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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재사랑산악회]—183차 산행] ♣ 부안 <변산반도 내변산-쇠뿔바위봉> (1)
▶ 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 [산행 코스]▶ 어수대→ 능선(우슬재)→ 전망바위→ 비룡상천봉(갈림길)→ 와우봉→ (고래등바위~동쇠뿔바위봉)→ 쇠뿔바위봉→ 지장봉→ 새재→ 청림마을→ 봉래동천(주차장)→ 부안 ‘이매창 공원’→ 귀경 * [산악회 정기총회 ; 2018. 신임회장 ‘김준섭’ 회장 추대·선출]
* [프롤로그] — 매서운 겨울, 한 해를 보내는 착잡(錯雜)한 마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겨울이 깊어지고 날씨도 매섭다. 영하의 바람 속에 우리의 몸은 추위에 긴장하고, 한해를 넘기는 우리의 마음은 무연히 조급해지는 계절이다. 그러나 날씨가 아무리 춥고 매서워도, 세상(世上)이 편안하고, 시대(時代)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하면 겨울은 겨울대로 정취가 있을 것이다. 서로가 순정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世上)은 편안하지 않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불안하고 절박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북핵으로 인해 나라의 존립을 위협받고 있고, 안으로 국민들은 편이 갈라져 서로 적대(敵對)하며 산다. 그 분열의 근원은 모두 ‘편향된 이념의 정치’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4강과의 관계에서, 현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은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로 전락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핵과 맞서 우리 생명의 안전망을 함께 구축해야 할 미국에는 엇박자를 놓고,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과는 거의 절교 상태이며, 중국과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북한을 편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우리는 ‘왕따’가 되어가는 꼴이다. 4강 외교에서 ‘주도적인 운전대를 잡겠다’고 호언했지만 현실적으로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소리이다. 특히 중국의 시진핑은 ‘대륙굴기(大陸崛起)’[중화제국주의]를 ‘중국몽(中國夢)’[국정철학]으로 삼고 궁지에 처한 대한민국을 더욱 압박하여 그들의 입맛대로 길들이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중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먼저 ‘사드 추가 배치, 미국 MD 참여, 한·미·일 3국 군사동맹 등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3불(三不) 원칙’을 표명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의 방중(訪中)을 통하여 돌아온 것은 홀대(忽待)와 굴욕(屈辱)뿐이었다. 속된 말로 ‘뭐 주고 뺨 맞은’ 꼴이다.
한국 대통령이 과연 국빈(國賓)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인가. 3박 4일 체류 중 국빈의 식사는 딱 두 끼만을 제공받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를 지켜보는 온 국민은 착잡하다. 게다가 수행한 기자까지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했으니, 중국이 한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과연 초청한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얼굴이다. 그의 치욕은 우리 국민의 치욕(恥辱)이다. 참 부끄럽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번 방중(訪中) 성과를 적극 홍보하라고 외국주재 공관장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방중 이후, 중국은 상하이와 산둥성에서 시행해 오던 한국 단체관광을 금지했다. 무엇이 성과인가?
중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2월 14일 오전 중국 베이징 조어대 부근 한 현지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아침메뉴인 만두(샤오롱바오), 만둣국(훈둔), 꽈배기(유우티아오), 두유(도우지망)을 주문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의 왼쪽은 노영민 주중한국대사이다.-[연합뉴스 사진]
“대통령이 받은 홀대는 온 국민이 통분할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중국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버리고 대중(對中) 굴욕 외교를 마감하게 된다면 아프지만 맞을 만한 주사라고 자위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국민이 받은 모욕을 설욕해야 한다. 아직도 중국을 감싸며 자신이 받은 모욕을 덮기 위해 중국을 옹호하려 한다면 국민 상처에 소금을 이겨 넣는 일이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의 고언(苦言)이다.
그런데 나라 안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전(前) 대통령을 탄핵하여 권력을 쟁취한 문재인 정권은 적폐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과 이념(理念)의 색깔이 다르다고 판단되는 인사들을 줄줄이 엮어 어둠의 골방에 몰아넣고 있고, 정권에 편승한 민노총과 시민단체 등 골수좌파들은 ‘권력’이라는 전리품을 나누어 챙기며 마우저뚱의 홍위병처럼 무소불위의 행태를 부리고 있다.
이런 작태(作態)가 벌어지고 있다. 범죄 혐의로 2년간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집권 여당 대표실을 점거하고, 자신에 대한 수배 해제를 요구하고,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을 풀어주라고 떼를 쓰고 있다. 저들이 주도한 ‘촛불데모’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응당 은혜를 갚아라는 것이다. 이 씨는 2015년 11월 서울 도심을 마비시킨 폭력 시위 주도 혐의로 수배됐다. 시위가 아니라 완전히 난동이었다. 이 씨는 경찰차량 71대를 불태우고 경찰관 74명에게 부상을 입히며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든 범죄자다. 그런 사람이 떵떵거리며 수배 해제를 요구하고 며칠째 당 대표실을 점거하고 있는데도 민주당은 경찰을 부르지 않고 있다. 경찰은 수배자가 눈앞에 있는데도 법 집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난동의 주모자인 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을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나라의 법 집행을 책임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폭력 시위로 도심을 마비시키고 주모자를 도피시킨 지명수배자를 취임 인사차 방문하기도 했다.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고 정상적인 장관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말로는 ‘공정한 법질서 확립’을 말하고 또 ‘검찰의 중립’을 공언(公言)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저런 상황을 볼 때 그의 말은 위선적인 빈말이다. 자기 이념이 아닌 사람은 적폐로 몰아 먼지를 털어서라도 잡아넣고, 자기편 사람은 불법(不法)을 자행(恣行)해도 그냥 묵인하고 넘어간다. 오직 ‘당신들의 천국’이다. 그 ‘당신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들의 탐욕(貪慾)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스스로 적폐(積弊)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다름아닌 바로 '국정 농단(壟斷)’이다. 지금 역사의 눈이 시퍼렇게 지켜보고 있다.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은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갈라진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가?
* [산으로 가는 길] —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 하얀 설산(雪山)을 찾아가는 길
오전 7시 30분, 서울의 능동[지하철 5 / 7호선 군자역]에서 출발했다. 한해를 마감하는 이번 제183차 ‘송년 산행’은 전라북도 부안군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내변산 쇠뿔봉’이다. 오늘은 올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날이다. 영하 10도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서해의 변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겨울 가뭄 속에서도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부안의 국립공원 변산반도, 그 내변산의 설경을 찾아 일로(一路) 남으로 달려간 것이다. 우리의 민창우 대장이 고심한 끝에 버스 안에서 산우들의 동의를 얻어 그렇게 행선지를 정한 것이다.
오늘의 송년산행에는 남정균 회장, 호산아·장병국 고문, 김의락 위원, 김준섭 부회장, 민창우 기획·산행대장, 박은배 총무, 그리고 유형상 대장을 비롯하여 전진국, 안상규, 강재훈 님 삼총사, 다정한 김재철 님 내외분, ‘하회탈’의 지기인 강완식 님, 김숙이·정석희 님도 나란히 참석했다, 명랑쾌활한 이명자 님, 여행사랑 조인규 님을 비롯하여 권순식·조용규·신수철 님과 그 여성 산우, 뻐꾸기 님 등 농암의 벗들이 함께 했다. 통통공주의 지인 한 분도 처음으로 참석했다. 새벽공기가 싸늘하게 살을 파고드는 이른 아침, 산을 지향하는 마음이 따뜻한 동행을 이루었다.
우리의 금강버스(권용길 기사님)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간고속도로에 진입, ‘정안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공주·서천간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서천에서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버스는 김제의 만경평야 한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부안 I.C에서 30번 국도로 내려 변산반도 방향으로 나아갔다. 부안군 하서면 장신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705번 지방도로를 경유하여 상서면 도화사거리에서 변산반도 내륙을 관통하는 736번 지방도로를 타고 나아갔다. 오전 10시 50분, 우리는 산행 들머리인 어수대(御水臺) 입구의 마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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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산행지, 내변산 ‘쇠뿔바위봉’] — 부안군 변산반도의 한 가운데 있는 암산
전라북도 부안군의 ‘국립공원 변산반도(邊山半島)’는 크게 ‘내변산’ 지역과 ‘외변산’ 지역으로 나눈다. ‘내변산’ 지역은 의상봉(변산, 508.6m)을 중심으로 신선봉(486m), 삼신산(486m), 쌍선봉(459m), 옥녀봉(432.7m), 관음봉(424.5m), 상여봉(395m), 삼예봉(354.6m), 덕성봉(328m) 등 수많은 산봉과 직소폭포, 봉래구곡, 선녀탕, 분옥담, 와룡소 및 가마소 등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이다. ‘외변산’ 지역은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및 격포해수욕장 그리고 암석 해안의 해식애(海蝕崖)와 모래해안의 백사청송(白砂靑松) 등 해안경치로 이루어져 있다. 변산면 격포리(格浦里) 해안에는 채석강(彩石江)·적벽강(赤壁江)의 두 경승이 있다. 변산반도는 1988년 6월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유사』에는 “백제땅에 원래 변산(卞山)이 있으므로 변한(卞韓)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산(邊山)’은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능가산(楞伽山)·영주산(瀛洲山)·봉래산(蓬萊山)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다.
변산(邊山)에 ‘우금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기점으로 남쪽과 동쪽으로 3㎞ 남짓한 ‘석성(石城)’의 자취가 있는데 이 성이 우금산성(주류성)이다. 660년(의자왕 20년) 나당연합군은 백제사비성을 공략하여 함락시켰다. 이후 주류성에서 백제 장군이었던 ‘도침’과 ‘중복신’의 지휘 아래 백제 부흥운동 세력이 결집하였다. 나당연합군은 663년 주류성을 공략했고, 『일본서기』에 의하면 663년 9월 7일 주류성이 함락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변산반도는 백제(百濟) 시대가 막을 내린 최후의 격전장이었다.
변산반도에는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 있다. 상서면 감교리(甘橋里)에 있는 개암사(開岩寺)는 고려 숙종(肅宗) 때에 창건한 절로 그 뒤 조선 초기에 건립된 개암사 대웅전(大雄殿:보물 292)·개암사동종(지방유형문화재 126) 등이 있다. 변산면 석포리(石浦里)에 있는 내소사(來蘇寺)는 백제 때 창건한 고찰로 대웅보전(大雄寶殿:보물 291)·고려동종(高麗銅鐘:보물 277)·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보물 278)·내소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24)·내소사 선실당과 요사(지방유형문화재 125) 등을 소장하고 있다.
변산(邊山)은 산과 계곡, 해변이 모두 절경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변산팔경과 36경 (내변 12경, 외변 12경, 해변 12경)의 명소가 있으며, 팔경 중 으뜸은 ‘직소폭포’이고, 내변 12경 중 제1경은 ‘비룡상천봉’과 ‘쇠뿔바위봉’이다.
오늘의 산행지 ‘쇠뿔바위봉’은 남쪽에서 동쇠뿔바위(420m)와 서쇠뿔바위(430m)로 이루어져 있다. 비룡상천봉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쇠뿔바위봉은 두개의 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동봉은 그 모습이 서울의 인수봉과 흡사하며, 특히 서쇠뿔바위에서 바라보는 변산 최고봉인 의상봉(508.6m)과 쌍선봉, 부암댐 일대의 경관은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
* [산행 들머리, 어수대(御水臺)] — 부안댐의 발원지, 매창의 시향이 흐르는 곳…
오전 10시 52분, 어수대 입구 마을 주차장에서 산행에 돌입했다. 서울에서 충청남도 서천까지 내려오는 동안 차창으로 보이는 산야는 건조하고 삭막한 풍경이 이어졌는데, 서해안고속도로 금강대교를 건너, 전라북도 김제 만경평야를 지나 부안(扶安)에 들어가면서부터 온 산야가 온통 순백(純白)의 설경(雪景)을 이루고 있었다. 산행의 들머리, ‘어수대’ 입구에 도착하니 환상적인 백설(白雪)이 우리의 가슴을 환하게 열어주었다. 과연 간밤에 부안지역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눈부신 설산의 진경을 바라보며 대원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원들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굿당인 듯한 외딴집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들머리인 어수대(御水臺)에 도착했다. 경치가 좋고 물이 하도 깨끗하여 임금[御]이 그 물[水]을 떠서 마셨다는 곳[臺]이다.
산행들머리인 <어수대>를 향하여 가는 길
어수대(御水臺)는 쇠뿔봉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모이는 곳으로, 옛날에는 절도 있고 정자도 있었으나 지금은 적막강산이다. ‘어수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지만 이곳 부안에서는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이곳에 와서 목욕을 하고 이곳 경치에 반해서 몇 날 며칠을 놀다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산 아래 가장자리에 ‘御水臺’ 커다란 자연석 표지석이 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의 으뜸물 부안댐물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새겨놓았다. 부안댐은 변산반도 한 복판에 있는 맑은 담수호이다. 그리고 그 표지석 옆에 하얀 눈[雪]으로 온몸을 가린 비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의 시비 ‘어수대’이다. 거기 새겨진 시의 내용은 이렇다.
王在千年寺 천 년 옛 절에 임은 간 데 없고
空餘御水臺 어수대(御水臺) 빈 터만 남아있구나
往事憑藪問 지난 일 물어볼 사람도 없이
臨風喚鶴來 바람에 학(鶴)이나 불러볼꺼나
<御水臺>(어수대) 표지석과 하얗게 눈이 덮인 매창의 시비(詩碑) <아래 사진 참조>
눈으로 덮이지 않았을 때 시비의 모습 - (원문은 쓰지 않고 한글로 된 번역시를 새겨놓았다)
부안의 매창(梅窓)이 이곳 어수대를 찾아와 아름다운 풍광을 유람하면서, 한때 이곳에서 노닐던 고인(古人)을 떠올리며 생(生)의 무상함과 고인에 대한 그리운 심회를 읊은 것이다. 매창에 관해서는 귀경 길, 부안읍내의 <매창공원>을 탐방하여 그녀의 삶과 애절한 서정의 시(詩)를 만날 것이다.
산행들머리 <어수대> 앞에서 대원들의 모습
* [어수대(御水臺)에서 ‘우슬재’까지] — 앙상한 겨울나무에 몽실몽실 눈꽃이 피었다.
오전 11시 15분, ‘어수대’에서 아이젠을 장착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했다. 처음 얼마간은 완만한 오름길이었다. 오늘 산행은 민창우 대장이 선두에서 길을 열고 후미는 유형상 대장이 대원들을 인도해 오기로 했다. 우리 일행밖에 없는 고요한 산록은 온통 하얀 백설로 뒤덮여서 그 풍경이 더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가늘고 키가 큰 활엽수들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서서 겨울나기에 들어 있었고 가지에서 미처 떨어지지 못한 마른 단풍잎에 소담하게 눈이 쌓여 몽실몽실 하얀 꽃이 되었다. 길목의 시퍼런 겨울 산죽도 하얀 눈 이불을 쓰고 있었다. 오늘 이 산에 든 사람은 우리 대원 외에는 없으므로 산길은 아주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산길의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공기는 차갑지만 바람기가 전혀 없어 쾌적하다. 몸에 열이 솟기 시작했다.
단풍잎이 눈꼿송이가 되어
오전 11시 33분, 가파른 산길을 치고 올라 ‘우슬재’에 도착했다. 이제 쇠뿔봉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어수대에서 0.5km 올라온 지점이다. 이 산은 전체가 한 마리의 거대한 황소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비유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능선의 가운데 봉우리를 와우봉(臥牛峰), 남쪽의 돌출한 두 개의 바위봉을 쇠뿔바위봉[牛角峰], 산의 북쪽인 이곳을 우슬재(牛膝재)라 하니 소의 무릎에 해당하는 명칭이다. 대원들은 이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며, 방한복 외피 한 겹을 벗어 챙기는 등 장비를 정비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따라 걷는 산길이다.
* [산의 능선 길] — 고절한 풍모의 소나무들은 설송(雪松)의 장관을 이루고 있는…
휴식 후,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 눈 덮인 산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화사하게 쏟아지는 밝은 햇살이 백설(白雪)의 산록을 더욱 눈부시게 했다. 길 주위의 나무들이 하얀 눈에 덮여 포근하게 느껴지고 고절(高節)한 풍모의 소나무들은 설송(雪松)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똑 같은 산이라도 눈이 덮인 풍경은 그 정취가 깨끗하여 그 설경(雪景) 속을 걷는 이의 마음 또한 정결해지는 느낌이다. 저 만큼 앞서가는 강완식 대원을 불러 세워 셔터를 눌렀다. 산사나이의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이 설경과 어울려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계속 완만하게 올라가는 눈길, 주변의 아름다운 설경에 도취하여 걷다보니 꿈길을 걷는 듯 아련한 행복감에 젖는다.
* [능선 길의 전망처에서] — 파란 하늘 깨끗한 공기, 온 산야(山野)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오전 11시 43분, 시야가 확 트인, 전망이 좋은 곳에 이르렀다. 서북쪽으로 새만금지역의 경지의 일부가 시야에 들어는 오는 지점이다. 일군의 대원들이 그것을 배경으로 해서 포즈를 잡는다. 이어지는 비교적 평탄한 산길 주위의 나무들, 특히 하얀 눈으로 옷을 입은 소나무의 모습이 고아(高雅)한 정취를 풍긴다. 이 아름다운 설경 속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산행이다. 그 풍취에 젖어 걷다보니 문득 삼각의 산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가까이 다가가 오르막길에 들어서니 산은 암봉이었다. 안전자일이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른다.
눈 덮인 바위를 치고 오르는 길목 주위의 설경(雪景)이 아름다웠다. 고도가 높아진 바위에 올라서니 다시 시야가 열린다. 파란 하늘 깨끗한 공기, 온 산야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저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736번 도로와 어수대 산곡이다. 순도 높은 햇살이 쏟아지는 산봉에는 바위와 설송(雪松)이 어우러진 풍경이 실로 한 폭의 순결한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바윗길 좌우에 서 있는 키 작은 소나무에 얹힌 눈이 꼭 목련꽃처럼 몽실몽실 눈부시게 빛난다. 앞서 가는 대원들이 발길을 멈추고, 지금 여기에서 아름답고 눈부신 설경을 마음에 담았다. 따뜻한 햇살이 들면 금방 사라질, 귀한 풍경이다.
‘오늘 여기 이 시간’이 아니면 다시 만나지 못할 절묘한 설경(雪景)이다. 인생(人生)이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존재의 모든 의미는 늘 ‘지금’ ‘여기’에서 비롯된다. 지금이 지나가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과거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며 살아있고,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그 무엇에 마음을 쏟으며 산다. 그래서 지금 현재 내 영혼이 지향하는 ‘그 무엇’이 삶의 요체이다. 우리 인생(人生)은 ‘그 무엇’을 위하여 나아가는 ‘현재’의 연속적인 과정이 아닐까. 우리가 누리는 생명(生命)의 가치는 예외 없이 그 ‘현존(現存)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얀 눈길을 걷는 지금이 더없이 행복하고 좋다. 생명의 원천인 자연 속에서 느끼는 순수한 행복감, 그것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은택이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가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환상적인 설경 속으로 이어진 산길이다. 능선의 높은 곳에 오르니 사방의 시야가 환하게 열린다. 동쪽으로는 어수대 산곡이요 서북쪽으로는 새마금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길목에는 산죽의 초록의 잎이 눈밭 위로 솟아있다. 그렇게 이어지는 눈길 속에서 활엽수의 설목과 군계일학의 풍모를 지닌 설송을 벗하며 걷는다. 하얀 눈을 이불처럼 쓰고 있는 무덤도 지났다.
* [445고지와 와우봉을 지나서] — 확연히 열린 시야 속의 동·서쇠뿔바위봉
낮 12시 19분, 445봉에 이르렀다. 이곳은 서쪽의 산줄기에 있는 비룡상천봉(440m)을 갈라지는 곳이다. 우리의 행로는 직진이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산길은 아주 쾌적하다. 얼마를 가다가 또 무덤을 지나고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니 ‘와우봉(臥牛峰)’이요, 거기에서 조금 내려가면 우측 내변산의 주봉인 의상봉(義湘峰, 509m)으로 갈라지는 ‘석재’이다. 그리고 다시 내리막길, 또 하나의 눈 덮인 무덤을 지나 조금 내려가니 서쪽-남쪽-동쪽의 시야가 확연하게 열린다. 내변산 지역의 모든 산야와 원근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중 시선을 끄는 산봉이 동(東)쪽의 ‘쇠뿔바위봉’이요, 능선 길의 끝에 아련히 솟아있는 산봉이 ‘서(西)쇠뿔방위봉’이다. 거기에는 전망대가 있어 앞서간 대원들의 모습이 작은 실루엣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산길의 좌측은 천애단애, 철봉이 박혀 있는 안전시설을 따라 바윗길을 내려간다. 안부의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대원들이 기다리는 전망대로 가는 길은 직진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부안댐의 중계교 부근이나 그 중간에 청림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전망대가 있는 서쇠뿔바위봉으로 나아갔다.
동쇠뿔바위봉
서쇠뿔바위봉 위의 전망대
(서)쇠뿔바위봉 전망대에서 후미를 기다리는 민 대장
서쇠뿔바위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쇠뿔산 능선의 풍경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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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문님 연말 너무 바빠서 이제야 잠시 들어와습니다 고문 님은 사진작가이자 시인이세요 글 한줄한줄 정성이 가득하기에 놀라움을 금할길 없어요 감동입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새해더욱더 건강하시고 늘행복하세요
산행할때마다 후미를 맡아 다니면서도 배고파 못간다며 간식까지 챙겨먹고 갔는데 저멀리 정상에서 후미는 언제나 올까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넘죄송하고 감사하지요 그모습이 영원히 잊지못할 그리운 모습 누군가 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게 고맙지요 한해 고생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