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성을 전형으로 갖고 있던 특유의 리프 메이킹이 이제 간단한 모양으로 결과물을 내는 데다 러닝 타임 중간마다 심심치 않게 변곡점을 투하하던 전개 방식은 보다 직선적인 방향으로 곡을 이끈다. 이따금씩 선율의 호흡을 길게 늘리던 송라이팅도 짧고 긴밀하게 멜로디를 구축해 좀처럼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더욱 접근성 좋게 사운드를 구성하려는 의향이 위 지점들에서 다분히 드러난다. 이기 팝의 최근 앨범 < Post Pop Depression >을 제작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크 론슨을 프로듀서로 초대한 일 또한 이와 같은 의도에서 발로했으리라. 덕분에 전작 < …Like Clockwork >를 장중한 대작으로 만든 지난 번의 난해함은 자취를 다수 감췄다. 실험성으로 무장한 아트 록 성향을 펑크의 대부에게 선사하고서 조시 호미는 캐치한 요소들을 덧붙인 스토너 록 사운드를 들고 밴드로 복귀했다.
< Villains >의 색채가 가장 잘 나타나는 지점은 역시 앨범의 두 번째 순서 'The way you used to do'에 자리해 있다. 스윙 리듬을 바탕으로 퍼커션과 박수 소리, 기타 리프를 쌓아올려 사운드를 만들고 접근성 좋은 멜로디 훅들을 아낌없이 덧붙인 이 복고 식의 댄서블한 로큰롤 트랙은 밴드의 새 음악이 마냥 까다롭지만은 않다는 점을 흥겹게 증명한다. 이같은 양상은 'The way you used to do' 전후에 배치된 여타 곡들에서도 쉽게 확인 가능하다. < …Like Clockwork >에서 건너온 듯한, 트랙 오프닝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그루비한 록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Feet don't fail me'나, 리드미컬하게 움직여대는 기타와 베이스에 곡의 주도권을 맡긴 개러지 펑크 풍의 트랙 'Head like a haunted house', 레드 제플린 식의 하드 록 리프들이 러닝 타임을 이끌어가는 'The evil has landed'도 이 맥락에서 함께 얘기하자. 댄스 리듬과 업비트의 멜로디를 한껏 부각하는 연출 구성들을 동원해 밴드는 앨범 도처에다 춤추고 흐느적거리기에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둔다.
마크 론슨과 손잡은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변이는 사운드 톤의 측면에서도 적잖이 일어났다. 앨범 전체를 놓고 보자면 텍스처는 상당히 말끔하다. 작품 전반에 있어 어느 정도 사운드 공간을 확보해 몽환감을 이끌어내되 개개의 파트 단위에서의 잔향을 지나치게 길게 남기지 않는다. 또한 이들의 상징이라 할 거칠게 왜곡한 음향과 바삭거리는 크런치 톤을 계속해 기타에 먹이면서도 여기서 발생하는 먹먹하고 지저분한 컬러가 예처럼 음악 전반을 완전히 뒤덮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게끔 만든다. 거친 질감을 강조하나 깔끔한 바탕을 형성해 두는, 트렌디한 접근을 만나볼 수 있다. 클래식한 록을 바탕으로 한 지난 전법들과는 결이 다르다.
정말 멋진 점은, 이러한 팝적인 접근이 짙게 들어섰음에도 < Villains >를 결국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요인들에서 발생한다. 리프나 진행, 톤과 같은 세부 단위들에서 어느 정도 무게감을 덜어냈다고는 하나 중심에 있는 밴드 고유의 스타일에는 변함이 없다. 다이나믹함은 줄었어도 뻗어 나가는 사운드에는 완력이 넘치며, 스토너 록이 가진 음침하고도 끈적한 컬러 또한 기타와 베이스 선율에 존재함은 물론, 키보드와 보컬 코러스 등을 이용해 간헐적으로 사이키델릭한 색채를 자아내는 장치와 조시 호미의 목소리를 타고 마지막 단계에서 밴드의 음악을 완성하는 멜로디 가득한 보컬 파트 또한 이번에도 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루브를 머금고 끈끈하게 러닝 타임을 밀고 가는 'Feet don't fail me'와 'The way you used to do', 'The evil has landed'의 리프들,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며 트랙 리스트 한복판에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Head like a haunted house'의 로킹한 사운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전개 구조 위에서도 기어이 환각을 펼쳐내고야 마는 'Fortress'와 'Un-reborn again'의 사이키델리아와 같은 성분들은 그룹의 중심이 본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Domesticated animal'에 들어선 변박, 'Fortress'의 기저에서 횡행하는 드론 식 기타, 앨범의 오프닝과 클로징만큼은 조금 어지럽게 가져가는 구성 등, 은근슬쩍 내어놓는 장난스러운 터치 역시 마찬가지. 밴드가 오랜 기간 보여온 어휘들이 잘 드러난다. 퀸스 오브더 스톤 에이지의 정체성은 견고하다. 마크 론슨과 함께 이행한 변화는 결코 내부 깊숙한 지점을 헤집지 않는다. 변용의 다수는 외피의 조형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 Villains >는 근사하다. 멀끔한 사운드 톤이 멋지게 음악을 휘감고 댄서블한 리듬이 신나게 꿈틀거림과 동시에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 본래의 스토너 사운드가 걸걸하게 소리를 뿜어댄다. 하이라이트가 드리우는 'The way you used to do'와 'Feet don't fail me', 'The evil has landed' 'Un-reborn again'rhk 같은 트랙들을 보자. 마초의 댄스 록. 조금은 괴이쩍은 미소와 약간은 음산한 마력이 씌인, 거친 몸짓이 내는 검질긴 춤사위에서는 무시무시한 흡인력이 깃들어있다. 그렇게 또 하나의 대단한 결과물이 마스터피스가 즐비한 밴드의 디스코그래피를 빛낸다.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최고작을 논함에 있어서는 물론 두어 개, 혹은 서너 개의 손가락이 고부러진 다음에야 < Villains >가 등장할 테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작품을 논한다면 앨범은 첫 순서에 꼽혀도 어색하지 않다. 그룹의 리더와 앨범의 프로듀서가 가진 대단한 달란트는 캐치함과 동시에 밴드의 컬러가 잘 우러날 수 있는 방향으로 음악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손해는 없다. 결고 적다고 할 수 없는 양의 변화를 가져오면서도, 이들은 그간 쉽게 보이지 않았던 신선한 색깔과 훌륭한 레퍼토리라는 성과를 동시에 손에 움켜쥐었다. 나름의 의미까지도 앨범에 따르고 있지마는, 무엇보다도 차지고 끈끈하고 잘 들리는, 그야말로 쌔끈한 아홉 개 록 트랙들이 쉼 없이 들썩거린다. 덩달아 흔들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수록곡-
1. Feet don't fail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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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e way you used to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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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omesticated animals
4.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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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Un-rebor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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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Hideaway
7. The evil has la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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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Villains of circumstance
첫댓글 아직 두번 들어봤는데 펑키한면은 강화된 한편 헤비와 사이키한 느낌이 많이 결여되서 좀 불균형한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