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선생님의 카톡에서]
^^오늘의 좋은글^^
좋은 運(운)을 부르는 친구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듣는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수있다.
자식을 보면
그 사람의 부모를 알수있다.
만나는 남자를 보면
여자의 수준을 알수있다.
사귀는 여자를 보면
남자의 됨됨이를 알수있다.
사람은 사귀는 사람이나
주위의 인간관계에 따라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
친구 관계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사람은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밖에 사귀지 못한다.
즉 자신을 향상 시키고 발전시키며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이 아니면
운을 부르는 친구를 사귈 수없다는 말이다.
둘째, 진짜 친구이거나
서로 존경 할 수 있는 친구는
한 두사람 많아야 세 명 정도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절친한 친구는
얻기 어렵고 그 만큼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깊이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관계는
사람이 많으면 만들어 가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운을 부른다는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성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따돌리거나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신뢰 할 수 있는 친구란 마지막 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좋아 하는 사람이다.
다른사람이 기뻐하는 것을보고
좋아 하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자극을 주는사람이다.
친구가 좋은 것은
서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서로 자극하는 사이란
서로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좋은 모델이 되어주는 것이다.
질투심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다.
좀더 발전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에 대한
질투심이 생기는것은 당연하다.
상대를 물리치고 이성에게
사랑도 받고 싶을 것이고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질투심은
인생을 살아 가는 데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치면 우정이라는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인색함은 겁 많은 것과 함께
절대 고칠 수 없는
두가지 성격이라고 한다.
구두쇠와 사귀면 재미가 없다.
절약하는 것과 인색한 건 다르다.
절약은 만일에 대비해서 모으는 거지만
인색함은 혼자만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이상 다섯가지 미덕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 운을 불러주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모셔온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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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회장과 미꾸라지와 메기
三星그룹의 故'이병철' 회장의 젊은 시절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자신의 고향인
경남'의령'에서 농사를 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일찍부터 이재술(理財術)
이 뛰어 났던지 논(畓)에서 돈 버는 방법을 연구해 냈습니다.
당시의 논 1마지기(200평)에서는 농사가 잘 되어야 쌀 2가마니가 생산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회장은 시험삼아 논 1마지기에는 벼를 심고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1마지기 200평에는 '미꾸라지' 새끼 1,000마리를 사다가 봄부터 길렀습니다.
가을에 수확 때까지 양쪽 모두
똑같은 비용을 투입하여 각각 재배하고 길렀는데 벼를 심은 논에서는 역시 쌀 2가마니가 생산되었고 미꾸라지를 기른 논에서는 커다란 미꾸라지가 약 2,000마리로 늘어났습니다.
그것을 전부 잡아서 시장에 팔았더니 쌀 4가마니 값을 받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또 시험양식(養殖)을 했습니다.
한쪽 논 200평에는 역시 어린 미꾸라지 1,000마리를 작년과 같이 길렀고 다른 논 200평에는 미꾸라지 1,000마리와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사는 천적(天敵)인 '메기' 20마리를 같이 넣고 길러서 가을에 양쪽 모두 수확을 하고 보니 처음 논에는 2,000마리의 미꾸라지가 생산되었고 메기와 미꾸라지를 같이 넣어 길렀던 다른 논
200평에서는 메기들이 열심히 미꾸라지를 잡아먹었는데도 미꾸라지가 4,000마리로 늘어났고 메기도 200마리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그걸 모두 팔았더니
쌀 8가마니에 해당되는 돈을 벌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우주(宇宙) 생명계(生命界)의 자연현상은 어려움과 고통과 위험
(危險)이 닥쳐오면 긴장하여 더 활발히 움직이고 생존본능
(生存本能)이 강화되어 더 열심히 번식하고 훨씬 더 강인(强靭)해 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위기는 또 다른 기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라가 위기이지만 위기의식이 팽배하면 어려움과 고통과 위험(危險)이 닥쳐오면 긴장하여 모든 국민이 더 활발히 애국정신이 고조되어 구국의 열정으로 훨씬 더 강인(强靭)
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의미가 있는 글이라 보냅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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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이야기 *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어느 날
원효대사가 외출을 했다가
분황사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스님이 길을 가로막더니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반갑구려 원효대사!
대사께서 쓴 글을 읽어 보았는데 깊이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보잘것 없는 글인데
송구스럽습니다."
"대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저랑 같이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하시지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 스님은
원효 대사를 데리고 천민이 사는
동네로 향했습니다.
솔직히 원효대사는 그때까지
천민이 사는 동네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화랑이었을 때는 당연히
갈 이유가 없었고
출가해 스님이 된 뒤로는
공부하느라 갈 일이
없었던 것이죠.
스님은 어느 주막집에 이르러 자리를
딱 잡고 앉더니 큰소리로 외쳤어요.
"어이, 주모! 여기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술상 하나 봐주게나."
그 순간 원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수행하는
사람이 술상이라니'
원효대사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곧바로 뒤돌아 나와 버렸습니다.
"어이! 이보시오. 원효대사!"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해 버렸습니다.
이때 갑자기 그 스님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효 대사, 마땅히 구제해야 할 중생이 지금 여기 있거늘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원효는 그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원효는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치는 깨쳤지만 실천이 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원효는 승려들을 가르치던
스승 역할을 그만두었습니다.
남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대신 머리를 기르고 신분을 숨긴 채 절에 들어가 부목(負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부목이란 사찰에서 땔나무를 마련하는 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젊은 승려들에게 무시 당하며 땔나무를 구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절에 꼽추 스님이 있었는데 다들
그 스님을 '방울 스님'이라
불렀습니다.
걸식을 할 때 아무 말 없이 방울만
흔들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었죠.
방울 스님은 공양 때가 되면 다른 스님들처럼 제때에 와서 밥을 먹지 않고 꼭 설거지가 다 끝난 뒤에 부엌을 찾아와 남은 누룽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아이참! 저 스님은 꼭 저렇게 늦게 와서 사람을 귀찮게 한다니까"
부목들은 그런 방울 스님을
무시하곤 했어요.
하지만 원효만은 방울 스님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하루는 원효가 마루를 닦다가
학승(學僧)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보아하니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공부하면서 논쟁을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원효가 그 옆에서 들어보니
학승들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효는 자기 신분을 망각한 채
불쑥 끼어들며 말했습니다.
"스님들! 그건 그게 아니라 이런 뜻입니다"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일개 부목 주제에 어디 스님들 공부하는 데 와서 이러니 저러니
아는 체를 하는 게냐?"
그제야 자기가 실수했음을 알아차린 원효는 얼른 고개를 숙여 사죄를 했습니다.
"소인이 뭘 모르고 저도 모르게 아무 소리나 막 튀어나온 모양입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공부 판이 깨진 스님들은 스승을
찾아가서 '대승기신론'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며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를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자, 이것으로 공부해 보거라!"
스님들이 그 책을 읽어보니 깊이가 있음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일개 부목이
한 소리가 그 책에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님들은 이상하다 싶어 부목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효는 신분이 들통 날 위험에 처하자
몰래 절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대중이 다 잠든 시각 원효 스님은 대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그때 문간방에 있던 방울 스님이
방문을 탁 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효, 잘 가시게."
방울 스님의 이 한마디에 원효는
그 자리에서 확연하게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 절에 있던 부목과 다른
스님들은 원효 대사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원효대사만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공부 수준을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원효대사는 방울 스님을 몰랐지만 방울 스님만은
원효대사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효, 잘 가시게."
이 한마디로 원효는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자신의 환영을 확 깰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
어리석은 사람들은 눈을 감고
세상이 어둡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때는 지금 당장
내 눈을 뜨는 것이 먼저입니다.
깊은 성찰의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진다면 밝은 눈을 뜨는 데
도움이 됩니다.
눈을 뜬 이후에도 세상이 어둡다면
불을 밝혀야 합니다.
이렇게 먼저 자신의 눈을 뜨고,
세상을 위해 불을 밝히는 노력이
바로 붓다가 오래전에 우리에게
전한 가르침의 근본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삶으로
밝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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