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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七彩 운남의 길 위에서 - 5편▐
다섯째 날 – 샹그릴라에서 호도협까지
(2014. 7. 3 : 샹그릴라-나파하이-차오토우-나시객잔-28밴드-차마객잔)
7시에 기상하여 식당으로 내려가니 몸이 좀 무겁다. 8시 30분,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와서
산소병을 하나 구입해볼까 하고 매점으로 갔다가 구경만 하고 그냥 돌아섰다.
여행기 어디에도 고산병 증세에 비아그라 반 알이나 산소 흡입을 처방했다는 얘기는 있어도
효과를 봤다는 걸 본 적은 없었고, 고산병에는 하산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점과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속이 가라앉아 갔기 때문이다.
마치 과음한 다음날 아침처럼 약간의 두통과 기분 나쁘게 속도 좀 불편했지만
20분 만에 나파하이(納帕海)에 도착하여 시원한 바람을 쐬니 머리가 맑아졌다.
▲ 호텔 창밖. 삭도라도 있는지 간밤에 저 산 위로 올라가는 가로등 불빛이 오래 보였다.
▲ 머리가 맑아진 기념 샷. 그런데 얼굴이 좀 부운 것 같다.
나파하이는 샹그릴라에서 서북쪽으로 7km 떨어져있는, 해발 3260m의 국제중요습지로 지정된 자연보호구역이다. 나파하이 호수는 의라(依拉)초원의 북서쪽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형성되어 있는데,
늦은 여름이나 초가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호수면이 넓어지고 늦가을에서 이듬해 여름까지는 수량이 줄어들어
드넓은 초원을 이룬다고 한다.
지질학상 카르스트 지형으로 초원 아래의 동굴을 통해 금사강으로 물이 흘러들어가는 배수구가 있다고도 한다. 아마 저 광활한 초원 끝에는 호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7월초라 전혀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진 2400㏊의 고원지대 초원에는 야생화가 지천이고,
황소와 야크의 잡종인 덩치 큰 편우(揙牛)가 어슬렁거리고 양과 말 심지어 돼지까지 무리지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목동은 플라스틱 의자을 들고 한 무리의 야크떼를 따라다니다 또 오래 한자리에 그림처럼 앉아있다.
목동 너머 풀밭 가장자리로 한 무리의 말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줄지어 돌아오는 모습도 보인다.
이 그림 같은 초원이 고원계절성 특징으로 9월 이후에는 호수로 변한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티베트어로 나파하이는 ‘나파추어(納帕错:삼림 뒤의 호수)다.
10월이 되면 멸종위기종인 인도기러기・시베리아흰두루미・검은목두루미도 이곳에 와 겨울을 난다고 한다.
까마득한 저 안쪽 어딘가에는 객잔도 있고,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여 풀밭에서 피크닉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샹그릴라의 속살을 느껴보려면 역시 느긋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목장 입구에서 1시간을 머물고 떠나야 한다.
이곳 중텐과 나파하이는 티베트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차마고도를 오가는 마방들의 최고의 휴식처였다.
고산분지의 드넓은 농토로 농산물이 풍족하고 나파하이 호수 주변에는 끝없이 의라초원이 펼쳐져있어
말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차를 돌리지 않고 계속 가면 티베트 라싸로 갈 수 있다.
저 산 너머 어딘가에서 힐튼의 소설 속에 나오는 장족 노인 장을 만난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샹그릴라이리라.
송찬림사와 이 나파하이만으로도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면 일 년에 한 번씩 운남에 와서 수허고성에서 이틀쯤 머물고 나의 샹그릴라에서 서너 달 머물다 가고 싶다. 샹그릴라에 대해서 알아낸 자료는 이렇다.
“티베트 언어학자들은 샹그리라(香格里拉)의 뜻을 두 가지로 풀이한다.
샹(香)은 ‘마음’ 그(格)는 ‘~의’, 리(里)는 ‘태양’, 라(拉)는 ‘달’로 “마음속에 해와 달”이라는 뜻이 된다.
또 하나의 해석은 샹그는 ‘흰 달빛’, 리라는 ‘태양’을 의미하며,
중덴 현의 고성 이름인 “일월성(日月城)”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샹그리라는 티베트 불교 경전에서 불국정토(佛國淨土)나 피안(彼岸)의 세계 또는 이상향을 뜻하는
‘샹바라(香巴拉)’의 중텐지방 방언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 샹그리라는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지명이다.
소설 속의 샹그리라는 티베트 고원의 어느 설산협곡 속에 금빛 휘황한 건축물과 신비한 사원
그리고 소와 양이 무리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대초원과 고요한 호수가 있는 곳이다.
이 이상향은 온갖 종교가 화합 공존하며 인간의 갈등과 분쟁이 없는 곳, 중용(中庸)의 미덕을 숭상하며, 사람들이 장수하는 곳이다.
1937년에는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다시 한 번 샹그리라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1942년 세계대전에 지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오늘날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유명한 자신의 별장을 샹그리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샹그리라는 냉전시대 중국이 서구와 격리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다시 잊혀져갔다.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와 세기말 풍조가 일면서, 사람들은 다시 샹그리라를 떠올렸다.
눈부신 고도성장으로 인한 환경파괴, 비인간화, 미래에 대한 불안갈등이 만년설과 시리도록 푸른 하늘,
드넓은 초원, 자연과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다.
하지만 중국은 더친 장족자치주 마을을 1992년까지 대외에 개방하지 않았다.
변방에 위치한 소수민족에 대한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다.
그사이 인도나 네팔 등은 저마다 히말라야 산속의 한 마을을 정해 샹그리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를 본 중국정부도 마침내 샹그리라를 찾아 나섰다.
1996년 중국정부는 탐사대를 구성하여 힐턴의 소설에 나오는 설산과 대초원, 강과 협곡, 원시림, 티베트 불교 등을 기준으로 샅샅이 조사하여, 마침내 더친 장족자치주의 중텐현이 소설의 무대와 똑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중국정부는 2001년 12월 중텐현을 샹그리라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원시림과 다양한 생물,
대협곡 등이 산재해있는 이 일대를 샹그리라권으로 지정해 자연과 문물을 보존하는 대책을 추진 중이다.
이곳을 인류의 낙원으로 여기고, 마음속의 이상향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내국인 100만명 외국인 1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내 감상은 무시한 채 이제 버스는 2시간 반 동안 왔던 길을 되짚어 호도협으로 내려간다.
길거리의 간판에서 어제 ‘명도세가(名刀世家)’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지역 특산물인 티베트 칼을 내손으로 꼭 한번 잡아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떠오른다.
진검으로 검도 수련을 해온 내 손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였는데, 이제 샹그리라 시내를 벗어나며 또 간판을 보고 떠올렸으니, 그만큼 일정이 빡빡했다는 반증이다.
또 하나, ‘장오(藏獒)’란 글자를 얼핏 보고는 억대를 호가한다는 티베트 토종견이 몹시 궁금했다.
얼마나 영리하고 용감했으면 ‘사자견’이라는 별명을 얻었을까 싶어서다.
1시간쯤 달렸을 때, 포토타임을 가지기 위해 올 때와는 다른 전망대에 차를 세웠다.
30 호쯤 되어 보이는 산촌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모습이 정겹게 내려다보이고, 마을 주위의 산등성이는 모두 개간되어 붉은 흙과 초록의 밭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마을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굽은 길이다.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는 김영랑의 시 ‘오월’의 첫 구절
딱 그대로다.
길게 이어진 굽은 길만 보면 늘 마음이 설렌다.
저 길을 따라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에 몸서리친다.
일종의 역마살이다.
사진도 자연 길에 포커스를 맞춘다. 확대해서 액자에 넣을 사진 한 장쯤은 건질 것 같다.
다시 출발한 버스가 굽이굽이 산길을 감돌아 호도협으로 내려오지만,
샹그릴라로 가는 해발 3200m의 오르막길을 많은 자전거 여행족들이 오르고 있다.
걸어서도 넘기 어려운 재를 자전거를 탄 채로 오르는 중국 젊은이들의 패기가 부럽다.
12시 30분에 호도협의 관문인 차오토우(桥头)에 도착했다.
버스는 들어갈 수 없다. 큰 짐은 버스에 두고 간단히 꾸린 배낭만 매고 빵차로 바꾸어 탔다.
빵차는 미엔빠오처(麵包車)라는 식빵같이 생긴 합승택시인데,
오지가 많은 운남여행에서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교통수단이다.
8~9인승 다마스처럼 생겼으나 대여섯 명이 타면 딱 좋다. 빵차 기사의 운전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처음에는 금사강을 따라 포장된 강변도로를 젊잖게 달리더니,
나시객잔으로 오르는 급경사 지그재그 오르막길에 들어서니 거의 과속난폭 운전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차 성능 때문인 것 같았는데 언젠가는 사고 한번 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시객잔은 역시 가파른 산비탈에 있었지만,
호도협 트레킹의 출발점답게 꽤 규모가 크고 집안 구조도 균형이 잘 잡힌 집이었다.
낯선 손님들이 수십 명 들이닥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객잔 문 앞에 할아버지 어머니 아들 3대가
나란히 나와 앉아있는 모습이 참 한가롭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는 벌써 카메라를 의식해서 과자봉지를 들고도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려버린다.
그러나 젊은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표정에서는 전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무심함과
낙천적인 선량함이 풍겨난다.
늦은 점심을 달게 먹고 마당으로 나와, 모두들 본격적인 트레킹 준비로 부산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수돗가로 가서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한다. 선크림을 바르고 신발 끈도 다시 조여 맨다.
별 할 일이 없는 나는 마당가를 둘러본다.
늘 화분으로만 보던 제라늄이 땅에 뿌리를 박고 마음껏 가지를 뻗고 있는 모습도 신기하지만,
싱싱한 잎사귀와 수많은 붉은 꽃송이가 맑은 햇살을 받아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다.
건조대에 널린 옥수수 고추 마늘도 고운 색을 내며 깨끗하게 잘 말라가고 있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니 산골 특유의 맑은 바람과 햇살이 온몸에 감겨든다.
공기가 달다.
문득 돌아보니 제라늄 아래 화단벽에 ‘환영 한국분’이란 5 글자가 희미하게 낡아있다.
쓴웃음을 지으며,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와! 한 마디로 나시객잔의 화장실은 걸작이다.
깨끗한 함석문이 네 짝 가지런한데 왼쪽 2칸은 남자, 오른쪽 2칸은 여자용이다.
그런데 문에 그려진 표시가 재미있다.
남자 표시는 담배파이프인데 크기가 거의 같아서 헷갈리는 반면,
여자는 붉은 입술을 그려놓았는데 좌측이 배나 더 크게 그려져 있어 구별하기 쉽다.
그림 솜씨가 좋다. 파이프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고, 붉은 입술은 상당히 고혹적이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대소변 구분도,
심지어 남녀 구분도 제대로 없이 네 개가 정답게 가지런하다.
이제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호스-트레킹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말 선택권이 없다. 마부들이 체격을 보고 손님을 골라 자기 말에 태워 차례대로 출발한다.
고삐는 마부에게 있으니 우리는 상체를 약간 굽혀 안장의 윗부분을 잡을 수밖에 없다.
폼이 나지 않는 자세지만 계속 오르막길이라 오히려 더 실속 있는 자세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부들은 트레킹 도중 한 번씩 돌아보며 몸을 더 숙이라고 했다.
만약 내려올 때 말을 탄다면 몸을 뒤로 재껴야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을 것이다.
정상까지 28번 지그재그 또는 갈지자로 올라야하기 때문에 ‘28밴드’라고 부르는 길이다.
배낭을 메고 큰 카메라까지 목에 걸었으니 자세가 불편했지만, 10분쯤 지나니 적응이 되어
말이 쉴 때마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말이 처음으로 멈추었을 때 뒤돌아본 나시객잔은 생각보다 꽤 큰 마을 초입에 있었고,
마을 주위에는 푸른 비탈밭도 상당히 넓게 펼쳐져있다.
산을 넘어오는 다른 길이 마을 위쪽에 희미하게 닿아있기도 했다.
올라갈수록 더욱 가팔라지고 금사강도 점점 발 아래를 파고들어 고도를 짐작케 한다.
중간쯤 올라왔을까. 쉬어갈 수 있도록, 음료수도 파는 오두막 한 채가 기다리고 있다.
눈에 잘 띄는 벽에 붉은 페인트로 영어와 중국어 격려광고문이 있다.
“28괴가유잔(28拐加油栈)!”이라. 이 문장이 병기된 영어 때문에 뜻은 알겠는데 해석이 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28굽이(拐, bend)를 공략하기 위해서 창고(배)에 기름(에너지)을
채우라는 뜻이다. 중국인의 너스레와 한자의 표현력은 이렇듯 감동적일 때가 많다.
말과 사람이 적당히 자리를 잡아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돌길이 워낙 좁아 내 무릎이 바위에 부딪칠 듯 위험한데도 희한하게도 한 번도 스치지 않고 통과한다.
어린 말은 이제 체력에 한계가 왔는지 자주 올라가지 않고 한참을 버티다가
마부가 고삐를 강하게 당기니까 할 수 없이 뛰어오르기도 한다.
그때마다 푸르륵 푸프륵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부글부글 똥을 싸기도 한다.
앉아있기 미안해 괜히 목덜미를 살짝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금사강을 내려다본다.
옛날 마방들은 이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고 온 고향의 가족보다는 공포와 피곤으로 발을 헛딛어 벼랑 아래로 사라진 어린 말들의 영혼을 위해,
협곡을 할퀴는 물소리에 자근자근 아린 마음을 녹여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말의 거친 숨소리가 아득하다.
서양 여행객들이 걸어 올라가는 걸 몇 번 보고나니 지금 우리의 여행 행태가 너무 호사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일행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느긋한 도보여행은 분명 우리보다 한 수 위의 여행임에는 틀림없다.
1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해발 2670m인 28밴드 정상에 닿았다.
지친 말을 쓰다듬어 주고 마부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니 앞이 시끄럽다.
이틀간의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란다.
잘 보이는 바위에 페인트로 “山頂 Tiger Leaping Gorge 虎跳峽 由此下20米 → 8元1人” 라고 써놓았다.
이 아래 20m에서 호도협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 1인당 8원을 내고 가서 보고 사진도 찍으라는 건데,
역시 왕서방 상술답다. 어설프게 나뭇가지에 타르초 몇 줄 걸어놓고 돈을 내라고 하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하루종일 시비하느라 심심하지는 않겠다.
우리 일행에게도 돈을 요구하다가 마방 대장에게 꾸중을 듣고난 뒤, 말을 타고 올라온 우리는 무료라고 했다.
발아래 금사강이 갑자기 굽이쳐 빨라지는 모습, 물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듯하다.
내일 차량으로 나갈 때 저곳을 잠시 둘러볼 것이다.
바로 호랑이가 중간바위를 밟고 도약하여 건넜다는 호도석이 있는 명소다.
그러나 낭떠러지가 너무 심해 바위를 손으로 짚고도 무서워 제대로 내려다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진만 찍고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이다.
신발 끈을 졸라매고 배낭을 짊어지니, 말안장을 잡느라 긴장했던 두 팔이 좀 뻐근할 뿐 몸과 마음이 가볍다.
페루의 마추픽추,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와 더불어 세계 3대 트래킹코스로 꼽히는 운남의 호도협 차마고도가 지금 눈앞에 펼쳐져있다.
이 길 위에서 이틀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가슴 설렌다.
우리 앞에는 이제 큰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어, 사진을 찍으며 얘기를 나누며
자주 만나는 들꽃에게 인사도 건네는, 저 옥룡설산의 구름처럼 한가롭고 아름다운 산책이 있을 뿐이다.
줄여 말하면 구름위의 산책이다.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오래 먼 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운남의 보이차를 싣고 티베트로 가던 마방들의 말방울소리라도 바람결에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호도협(虎跳峽)은 히말라야 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해발 5,596m의 옥룡설산과 5,396m의 합파설산 사이를 흐르는 대협곡이다.
협곡의 길이는 16km이며, 깊이는 금사강 수면에서 봉우리까지 2500m~3000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다.
넓게 보면 운남성의 남쪽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 푸얼(普耳)를 지나 따리(大理), 리장(麗江), 샹그릴라(香格里拉)를 거쳐 라싸(拉薩)에 이르는, 실크로드보다 더 오래된 교역로인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일부다.
즉 티베트로 향하는 차마고도 중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가는 길목에 이 호도협이 자리 잡고 있다.
사냥꾼에게 쫓긴 호랑이가 건너뛰어 도망갈 정도로 좁은 협곡이라는 뜻의 호도협은
강폭이 30~60m에 불과하고,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른다.
호도협 트레킹은 합파설산의 허리를 걷는 길이다.
그러나 눈으로는 구름 속에 머리를 묻고 있는 나시족의 성산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발아래는 우기의 황토빛 금사강 물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따라온다.
이제 우리는 구름속의 설산에 기대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들어간다.
강 건너 옥룡설산 쪽에도 우리의 눈높이와 비슷하게 희미한 흰 선이 계속 따라오고 있다.
저쪽에서도 우리가 걷는 길이 실처럼 가늘게 보일 것이다. 차마고도를 말할 때 자주 쓰는 ‘조로서도(鳥路鼠道)’다. 좁고 가파른 수직 벼랑에 때로는 홈을 파 만든, 새나 쥐가 다닐만한 천 길 낭떠러지 벼랑길이다.
나무에 달아놓은 팻말에도 ‘고로도보선(高路徒步线)’이라 한 것은 강가에 포장된 차도가 있고,
그 위에 산촌마을로 빵차가 들락거리는 시멘트도로가 있고,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사람과 말만이 걸어다니는 높은 도보길이라는 뜻이다.
어느 모롱이에선 나무줄기에 이끼가 휘감겨 원시림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환하게 길을 밝히고, 설산의 구름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어
같은 봉우리를 처음 보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여 자꾸 셔터를 누르게 한다.
그러나 얄밉게도 한 번도 산정을 보여주지 않아 더 자주 쳐다보게 만든다.
어느 모롱이에선 고개를 들자 앞산이 바로 눈앞이라 이마에 부딪칠듯하여 깜짝 놀라기도 하고,
구름에 가려있는 정상부 아래 우람찬 산세가 자못 험상궂어 몸을 움츠리게 한다.
‘一山有四季’란 말이 실감난다.
눈높이에서는 초록융단을 깔아놓은 듯하지만 그 위로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거친 석회암이 난공불락의 성채를 이루고 있고, 구름 사이 설핏 보이는 산정부분은 만년설인지 석회암에 흐르는 빗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겨울 풍경이다.
옥룡설산의 그늘 많은 뒤쪽 협곡이 아니고, 만약 남쪽 산록이라면 정말 ‘한 산에 사계절이 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시야가 좀 넓어지는가 싶더니 소나무 사이로 비탈진 산동네가 보인다.
28밴드 정상에서 1시간 30분 걸었으니, 차마객잔(茶馬客棧)이다.
도착하니 5시다.
우리는 트레킹을 하는 게 아니라 길 위에서 노는 것이니까, 일행 중 맨 끝이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방 키를 받아보니, 위채 2층이라 전망이 제일 좋은 특실(?)이다.
침대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지붕창문까지 있다.
그리고 방문 앞은 좁지만 의자도 드문드문 놓여있고, 난간에 선반까지 있어 찻잔이나 술잔을 얹어놓기 딱 좋다. 더운 물까지 나와 간단히 씻고 문 앞에 나와 앉으니, 옥룡설산이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 눈앞에 펼쳐져있다.
잠시도 구름이 가만있지 않으니, 이 산수화는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다.
수시로 비를 뿌리고 구름이 짙어 오늘밤은 달도 별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좋다.
이곳에 한 열흘 머물며 책이나 읽다가 고개를 들어 앞산을 바라보다가 잠이 오면 꾸벅꾸벅 졸고 싶다.
잠시 내리는 비지만 맞은편 계곡에서는 폭포가 생겨나고,
절벽 여기저기 테라스 형 동굴이 보이고, 산상수훈을 하는 예수상도 보인다.
석회암 암벽 여기저기 흰 부분에다가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다가 우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잔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구멍 뚫린 시멘트벽돌 담장에 만혼(晩婚) 장려 표어가 중국답지 않게 푸른색으로 쓰여 있다.
중국의 인구정책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어 왔지만,
변방의 이 외진 산골마을의 농가 담벼락에 ‘만혼만육(晩婚晩育)’을 장려하다니 놀랍다.
그런데 골목 끝에서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표정이 매우 밝은 남매를 만났다.
농촌이나 소수민족의 경우는 첫 아이가 딸이거나 부모가 모두 2대 이상의 독자인 경우 등에는 둘째 출산을
허용한다고 했는데, 그리고 분명 사내애가 더 큰 것 같았는데, 그럼 얘들은 쌍둥이였던가.
마을 건물은 대부분 돌집인데, 객잔의 신축 중인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돌의 대부분이 청석으로 우리나라의 구들장돌 같으면서도 석질이 특이하다.
옆으로 잘 쪼개지면서도 석질이 무겁고 무른 것 같다. 건축자재로서는 큰 장점이다.
이층 계단에도 이 청석이 깔렸는데 표면을 살짝 갈아놓으니 비취빛을 띠며 상당히 품위 있고 촉감이 좋다.
집이란 그 지역의 풍토에 맞게 발달해 왔을 터,
큰 추위가 없는 이곳의 돌집은 튼튼하고 농촌살림에 상당히 효과적일 것 같다.
6시 30분에 반주를 곁들여 오골계백숙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오늘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단다.
불편하지만 오히려 운치가 더 날지도 모르겠다.
초 한 자루씩 얻어 이층으로 올라와 난간 선반에 얹어놓고 어설픈 술판을 벌렸다.
둘러앉을 수 없으니까 술과 안주를 집을 때는 일일이 일어서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술잔이 거듭되니 이야기들이 술술 새어나온다.
비슷한 나이지만 각자 살아온 세계가 달라 상대방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여행길에서 우연히 나누는 이런 대화에서 강렬한 우정이나 순간적인 교감을 경험한다.
서로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지혜롭고, 모두가 에둘러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 순간은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들이 벌이는 길 위의 축제가 된다.
술이 오른 서울의 박 선생이 벌떡 일어나 도연명의 시를 중국어로 읊조린다.
구수한 목소리가 캄캄한 밤하늘로 퍼져나가고,
아래채 옥상에서 오카리나 선율이 가늘게 올라와 객수(客愁)를 불러일으키며 술잔에 고인다.
10시 반에 잠자리에 들어 달게 잤다. (♣)
첫댓글 잘 읽고 있습니다. 8월 24일-31일 같은 코스를 다녀왔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차마객잔 여흥이 전달됩니다. 촛불 밑에서 앞에 옥룡설산을 배경삼아 같이 바이지우를 들이키는 맛,
취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분위기 잊혀 지지 않네요. 기억이 가물해서 읊지는 못했지만 조조의 단가행이 생각나는 밤이었네요.
短歌行 (뚜안 거 싱) 曹操(차오차오)
对酒当歌,人生几何?뚜에이지우 땅꺼, 런셩 지 흐어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나니, 인생이 얼마나 될까
譬如朝露,去日苦多。 피루 짜오루, 취르 쿠 뚜어
비유하면 아침 이슬 같아, 가버린 세월이 정말로 많구나.
何以解忧,唯有杜康。흐어 이 지에 여우, 웨이 여우 두 캉
무엇으로 시름을 풀 수 있을까?, 오직 술이 있을 뿐
감사합니다.
반가운 얼굴이 많이 보입니다. ^^~ 잘 읽었습니다.
위 세 분 반갑습니다.
너무 놀아가면서 뜸을 들이다보니 고객이 발길을 돌렸군요. 이제 막 전편으ㅡㄹ 끝내고 한 바퀴 둘러보며 인사 드립니다.
EWSN 님, 비 때문에 고생 많았겠다고 어디에서 인사드린 것 같은데, 고맙습니다.
황선생님, 杜康주가 좋은 술인 모양이지요? 늘 저보다도 먼저 다녀가시는 황선생님이 두렵습니다. ㅎㅎ. 언제 술 한잔 대접해야 할텐데.
애니님, 반갑습니다. 좋은 추억은 함께 나누면 더 오래 살아있겠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