현장을 찾은 모 그룹 부사장은 "4차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미국이 압도하고 있고 이스라엘, 그리고 놀랍게도 영국이 잘하더라. 중국은 드론 분야에서 인해전술 하는 정도다. 그런데 한국은 삼성 LG 현대차 등 그룹만 있고 자라나는 싹은 안 보였다."
얼마 전 홍콩에서 미국계 투자은행(IB)이 100조원 규모를 아시아 국가에 투자하기 위해 호주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9개국 대표를 불러 투표를 했는데 한국이 꼴찌를 했다. 이 회의에서 일본이 2위를 했다.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은 지금 위기인지 여러 경로로 질문을 던져봤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금 한국 기존 산업은 제대로 안 된다는 공감대는 돼 있고 신산업을 키워야 하는 문제점을 알면서도 그걸 하겠다는 결의가 있기는 한가"라고 묻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핵심층은 세 가지 측면에서 IMF 때보다 지금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첫째, 당시는 한국 등 일부만 위기여서 회복이 쉬웠는데 지금은 다르다. 둘째, 정치가 완전히 법안 통과 발목을 잡고 있으며, 셋째, 기업가정신 실종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알고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도 거의 없고 국내에는 마침 재벌 3·4세가 핵심으로 등장하면서 온실효과만 가득하다. 오로지 거버넌스 안정만 추구한다. 국회 선진화법은 한국에 처칠, 루스벨트 같은 탁월한 지도자가 와도 무력화시킬 것이다.
미국은 10년 후 독립 25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중국은 제조업 2025년, 독일은 산업 4.0 플랫폼으로 미래를 꿈꾼다. 올해 신년 업무계획 보고가 끝났지만 한국은 10년, 20년을 준비하지 않는다. 대(對)이란 외교에서도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선수를 뺏기고 있다. 돈도, 두뇌도, 기회도, 한국을 통과(pass)해 버린다. 이것이 위기가 아니고 뭔가.
[김세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