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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일기
현 기 영
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했더니 때없이 늦장마가 시작되었다. 아직 물알인 채 여물지 않은 벼이삭에 습해를 주는 궂은비였다. 그날에 비오면 흉년 든다는 처서(處暑)를 앞두고, 올해 벼농사는 보나마나 풍년 중에 대풍이 틀림없다고 고성방가를 놓던 TV는 하필 바로 처서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자 머쓱해져 입을 다물고, 평년작에도 정부미로 매입해 줄 자금이 태부족인 형편에 풍년 들어 봐야 풍년거지밖에 더 되겠느냐고 시큰둥해 있던 농민의 얼굴에도 비구름 그림자가 드리워 수심이 짙어졌다.
비에 둔감한 도시 사람들도 차츰 비의 포로가 되어 갔다. 여러 날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그들의 생활을 속속들이 적셨다. 귀 고막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빗소리, 의사소통의 말은 꿈결인 듯 멀어지고 얼굴에는 식은땀처럼 빗물이 흘러내렸다. 누진 벽지, 바스러지는 시멘트, 고데머리는 풀어지고, 끈적거리는 살갗에는 말랐던 곰팡이가 되살아나 습진의 붉은 반점을 만들고 체내 피돌기 박동이 빨라져 불안기가 싹트고 있었다. 빗속에 갇혀 거무끄레 죽어 있는 도시의 퐁경 속에서 가로수와 정원목들의 초록빛만이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눌어붙은 매연 그을음, 먼지를 빗물로 활짝 씻어 낸 수목들은 야성의 선명한 초록빛을 눈부시게 팽창, 작렬시키고 있었다.
일주일 가량 주룩주룩 내리던 장마비가 갑자기 집중폭우로 변하여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 일원을 엄습한 것은 금요일 늦은 밥부터였다. 하늘이 숫제 터져 버린 듯 최대강우량의 억수 같은 비가 계속 퍼부어 대자 도시의 큰 하수도로 쓰이는 청계천, 중랑천, 탄천, 정릉천, 성내천, 안양천, 모래내 등 하천이란 하천은 크게 수량이 불어나고, 사방에 그물처럼 얽히고 설키며 이 하천들로 이어진 크고 작은 하수도관들은 통이 좁아 부서지고 흙모래에 막혀 동이로 쏟아붓는 지상의 빗물을 감당 못 해 넘쳐나기 시작했다. 길이란 길이 그대로 시내가 되어 물이 저지대로 몰려들고 있는 중에 한강물은 계속 부풀어올랐다.
도시의 칠흑 같은 밤은 물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휘말린 듯 물소리로 가득했다. 창대 같은 빗줄기가 지상을 난타하는 소리, 지하의 하수도관을 급히 내달리는 물소리, 그 물무리들이 모여들어 하천을 가득 채우고 우렁우렁 천군만마로 질주하는 소리. 도심의 콘크리트 밑에 갇힌 청계천도 홀연 잠깨어 무섭게 용트림치기 시작했다. 부패한 도시의 쓰레기, 폐수, 오물을 한꺼번에 쓸어 가는 일대 쇄신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물에 쓸리는 것은 도시 변두리의 가난뱅이들뿐이었다.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서서히 하천의 역류현상이 시작되었다. 한강물에 밀린 안양천 하류가 넘실넘실 부풀어오르면서 천변의 저지대인 목동, 신정동 일대에 내수가 밀려들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 써먹으려고 닦고 죄고 점검해 온 폄프장의 양수기 6대가 돌연 변압기의 폭발로 일시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물은 낮은 곳으로. 시청이 신개발지로 책정, 가난한 그곳 주민들의 원성을 들으면서 집장사한다고 소문난 안양천변의 둑방 동네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몰에 잠겨들고, 역류하던 중랑천도 마침내 범람하고 말았다. 저지대 여기저기에서 잇따라 침수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어느 하천변의 버스 배차실이 급류에 쓸려 무너지는 바람에 그 안에 잠자던 종업원들이 깔려 죽고, 침수된 흙벽돌집이 물에 풀어져 주저앉으면서 그 안에 잠자던 두 모녀가 변을 당해, 밤사이에 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날이 밝자 재난은 더욱 커졌다. 수해는 저지대와 고지대의 가난한 동네만 골라 다니는 법으로 이번의 큰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고지대 주민의 인명피해는 차마 끔찍했다. 밤새 산동네를 강타한 집중 폭우는 이른 아침에 곳곳에 산사태를 일으켜 봉제공장 기숙사의 공원 4명과 와우아파트 주민 2명을 흙더미로 압사시키고, 사나운 급류로 축대를 허물어 가난한 연립주택 한 채를 도괴, 4명의 인명을 빼앗아 갔다. 비슷한 시간에 멀리 김포에서도 산사태로 한꺼번에 9명이 숨졌다고 했다.
이른 아침에 안양천 일대가 완전히 침수되고 말자, 둑방 위에 대피해 있던 일부 주민들이 한때 비를 맞으며 전경과 대치하기로 했다. 납득할 만한 철거보상대책을 세우라고 외치면서 천여 명의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전경의 저지선을 뚫고 양화교까지 가두시위를 벌인 것이 불과 일 주일 전 일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양수기 관리 소홀로 홍수까지 뒤집어쓰고 말았으니 그 노여운 심정은 충분히 헤아려 볼만했다.
아침 나절에 빗발은 다소 누그러들긴 했으나 강물은 잠수교를 가라앉히고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유비무환을 되뇌며 십 년이 넘도록 지루하게 점검에 점검을 되풀이해 온 안양천 하구의 양수기들은 미처 가동도 못 한 채 한꺼번에 고장나 버렸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에 한강변의 아파트촌 주민들은 은근히 근심하면서도 수재민이란 저소득층에나 어울리는 말이지, 설마 우리네 중산충이 그런 오명을 뒤집어쓸 리야 있겠나, 하는 강한 우월감이 있었다.
이때를 당하여 72년의 홍수에 안양천변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던 망원동 주민들의 불안은 컸다. 물론 지금의 망원동 주민들은 그때의 물난리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수해를 당했던 당시의 주민들 중에 상당수가 그 직후 안양천변으로 철거되어 갔던 것인데, 이번에 또 철거 계고장이 떨어진 위에 홍수까지 덮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홍수 당시 망원동 일대는 허허벌판에 모양새 있는 단독주택들은 그닥 많지 않고 한강둑을 따라 판잣집들이 수백 채 촘촘히 늘어서 있어, 그 판자촌 철거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시당국은 때마침 터진 홍수 덕분에 별 마찰 없이, 철거비용도 덜 들이고 주민들을 내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망원동은 그때 물난리 이후 수방(水防) 시설이 완벽해졌다는 평판과 더불어 ‘상습침수지역’ 오명을 벗고 신개발지로 각광받아 젊은 봉급생활자들이 많이 사는 연립주택단지가 생기고, 미니 이층 이상의 번듯번듯한 단독주택들도 상당수 들어섰다. 이제 당시 물난리를 기억하고 있는 주민은 57번지 일대와 유수지 근처의 영세민들 외에는 그리 많지 못한 편이었다.
중산충과 자칭 중산층과 저소득충이 어울려 한 마을을 이룬 이 망원동에 과연 한강의 수마가 범접해 올 것인가? 그런데 한강이 경계수위에 도달한 오후 3시경에는 성내천이 역류하기 시작하여 근처 풍납동 일대가 침수 위기에 놓여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곳 역시 계층 구성이 망원동과 비슷한 지역이었다.
바깥일 나갔던 주민들이 귀가하는 저녁시간이 되자 망원동 둑방 여기저기에 강물 수위를 살피러 나온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졌다. 매 시간 안방 TV에서 한강 수위의 변화를 보도하고 있었지만 둑을 사이에 두고 강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둑방 동네인지라 주민들은 여간 좌불안석이 아니었다. 둑마루 강변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행렬을 가로질러 사람들은 연상 종종걸음치며 오고 갔다.
강물은 바로 둑 밑까지 엄청난 부피로 부풀어 올라와 있었다. 늘 저 만큼 떨어져서 하수도 물에 검게 더러워진 모래톱이나 잡풀무더기를 핥으며 시름시름 흘러가던 병든 강이 하룻새에 무섭게 돌변하여 양쪽 연안까지 일망무제로 질펀하게 수역(水域)을 넓혀 놓은 것이었다. 골재용으로 쌓아 놓은 모래동산도, 쓰레깃더미도, 썩어 가는 물웅덩이도 구정물 먹고 거무칙칙하게 자란 잡풀무더기도 하상(河床)의 일체의 것들은 지워 버린 듯 가뭇없이 물속에 잠겨 버렸다. 급류에 휩쓸리는 하상은, 모래동산이 허물어지고 웅덩이가 메꾸어지고 풀무더기들은 일제히 머리를 하류 쪽으로 향한 채 압살되어 있을 터였다. 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 기중기 한 대가 물에 잠겨 겨우 목만 내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특히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취수장 사무실 근처였는데, 그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에 표시된 한강 수위 눈금에 물이 차올라 경계수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배수 수문은 이미 닫히고 유수지로 몰려드는 내수를 퍼내느라고 가동중인 양수기의 모터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강물은 사납게 둑 밑을 할퀴며 흘러갔다. 탁한 강 표면은 장대같이 내리꽂히는 빗발에 팥죽 꿇듯 버글버글 끓다가는 이따금씩 휙휙 몰아치는 세찬 바람에 성난 말갈기처럼 거친 물결을 일으켜 세우곤 했다.
강물의 유속은 강변도로를 달리는 차량 행렬만큼이나 빨랐다. 1km 폭의 넓은 수역을 가득 채우고 쾌속으로 내달리는 강물을 보노라면, 흐르는 것은 강물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사람이 어디론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듯한 착각이 생겼다. 흰 거품을 일으키며 물에 휘감긴 교각들, 교각의 중동까지 물에 잠겨 양화대교와 성산대교는 물의 부력으로 떠 있는 부교처럼 허약하게 보였다.
강물은 벌써 사람의 터전을 유린한 흔적이 역력했다. 상류로부터 비탈을 깎고 논밭을 휩쓴 붉은 황톳물과 호박넝쿨, 보릿짚무더기, 통나무, 장작개비, 널빤지, 드럼통, 스티로폴, 플라스틱 제품 들이 쓰레깃디미와 함께 연상 둥둥 떠내려왔다. 원시동물의 체취처럼 물씬 풍기는 비릿한 강물 냄새, 둑 비탈에 군생한 잡초도 둑 위의 가로수들도 비바람 속에 춤추며 짙은 원시의 냄새를 발산했다. 한강은 태고의 숲과 들을 붉은 홍수로 뒤덮던 그 무서운 원시의 힘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었다.
취수장 사무실 옆에 모인 사람들은 처연한 심사로 강물을 내려다 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대개 유수지 근처에 사는 영세민들로 십여 년 전의 그 악몽 같은 물난리 기억이 새로웠다. 둑 위로 넘치는 한강 외수를 막으려고 밤새 가마니에 흙을 퍼담아 쌓아올리며 혼진을 다해 버티던 그들은 결국 내부의 적, 내수의 범람으로 맥없이 굴복하고 만 것이었다. 유수지도 제대로 마련 안 된 채 양수기 한 대 가지고는 엄청나게 몰려드는 내수에는 전혀 속수무책이었다. 이제 수량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소양댐도 생기고 강변도로로 쓰일 만큼 둑방도 튼튼해지고, 넓은 유수지에 수문도 세 개의 철문으로 되어 있고 양수기도 다섯 대나 갖춰 놓았으니 그만하면 수방시설은 완벽하다고 할 만했다. 그러나 그 완벽성이 아직 검증 안 된 가설인지라 막상 큰물이 닥치고 보니 적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과연 저 시설들이 제구실을 해낼까?
잠시 빗발이 뜸해지는가 했더니 상류 쪽에서 돌풍이 일어 뿌옇게 비를 몰고 왔다. 우산들이 휘딱휘딱 뛰집어지고 둑방의 가로수들이 미친 듯이 몸을 뒤챘다. 바람에 뜯긴 나뭇잎들이 수없이 날아가 강 위에 떨어졌다. 억수 같은 빗발로 뿌옇게 시야가 흐려진 가운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곧 강가를 떠나 둑방 밑의 제 집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불길한 어둠이 내리누르고 있는 둑방 동네의 불빛은 창백하게 가물거렸다. 둑 안쪽 비탈을 따라 우거진 플라타너스숲은 비바람에 영합하여 쏴아쏴아 파도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어둠을 휘저어 대고 철탑 아래로 늘어진 고압선은 바람 타며 위험스럽게 출렁거렸다. 추녀 끝 홈통마다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물소리, 밤이 깊어 감에 따라 둑방 동네는 차츰차츰 한강 수위 아래로 들어가고 있었다. 빗소리가 멎을 때마다 둑 너머 대양처럼 충만한 강물이 지심(地心)을 울리며 우렁우렁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수가 땅밑 하수도관을 통해 유수지를 향해 치달리는 물소리도 들려왔다. 땅속 사방으로 물길이 뻗어나 주택의 지반을 침식하고 지하실마다 물이 들고 있었다. 불안한 중에 그래도 미더운 것은 TV 앵커맨의 침착한 목소리와 유수지 폄프장에서 탈탈탈 들려 오는 모터 소리와 튼튼한 둑방 위로 쉴새없이 왕래하는 찻소리였다. 한강 수위도 경계 수위를 약간 넘어선 상태에서 오랫 동안 머무적거리고 있어서 설마 위험 수위를 넘으랴 싶었다. 치산치수라면 요순 이래 통치요결의 상징처럼 쓰여 온 말인데, 어떤 위정자가 수방대책을 소홀히 해서 원성 듣기를 원할까? 강이 둑을 타고 넘는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르지 않는 한, 유수지의 수방설비는 완벽하다고
했다.
그러나 식구들이 모두 잠든 후에도 불안감 때문에 자정이 넘도록 TV 앞에 지켜 앉아 있던 일부 소심한 가장들은 밤 2시경에 수량 조절기능을 완전히 잃고 항복한 소양댐이 수문을 죄다 열고 무제한으로 물을 방출하논 장면을 보았다. 산더미 같은 물이 큰 낙차로 곤두박질치며 일으키는 엄청난 물보라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물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가 다시 불끈 솟구쳐 올라 긴 포물선을 그으며 쓰러지는 모양은 과연 간담이 서늘한 광경이었다. 그 풀이 서울에 도착하기 시작하는 새벽녘부터 강물은 위험 수위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비록 위험 수위에 도달해도 제방이 높고 튼튼하므로 그다지 염려할 것은 못 된다는 것이 대책본부의 견해였다.
그러나 주민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둑 밖의 수마(水魔)는 여전히 물 샐 틈을 노려 음험한 촉수를 부단히 놀리고 있었다. 공격의 선봉은 둑 밑에 터널식으로 된 배수관을 통해 수문 앞까지 밀려가 굳게 닫힌 철문을 엄청난 수압으로 떠밀고 할퀴면서 무섭게 소용돌이쳐 쳤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어라! 수문 안쪽 유수지에는 사방에서 내수가 연상 급류로 콸콸 모여들면서 수문 밖 외수의 공격에 호응하고 있었다. 거대한 수문 콘크리트 상자는 국내 최대의 토목건설업체가 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공사였음이 판명되었다. 수문 상자가 배수관과 연결된 부분의 가느다란 틈서리로 물의 촉수가 스며들어 벽 안쪽의 둑 흙을 녹이며 서서히 내부로 쐐기 박듯 진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개미 구멍으로 제방이 무너진다는 속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소양댐에서 방출한 물이 도착하는 새벽녘에 유수지 큰처 몇몇 주민들이 수문 상자 양쪽 틈서리에서 오줌발만한 물줄기가 쁨어 나오는 걸 목격하고 펌프장의 당직자에게 알렸다.
날이 밝자 비는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낮게 드리웠던 검은 비구름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일기예보대로 큰비는 더 이상 없을 듯 했다. 식전에 유수지 앞 길에 물 사정을 살피러 나온 주민들의 표정은 악몽에서 깨어난 듯 표정이 밝았다. 수문 틈에서 뿜어 대는 물줄기는 이제 수건 폭만큼 커져 있었으나 주민의 신고에 대한 구청의 답변은 유수지 당직자로부터 보고를 받아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며 수문이 이중으로 되어 있으니 조금도 걱정할 게 못 된다는 것이었다. TV도 아무 걱정 말고 화면만 지켜보고 있으면 유사시에 지시를 내려 주겠다고 했다. 사실 강물이 위험 수위에 접근해 있긴 했으나 둑에서 내려다보니 3m 이상 아래에 위치해 있어 별로 위험이 실감되지 않았다. 비가 그쳤으니 물두 조만간 줄어들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TV 역시 걱정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천연덕스럽게 정규프로로 복귀하면서 짬짬이 특별메뉴로서 보기 드문 대장관인 소양댐의 산더미 같은 물이 낙하하여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는 장면을 보여 주어 전국의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와 같은 당국의 시종 여유작작하고 침착한 태도는 주민들에게 터무니없는 안도감을 불어넣은 게 사실이었다. 마음이 느긋해진 주민들은 조반식사 후 지하실에 든 물을 대충 퍼낸 다음 제각기 일상 속으로 슬몃슬몃 젖어들기 시작했다. 시내에 점포를 가진 장사치들, 손수레 행상, 공사장의 인부들이 서둘러 일 떠난 후, 평상시 일요일답게 교회의 녹음된 차임벨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뗑그렁뗑그렁 한가롭게 울려 퍼지고, 모처럼 일요일 맞은 월급쟁이 가장들은 늘 하던 버릇대로 TV 앞에 모로 누워 낮잠을 즐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간밤에 물걱정하느라고 잠 설친 그들이었다.
위험 수위 돌파와 함께 둑이 터진 것은 오전 10시 반경이었다. 길이 7m의 육중한 콘크리트 수문 상자가 강물의 수압에 못 견뎌 마침내 유수지 안으로 나자빠진 것이었다. 강물은 쓰러진 수문을 유린하고 무섭게 유수지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이 상황을 먼저 알린 것은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집 안에 뛰어들며 둑 터졌다고 소리칠 때 안방의 바보상자는 여전히 딴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근처 주민들은 대문을 박차고 유수지로 내달았다. 쓰러진 수문 위로 허연 거품을 물고 폭포수같이 맹렬히 쏟아져 들어오는 강물은 이제 그 무서운 힘으로 길이가 각각 20m씩이나 되는 양옆의 콘크리트 옹벽을 주춤주춤 밀어내고 있었다. 둑의 흙이 허물어져 뻘건 흙탕물이 솟구쳤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수지의 둑 전체가 당장 무너져 강물이 순식간에 노도처럼 주택가를 덮칠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뒤늦게 대피 안내방송을 시작한 TV도 민방위 확성기도 당장 강물이 덮칠 것처럼 다급한 목소리로 대피를 재촉했다. 사실 터져 나간 수문 위 둑마루의 아스팔트가 서너 군데나 균열이 갔으니 그런 판단도 나올 만했다. 더구나 그 둑은 모래땅 위에 축조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둑은 결국 무너지지 않았고, 성화같이 다그치는 대피 독촉에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집 밖으로 뛰쳐나온 수만의 수재민들만 큰 재산피해를 입고 말았다.
유수지가 만수위의 넓은 호수로 번들번들 차오르더니 이내 넘쳐나기 시작했다. 유수지 앞길에 들끓던 사람들은 잠깐 사이에 퐁비박산 콩 튀듯이 뿔뿔이 흩어지고 대신 일단의 전경들이 스리쿼터로 도착했다. 이동 홍보차가 등장하고 핸드 마이크, 호루라기 소리가 시끌짝했다. 주민들은 밖에 나가 놀던 아이들을 얼른 집 안으로 불러들이고 대피를 서둘렀다. 동네 교회에서 예배 보던 이들도, 성산시장의 장사치들과 거기에 장보러 갔던 아낙네들도, 독서실에 있던 고3짜리들도 뒤늦게 소식 듣고 황급히 집으로 내달았다.
물은 낮은 곳으로. 유수지 주변 일대의 가난한 시멘트 블록집들이 첫번째 희생물이었다. 물은 방사형으로 질펀하게 퍼져서 낮은 포복으로 배를 밀며 신속하게 몰려왔다. 바깥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수챗구멍으로 하수도 물이 미친 듯 끓어오르면서 이에 합세, 잠깐잠깐 새에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주민들은 다급한 위험에 쫓겨 세간살이를 붙잡고 경황없이 허둥댔다. 워낙 저지대의 낮은 집들이라 일단 침수가 되면 지붕까지 물이 올라 오를 게 뻔한데도 좁다란 다락에 이불, 옷, 책 따위를 잔뜩 때려넣거나, 그나마 다락도 없는 집에선 장롱 서랍을 빼어 위에 얹고 부엌의 찬장을 방 안에 끌어다 장롱, 책상과 맞붙여 놓고 그 위에다 물건을 올리는 식의 도무지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이었다.
물이 무릎 위까지 차오른 유수지 앞길에 곧 남부여대의 피난민 행렬이 생겨났다. 스피커, 호루라기 소리가 여전히 요란하고, 졸지에 피난민이 된 주민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명한 표정이었다. 집문서, 저금통장 따위 귀중한 것들이 깊숙이 들어 있을 비닐가방, 석유가 출렁거리는 곤로, 밥이 든 보온밥통, 연속극·프로야구가 들어있는 TV, 이불보따리 같은 것이 식구 수에 따라 하나씩 묵직하게 들려 있었다.
한 임산부는 불룩한 만삭의 배 위에 TV를 얹고 뒤로 잦혀진 자세로 뒤뚱뒤뚱 위태롭게 물속을 걸어오고 병든 노인을 등에 업은 한 중년사내는 목에다 가방을 걸어 맨 채 비지땀을 홀렸다. 어린것들은 짐든 어미 목에 바싹 매달리고, 걸어가는 아이들은 배꼽까지 차오른 물에 놀라 입술이 파래져 있었다. 100m쯤 걸어 물 밖에 나온 수재민들은 인적 없이 물만 출렁대는 동네 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는 터덜터덜 발을 떼어놓는 것이었다.
유수지 부근 저지대를 물바다로 만든 강물은 계속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야금야금 제 영토를 넓혀 갔다. 물 끝에 눈이 달린 듯이 낮은 데를 찾아 수만 갈래의 방사형으로 신속히 퍼져 나가는 모양은 흡사 신생대의 무수한 파충류 무리들이 대군을 이루어 공격해 오는 것 같았다. 물은 낮은 곳으로. 가난뱅이들이 세든 미니 이충의 지하실 방들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신생대의 지각변동 현상이 그랬을까? 파충류 무리들이 우글대며 밀려가고 곳곳에서 하수도 시궁물이 역류하여 수챗구멍 맨홀구멍으로 간헐천 분수처럼 1m 높이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땅속 내수의 압력으로 보도는 지진 타듯이 땅거죽이 융기하여 보도블록이 부걱부걱 들떠 올랐다. 땅 위로 밀려dh는 외수는 맨홀, 수챗구멍에서 용솟음치는 내수와 합세하여 급속도로 침수지역을 넓혀갔다. 개들이 몹시 짖어 대고 안부를 묻는 친지들의 전화벨 소리가 빗발치듯 하고 어린것들은 빨리 피난 가자고 울어댔다. 제재소 야적장에 빽빽히 세워 놓은 목재들이 물에 떠 쓰러지고 성산대교 근처 양어장 뻘물에 갇혀 죽 끓듯 버글대던 미꾸라지들이 일시에 해방되었다. 어항 속의 금봉어도 강물로 돌아갔다. 집집마다 쌓아 놓은 연탄이 곤죽 되고 재래식 개량식 할 것 없이 변소 오물이 물에 풀려 몽게뭉게 넘쳐 오르고 쓰레기가 등둥 뜨고 플라스틱, 스티로폴 제품, 과일들이 떠다니는 수면 위에 벙커 시유, 경유, 석유, 모빌유가 끈끈한 기륨막을 쳤다. 개들이 물올 피해 지붕으로 오르며 그악스럽게 짖어 대고 있었다.
수해는 마침내 중산층까지 미쳤다. 물이 찰랑거리는 길거리들은 제 집에서 쫓겨난 피난민들보 혼잡스러웠다. 자가용들이 연달아 출발하고 밖에 일나갔던 이들이 택시로 쇄도해 들어왔다. 차를 가지고 구원나온 친지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북새통에 식구들을 태우고 한가하게 구경 나온 자가용족들도 있었다. 확성기, 호루라기, 전경들의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낭자한 가운데 겁에 질린 나머지 물건 몇 가지 못 챙기고 황급히 집을 며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물이 집을 포위하고 무릎 위까지 찰랑거리도록 집 안에서 허등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니 이층 지하실에 세든 이들은 세간 일부를 주인네 마루로 옮기고 주인은 주인대로 제 물건을 다락으로 옮기고 연립주택 아래층 사람들은 이층으로 통하는 계단 위에다 물건을 쌓아 놓고 있었다. 한치라도 더 높여 보려고 피아노 냉장고 같은 무거운 물건을 책상이나 소파 위로 옮겨 놓다가 삐끗 허리를 다치는 이들도 있었다.
대피가 늦어지는 집에는 전경들이 다니며 감때사납게 몰아내곤 했다. 어느 조그만 책방에서,
“아저씨, 우물대지 말고 빨리 나와요!”
“이 책들이 내 전재산인데 그냥 물속에 처박아 놓고 나가란 말이여? 책이란 건 불과 물이 천적이여. 다른 물건은 말려서 쓰기라도 하지만, 책은 한번 물 먹으면 쓰레기밖에 안돼.”
“내 참! 당장 둑이 무너질 관국에 우물쭈물하다간 큰일난단 말이오.”
“빌어먹을, 큰일나면 떡이나 해먹지. 이봐, 젊은이, 나하고 싱갱이할 시간이 있으면 책 나르는 일이나 좀 도와 주지 그래.”
자가용차 가진 중산층 주민들은 역시 기동성이 좋았다. 먼저 식구들을 물 밖에 대피시킨 다음, 트렁크가 넘치도록 짐을 때려넣고 유유히 물을 가르며 빠져나오곤 했다. 그러나 배기통에 물이 드는 줄도 모르고 너무 욕심부리다가 시동이 안 걸려 온 식구가 달려들어 떠밀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무판자때기를 나일론끈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뗏목으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침수지역을 빠져나오는 주민들 중에는 반바지 차림에 등산 배낭을 멘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그 울긋불긋한 색깔이 수재민 행색으로는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애들 목에는 물놀이용 튜브가 걸려 있기도 했다. 모두가 종아리에 흙탕물에 섞인 시꺼먼 기름때가 눌어붙어 있었다. 등산 배낭 위에 천막까지 얹어 짊어진 어느 사내는 플라스틱 욕조에 세 살 다섯 살짜리 어린 남매를 태우고 물 위로 밀고 왔는데 그 어린것들은 물놀이 나온 줄 알고 철없이 좋아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외출중인 아내를 기다리는지 물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한참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물난리도 난리인지라 구색을 갖추느라고 이런 식의 이산가족을 적잖이 발생시켰다. 극적인 상봉도 있었다. 묵직한 트렁크를 머리에 인 채 어린이의 손올 잡고 물 밖에 나온 젊은 아낙은 마칩 앞에서 달려오는 남편과 마주치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남자는 어디 결혼식장에라도 다녀오는 길인지 말쑥한 정장이었다.
“아니, 방이 어떻게 됐어? 물에 잠겼어? 엉?”
“물이 부엌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나왔는데 아직 방 안까진 안 들었을 거예요.”
“중요한 건 챙겼지? 잠깐 여기서 기다려, 내가 들어가서 한짐 꺼내 갖고 올 테니.”
남자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베이지색 신사복 상하의를 홀홀 벗어 아내에게 던져 주고는 팬티 바람에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내달았다.
물은 사방으로 광범히 퍼져 나감에 따라 자연히 진행속도가 느려졌다. 얼결에 피난짐 몇 가지 못 챙긴 채 대피했던 수재민들 중에는 물이 불어나는 속도가 느려지자 한번 더 세간을 날라 오려고 물가로 몰려든 사람들도 있었으나 골목마다 지켜 선 전경들의 제지로 몇 마디 승강이 붙다간 맥없이 돌아서곤 했다. 전경들은, 당장 둑이 무너질지 모르는데다 물속에 누전된 전류가 흘러 감전사당할 판에 가긴 어딜 가느냐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서너 시간에 걸쳐 망원 1, 2동 대부분의 지역을 침수시킨 강물은 서서히 성산동, 연남동 쪽으로 밀려왔다. 생활의 치부까지 까발겨 훑어낸 그 물은 심한 악취를 풍겼다. 하수도의 시궁물, 폐수, 변소의 오물, 썩은 쓰레기가 뒤섞인 물이었다.
근처 고지대에 위치한 세 학교 건물이 수용소로 쓰였는데 오후 한 두시경 해서 모두 포화상태를 이루었다. 침수지역의 상황을 알기 위해 수재민들은 교실마다 교탁에 TV 한 대씩 올려놓고 지켜보았는데, TV는 물난리쯤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프로야구 실황만 계속 방영하고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TV가 초상난 데 춤춘다고 울끈불끈 화를 내기도 했지만, 차츰 영상전파가 유포하는 주술에 도취되어 다소곳해져 버리는 것이었다. 비 온 뒤라 필드의 초록빛은 한충 돋보이고 물젖은 잔디 위로 미끄러지는 슬라이딩 동작은 사뭇 경쾌했다. 롯데 자이언츠와 OB 베어스의 치열한 접전은 세 시간 남짓 계속되었다.
이날의 수재민들은 피난처를 놓고 일반 서민과 중산충이 확연히 구별되었다. 중산층 부류는 귀중품들을 지니고 있는데다 수용소 생활을 하기엔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자가용으로 친지 집을 찾아가거나 친지들이 먼저 알고 달려와 데려가곤 했는데, 그것마저 맘이 내키지 않은 축들은 아예 호텔에 투숙하기도 했다. 합정동 근처 호텔 서너 개가 갑자기 몰려든 부유한 수재민들을 맞아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 (이 무렵 가까운 여의도와 멀리 풍납동 침수지역에 이웃한 고소득충의 압구정 아파트촌에서는 혹시 홍수로 외부와 단절될까 두려워 한때 일부 극성맞은 주민들이 치열한 사재기 경쟁을 벌여 쌀, 라면, 청량음료 같은 식품이 금세 동이 났거니와 그곳 쌀가게, 식품점들은 한 달 치 영업을 불과 서너 시간 만에 해치웠단다.)
이렇게 하여 다사다난했던 긴 하루는 마침내 저물어 밤이 되었다. 그런데 단전되어 칠흑같이 어두운 침수지역에 홀로 남아 촛불 하나 밝히고 제 집을 지키던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들 역시 도둑에게 잃을 것이 많은 중산층이었다. 대개 이층집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 여차적하면 뗏목으로 쓸 요량으로 아래층 현관 문짝까지 두라이버로 떼어놓고 이웃끼리 서로 연락하면서 도둑의 침입을 경계했는데 밤이 이슥해지자 몇몇 심약한 사람들이 겁에 질린 나머지 파출소에 구원을 요청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발각되고 만 것이었다. 고무보트가 촛불 켜진 집마다 다니며 사람들을 강제로 실어 날랐다.
“이봐, 빨랑 나오라구! 돈궤 안은 수전노같이 웅크리고 있지 말고. 제기, 바둑도 안 둬봤나?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그깐 세간살이 붙잡고 앉았다간 중한 목숨 수중고혼 된다구.”
“수전노라니! 거 말씨 한번 공손하네. 내 목숨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깐, 간섭 말구 댁 목숨이나 보존하셔. 그렇게 쓸데없이 싸돌아댕기지 말고.”
“어라, 시민의 인명 재산 보호하러 나선 사람보고 뭐, 싸돌아댕겨? 보아하니 대학에서 먹물깨나 먹은 모양인데, 나도 석 달 후 옷 벗으면 학생이여.”
“암튼 내 걱정일랑 관두고 딴 데나 가보셔. 지금 침수지역에 해적들이 큰 집만 골라 훔치는 모양인데 어떻게 집 비우나?”
“아따, 그 작자, 되게 고집 세네. 시민의 인명 재산은 우리가 보호한다고 하지 않소? 여러 말 말구 어서 나오라구!”
“한줌도 못 되는 숫자 가지고 이 넓은 지역을 방범한다? 난 못 나가요.”
“그럼 좋다구. 침수지역은 시방 계엄령이 선포된 거나 마찬가지야. 오늘 밤 침수지역에서 발견된 자는 일단 절도 용의자로 간주하라는 상부의 명령인데 당신이라고 해적질 안 한다는 보장 있어? 당장 안 나오면 절도 용의자로 취급할 거야!”
“……”
최고 수위 11.3m를 기록한 밤 8시를 고비로 한강은 더 이상 불지도 줄지도 않고 안정세를 취하고 있었으나 망원동 주변 지역은 계속 침수범위가 확대되어 갔다. 칠흑같이 어두운 침수지역에는 물에 떠오른 장릉, 피아노, 찬장, 책꽂이, 책상 같은 것들이 방 천장을 퉁퉁 들이받다가는 기우뚱 모로 쓰러지고 빈 항아리, 굵은 각목 같은 것들이 물 위에 떠다니면서 유리창을 박살내고 있었다. 물 위에 목만 내놓고 돌아다니는 도둑들도 방 유리창을 깨고 있었다.
성산 1동, 연남동 일부를 침수시킨 강물은 수재민들이 수용된 국민학교와 중학교가 위치한 조그만 산 아래까지 바싹 밀려와 골목마다 낙지발 같은 촉수를 내밀고 스멀거리고 있었다. 수마가 덮쳐 누른 침수지역은 단전으로 먹물 푼 듯 깜깜하고 심한 악취가 바람에 밀려와, 흡사 열병이 횝쓸어 죽어 버린 마을 같았다. 지붕에 오른 개들이 컹컹 짖어 대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려왔다.
침수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의 국민학교 수재민들은 사층 건물 30여 개 교실을 가득 채우고 넘쳐 복도까지 늘비했는데, 심지어 운동장 구석에다 텐트를 치고 야영에 들어간 가족들도 있었다. 교무실이 본부로 쓰이고 본부 료원은 그 학교 교사들이 맡고 있었다.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교무실 앞에 그치지 않고 실내 스피커에서는 “망원동 십자약국 옆 구멍가게 하는 김아무개 씨 찾습니다” 하는 식의 이산가족 찾는 안내방송이 연상 울려 퍼졌다.
복도 끝에 책상 두 개를 붙여 놓고 그 위에 작은 체구를 오므리고 오두마니 앉아 있는 어느 시골 할머니. 무릎 위에 조그만 손가방이 소중스레 얹혀 있었다.
“남원서 밤기차 타고 딸네 집을 찾아왔는데예. 와봉께 이런 노릇이 있습니껴? 딸은 입원한 시아버지 간호한다꼬 병원 가고 사위는 사위대로 일나가고 주인 식구밖에 없어예. 그래 방에 들어가 딸이 오길 기다리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어 뿌렀는데예, 급작히 둑 터졌다꼬 마이크로 막 소릴 안 지릅니껴? 그래 그만 겁결에 내 손가방만 달랑 들고 나왔는데…… 하이꼬, 테레비락도 머리에 이고 나왔으면 사위 만나도 면목 설 텐데…… 하이고, 이 노릇 우짜면 좋노.”
그러나 딸도 사위도 그 할머니의 상경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터이므로 그들의 상봉은 침수지역의 물이 다 빠질 때까지는 이뤄지지 못할 게 분명했다.
교실마다 콩나물시루 속 같아 모로 눕기에도 비좁아서 옆 식구와 등을 비비적거려야 할 지경이었지만 사람들은 별반 불평을 입에 담지 않았다. 초저녁에 급식이라고 겨우 일인당 컵라면 한 개씩 배급 나왔을 때도, 더 중요한 물건을 챙기라고 곤로 못 가져온 가족이 의외로 많아 남의 불에 끓인 물을 얻거나 아니면 생라면 그대로 씹으면서도 역시 쓰다 궂다 불평 소리가 없었다. 구멍가게 하는 아낙네들이 그 경황중에도 빵, 라면, 소주 따위를 한 보따리 싸갖고 와 여기저기 층계참에서 좌판을 벌였는데 잠깐 사이에 물건이 동났다.
졸지에 수재민으로 전락된지라 사람들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음직도 한데 의외로 조용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별로 침울하거나 처량한 기색 없이 그저 멍하니 교탁 위에 올라앉아 재롱 떠는 TV나 바라볼 뿐이었다. 교실마다 전자제품 대리점 차린 듯이 TV, 카세트라디오, 보온밥통 들이 늘비했는데, TV는 특히 가난뱅이 피난짐 중에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쌀금이 비싸야 밥맛 난다고 그것이 시청료까지 물어야 하는 값비싼 물건이기에 더욱 그 화면이 사랑스럽고 사랑스럽다 보니, 그 안방의 재롱둥이가 악동이 되어 정치, 상업적으로 이것저것 가당찮은 요구와 유혹을 해와도 오냐오냐 하고 들어주게끔 길들여져 버렸다. 연속극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간간이 웃음과 탄성이 새어나오곤 했다. 교실 뒤켠에는 몇몇 젊은이들이 벽에 붙은 학급문고 책꽂이에서 동화책을 꺼내 뒤적거리기도 하고…… 교실은 홉사 순조롭게 밤항해하는 여객선의 만원 삼등객실처럼 무사하고 평온해 보였다. 불행을 당한 수재민들로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행, 불행이란 것이 남과 비교했을 때만 실감나는 상대적인 정서인가 보었다. 남들은 멀쩡한데 유독 혼자만 당하는 불행이라면 견디기 어렵겠지만, 이번 물난리는 워낙 수만 명이 모개로 당한 재난이었다. 인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할 불가항력인 천재지변인 바에야 속태워 본들 무엇 하랴. 거금이 걸린 도박에서 결국 손놓고 나가떨어진 노름꾼은 절망감이나 슬픔보다는 큰 허탈감 속에 일종의 달관이 생긴다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아둥바둥 애를 쓰다가 졸지에 큰 손해를 당하고 만 수재민들의 심정도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니었는지.
자정이 넘어 TV방송이 끝나자 수용소는 깊은 정적에 잠기고 수재민들의 가슴 위로 첨수지역의 검은 강물이 차갑게 흘러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밤새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수용소의 분위기는 아침이 되자 판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밤에는 도난당할세라 피난짐을 베개로 삼거나 끌어안은 채 사뭇 이웃 식구를 방색하던 사람들이 찬 교실바닥에서 함께 고생하며 하룻밤을 보내고 나자 은연중 동병상련의 동류의식이 생겼는지 서로 말을 트고 활발하게 얘기가 오고갔다. 시멘트바닥에 스멀거리는 냉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뜬눈으로 지새운 사람들이 태반이고 더러는 생라면 먹고 배탈난 사람들도 있어 자연히 볼멘 불평 소리가 입 밖에 터져나왔다. 게다가 전날부터 단수가 되는 바람에 각층에 있는 수세식 변소마다 변기 밖까지 똥이 넘쳐나 도무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러다간 물벼락 맞은 위에 똥벼락까지 덮어쓰게 되었다고 불평이 대단했다.
밤사이에 한강 수위는 뚝 떨어졌다는데 둑을 넘어온 물은 벌써 여러 시간째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밤새 트럭 5백 대분의 펄흙을 퍼넣어 수문 터진 구멍을 메워 놓긴 했으나 침수지역의 단전으로 전원을 못 얻어 양수기를 못 돌린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데, 굳어 버린 듯 요지부동으로 번들거리는 홍수물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차츰 신경이 날카로워져 갔다. 한강 둑이 가까운 곳일수록 침수가 심해 작은 집들은 지봉만 남고 큰 집도 반 넘어 물에 잠겨 난쟁이 건물이 된 채 물 위에 납작납작 엎드려 있었다. 흡사 거대한 물 표면이 모든 건물의 상단부를 수평으로 절단해 낸 형국이었다. 물이 넘실거리는 한길에는 가로수의 큰 줄기가 물에 잠겨 잎이 무성한 관목 덤불처럼 둥둥 떠 있고 길을 가로질러 현수막 하나 물에 닿을 둑이 축 늘어졌는데 거기에 쓰인, ‘가을맞이 도시새마을 대청소’가 이채로웠다. 비탈진 학교 진입로 입구, 한길가에는 물사정을 살피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이고, 약사선생님, 오랜만이네요! 그 동안 우리집 발걸음이 뜸하시더니 여기사 만나 뵙네요.”
“허허, 그렇잖아도 어제가 노는 날이라 한번 밤에 들를까 했는데 그만 물난리를 만났잖아. 주(酒)여사네는 이번 물에 피해가 적잖을걸, 아무리 세든 가게라 해도…….”
“아유, 난 망했어요. 이 물이 속히 빠져야하는데…… 실내장식, 벽, 탁자 할 것 없이 모두 합판이라 물 오래 먹으면 죄다 들떠 오른단 말예요.”
“침수된 지 만 하루가 됐으니, 더 기다릴 것 없이 합판 제품은 물론이고 다 작살난 거지. 더 이상 침수시간이 길어지면 건물 지반이 내려앉아 벽에 가로금이 쫙쫙 가고 자칫 도괴 위험까지 생길 판이야.”
“아이고, 이를 어째! 이럴 바엔 차라리 둑 터진 대로 방치해 두는 게 나을 뻔했지 뭐예요. 지금 한강 수위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가만둬도 빠져나갈 물을 공연히 터진 구멍을 막아 버렸으니 이 물이 어디로 빠져나가냐 말이에요. 썩을놈들 같으니!”
“그러게 말이야, 하는 짓거리가 중구난방이라니깐! 그런데 두 아가씨는 어떻게 됐어? 설마 물에는 안 떠내려갔을 테고…….”
“걔네들은 교실에 남아 물건을 지키고 있죠. 걔네들 말예요, 반바지 바람에 흙탕물 속에 있다가 종아리, 허벅지에 잔뜩 기름때가 올라 가렵다고 긁적거리는데, 어디 물이 있나요, 비누가 있나요?”
“허허, 빨리 씻어 줘야지. 그 아이들은 미끈한 다리가 장사 밑천인데 피부병 생기면 곤란하지. 아마 이번 물난리에 피부병 많이 생길걸.”
“아유, 좋으시겠어. 또 약 팔 궁리 하시네. 어디 피부약뿐이겠수? 이질 설사약에 소독약까지…….”
“그렇고, 수용소는 하룻밤 지내기가 어땠소? 가만있자, 눈자위가 볼그레한 결 보니 대낯부터 한잔 걸쳤군그래.”
“아유 말도 마세요. 아무리 춥고 배고픈 것이 수재민이라고 하지만요, 찬 세멘바닥에서 몸 웅크리고 새우잠 자고 났더니만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있더라구요. 그래 몸 좀 풀려고 드라이진 한 모금 마신 것 뿐이지. 싱숭생숭한 데는 역시 한잔 술이 제격이거든요.”
“역시 주모라 다르구먼. 술병을 꿰차고 가고…… 그런 줄 알았으면 내 차에 재워 줄 걸 그랬지? 허허. 저게 내 차야, 식구들을 역촌동 아이들 외갓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서 혼자 저 차 안에서 밤새웠지, 주여사랑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허허.”
“아이구, 엉큼하셔라. 그런데 선생님 약국은 조기 빤히 보이네요.”
“빤히 보이니까 여기서 지키고 앉아 있는 거지. 약품을 다락에 올려놓긴 했지만 당최 걱정이 돼서 말이야. 수해지역엔 도둑이 끓는다잖아. 간밤엔 헤드라이트 불빛을 가게 창문에다 비춰 놓고 지켰지.”
“아유 지독하신 양반, 그러니까 돈을 벌지.”
이렇게 곳곳에 불평이 낭자한 중에 더욱 수재민의 심화를 건드린 것은 TV 아침방송이었다. 물은 얼어붙은 듯 요지부동인데, TV는 무슨 곡절에선지 망원동 일대가 밤사이 물이 빠져 주민들이 귀가, 복구작업을 한창 벌인다고 터무니없는 오보를 한 것이었다.
점심때가 지날 무렵 동편 운동장 가에 와 있는 식수차 주변에는 물 받으러 온 사람들로 한창 붐볐는데, 암퇘지 젖줄에 매달린 돼지새끼떼같이 탱크물 수도꼭지를 빨려고 엉겨붙은 사람들의 입에서 험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정말 수재민 괄시해도 너무한다, 너무해! 여기가 포로수용소여 뭐여? 물 한 사발 받으려고 이렇게 이삼십 분씩 나라비 서서 기다려야 하니! 정말 한심스럽구먼!”
“식수차 한 대만 더 굴려도 이런 불편은 없을 게 아닌가.”
“물이 있어야 변소 똥도 내리지, 원!”
“목 축일 물도 이렇게 병아리 오줌만큼 인색한데 저것들이 변소 칠 물을 주겠수?”
“목마른 건 참지만 똥 나오는 건 못 참아요. 변소에 똥이 넘쳐 도저히 대변을 볼 수 없는 형편이잖소.”
“그래요, 우리가 당장 필요한 것은 물차가 아니라 똥차죠.”
“넨장맞을! 똥누기가 무섭다고 굶을 수도 없고 말이야, 정말 지랄같네!”
“그러니까 저것들이 컵라면 한 개씩밖에 안 주는 것도 우리가 똥 많이 쌀까 봐 그런 것 아닌가? 양식 걱정 말고 취사도구만 들고 대피하라고 해놓구선 도대체 컵라면 한 개가 뭐여?”
“빌어묵을, 저 사람들 정말 내년 선거 안 치를락카나? 표밭에 물 들어 표가 다 젖었는데, 정말 이럴 긴가, 이러기를!”
그때 정문으로 소독차가 기세 좋게 들어왔다. 차 꽁무니에서 푸른 소독 연기가 뭉게구름같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차가 매캐한 소독 연기로 뒤집어씌우면서 옆을 지나치자 식수차에 엉겨붙었던 사람들이 질색하고 물사발을 쏟으며 뒤로 물러났다. 차를 향해 몇 사람이 고함쳤다.
“저게 먹는 물에 독약 뿌리네!”
“소독차는 필요 없어! 똥차를 보내라구!”
차가 잠깐 사이에 건몰 주위와 운동장을 소독 연기로 덮어씌우고는 휭하니 정문 밖으로 빠져나가자 사람들은 졸지에 더러운 전염병 보균자가 되어 버린 듯 더욱 마음이 산란해졌다.
식수차 곁을 떠난 사람들은 축구 골대 앞으로 모여들어 다시 열심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삼십여 명이 한데 모여 웅성거리는 광경은 쉽사리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침내, “이번 물난리는 천재지변이 아닌, 사람에 의한 인재(人災)다.” 하는 주장이 나왔다. ‘인재’라는 단어의 발견에 사람들은 대번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 단어는 곧 강한 호소력으로 서슴없이 사람들에게 파고들었다.
“망원동 수재는 천재가 아니고 인재라구!”
“아니, 거 무슨 소리여? 망원동에 어떤 인물이 났기에 천재다, 수재다, 인재다 하는 거요?”
“이 양반 정말 웃기네. 무슨 사람이 그리 감이 머우? 이번 망원동 물난리는 천재지변이 아닌 수문 시공업체의 부실공사와 당국의 감독 소홀로 인한 인재라 이 말이오.”
“하아, 그렇지! 아무렴 그거야 천재가 아닌 인재지. 도대체가 수문이 틈 벌어져 물 새기 시작한 게 언제여? 수문이 위험하다, 위험하다, 새벽부터 구청에 전화질했는데도, 그것들이 아무 걱정 말라고 하면서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방치했잖소.”
“TV에서 한 시간 전쯤에 대피 준비하라고 사전 예고만 해주더라도 이렇게 큰 피해는 당하지 않았을 거요. 준비령도 없이 덜컥 대피령을 발동하여 짐도 제대로 못 챙긴 채로 볶아쳐 쫓아냈으니, 원.”
“아니, 물에 잠긴 세간살이보다도 상습 수해지역으로 낙인찍혀 땅값이 뚝 떨어질 생각을 해야지!”
“안방 새는 줄은 모르고 너무 겉치레만 좋아하더라만. 에이, 수도 복판에 홍수도 못 막아 내는 주제꼴에 무슨 팔팔이여, 팔팔이긴!”
“한강변에 홍수 터지는 것도 ‘한강변의 기적’인가”
“우리가 마냥 우리끼리만 따따부따 입만 놀릴 게 아니라 당당히 나서서 피해보상을 요구해야 해요! 아기도 울어야 젖 주지 가만있으면 되는가.”
“그 말이 옳소. 구청이 가까우니 함께 가서 구청장을 만나 담판합시다.”
“모르는 소리! 가봐야 그 작자 없어요, 쳇! 아까 참에 구청 뒤 중학교 수재민 십여 명이 구청에 몰려갔는데, 구청장이라는 자가 어젯밤부터 종적을 감추고 안 나타난다는 거예요.”
“개새끼, 도망쳤군! 그런 겁쟁이 봤나, 잘 논다 잘 놀아.”
“겁쟁이가 아니더라도 그렇지. 어차피 목잘릴 것은 빤한 일인데 뭐 빨겠다고 총알받이 노릇 하겠소? 그런 놈을 충복이라고 임용했으니 한심하구먼.”
“그놈뿐만 아니라 충복인 체하는 것들 거반이 아마 그런 심보일걸.”
“그럼, 어쩌죠?”
“직바로 시장과 부딪쳐야지, 뭐.”
“그래요. 시장을 부릅시다.”
“그 양반 불러서 호락호락 올까요?”
“에이, 답답한 사람일세. 오고 안 오고 간에 멍석은 펴놓고 봐야 할 것 아니오? 우리가 수용소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해도 해야지. 일단 집에 돌아가면 말짱 허사요.”
이제 사람들은 이백여 명으로 불어나 운동장 동편 여기저기에 삼삼오오 둥그렇게 동아리 짓고 한참 열띤 설왕설래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여론 조성자는 대개 사십대 안팎의 중년들이었다. 그러나 중구난방으로 대고 떠들어대기만 할 뿐 정작 앞잡이 서서 일할 사람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말재간 있는 자가 몇 사람 앞에서 제법 격정적인 어조로 성토를 벌이다가는 그 주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면 슬그머니 말꼬리를 사리며 뒷전으로 물러서 버리는 식이었다. 선동자로 쩍힐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은밀히 파괴공작도 있는 것 같았는데, 한 가구에 70만 원 피해보상금이 나올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머리가 허옇게 된 노파가 운동장 이곳저곳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면서 거쉰 목소리로 연상 충동질해 대고 있었다.
“사내새끼들이 입은 뒀다 뭘 하자는 게야? 이럴 때 써먹지 못하고, 응? 문서에 도장도 안 찍은 70만 원 소리 믿지 말라고, 물 빠져 봐, 집에 들어가 살다가 벽이랑 담이랑 허물어져 소리 없이 죽는 거여.”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도 운동장 교단 위로 용약 뛰어올라 소리치는 자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유수지에 고성능 양수기 여섯 대가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 빠르면 저녁답에 물이 빠져 귀가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이때부터 운동장의 열기는 현저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동편 운동장 여기저기 떼뭉쳐 있던 여론의 동아리들은 한 꿰미에 꿰이지 못한 채 덧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물이 과연 줄고 있는지 어쩐지 확인하러 사람들이 한참 정문 안팎을 들락날락거리더니 운동장에 넘바 웅성거리는 패는 반으로 줄어 겨우 백여 명에 불과했다.
“에이, 벌어먹을 것. 원, 사람들이 왜 저리 속없을까? 오늘 저녁 귀가할 수 있다니까 좀 생기가 도는 모양인데, 아이구, 집구석이라도 들어가 보라지. 온 집 안이 진흙탕 된 꼴을 보면 쌍눈에 피눈물날 줄 모르고.”
“파투야, 파투! 저녁까지 몇 시간 안 남았으니 다 끝난 게지, 뭐. 에이, 입이 썩는구나, 만 개나 되는 입이 다 썩어! 만 개 입으로 한번 이구동성으로 힘껏 외쳐 보지도 못하고 말이야.”
“젠장 이 망원동 동넨 그 흔한 대학생들도 없나. 이럴 때 데모 안 하고 언제 해?”
사람들은 자신의 무력감에 아예 자조적이 되어 버렸는지 엉뚱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낮술 걸친 이십대 두 청년이 상체를 벌겋게 벗어붙이고 한바탕 싸움박질을 벌였는데, 구경꾼이 많아서 그랬던지 두 청년은 자신이 무슨 활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민첩하게 몸을 날리며 거의 삼십 분 동안이나 서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온 운동장 바닥을 누비며 싸움을 벌였는데 젊은 축들은 말릴 생각도 않고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만 하고, 중년 축들은, “병신 같은 것들! 젊은 혈기 엉뚱한 데 쓰네” 하고 혀를 찼다.
이렇게 운동장 분위기는 타락하여 도저히 재생의 기미가 없어 보일 때, 오후 3시경 뜻밖에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중학교 수재민 2천여 명이 구청 앞 대로변에 몰려가 시위를 벌여 전경과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침체된 운동장의 분위기는 아연 활기를 띠고 다시 여론의 동아리들이 형성되었다. 이번엔 중년 축들은 뒷전으로 처지고 젊은이들이 목청을 높였다. 사람들이 다시 운동장으로 슬글슬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론의 작은 동아리들이 열띤 성토를 벌이면서 몇 번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서너 개의 커다란 동아리로 합쳐지더니 가까스로 젊은이 십여 명을 앞잡이로 배출시켰다. 그 청년들은 곧 뒤에 많은 무리를 달고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으나, 마치 등 떠밀려 걷는 사람처럼 그리 자신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교무실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학교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교실 안팎에 멍하니 죽치고 있는 수재민들을 운동장으로 끌어모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교사들이 자기네 목줄이 달려 있는 앰프를 호락호락 빌려 줄 리가 없었다. 교사들은 방송 엠프가 든 캐비닛을 잠가 놓고 그 앞에 진을 쳤는데 사세부득이면 얻어맞아도 할 수 없다는 듯이 결연한 태도였다. 쌍방간에 한참 당기고 밀고 승강이가 벌어졌다. 양쪽 다 이삼십대의 젊은이들이었으나 교사 쪽에서 연상 “학부형님!” 호칭을 쓰면서 읍소작전으로 나왔다.
“제발, 학부형님들 고정하세요. 엠프를 내줬다간 우린 아예 줄초상 나고 맙니다. 제발 좀 물러나 주세요.”
“입때껏 우리가 자원봉사로 나서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우릴 꼭 곤경에 빠뜨려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교사들도 대부분이 수재민이에요. 억울하고 분한 심정 학부형 여러분에 못지않아요. 그렇지만 어떡헙니까?”
처음부터 독한 마음 없이 엉거주춤 나선 청년들인지라 선생들의 이러한 ‘학부형’ 공세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모처럼 시도된 행동마저 맥없이 와해되고 말자, 많은 사람들이 더 볼 것 없다고 구청 앞 시위현장으로 목소리를 보태러 떠나 버렸다.
TV중계차가 느닷없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몇십 분 지난 뒤였다. 크고 작은 두 대의 중계차들이 영문자 박힌 호사한 몸체를 번득이며 운동장 안으로 들어오자 허탈해 있던 사람들의 표정에 다시금 생기가 살아났다. 내부에 온갖 장비가 갖취진 대형 중계차까지 동원된 것으로 보아 몇십 분짜리 집중취재를 할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차가 멎으면서 사파리 상의를 입은 취재팀 세 명이 경쾌한 동작으로 승강구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은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현장에 으레 있게 마련인 구경꾼쯤으로 여겼던지 익숙하게 양미간에 주름살을 모으며 주위를 쓰옥 훑어보았다. 그 중 새치가 희
끗희끗 돋보이는 중년사내가 책임자인 듯이 보였다.
“본부가 어디에 있죠?”
그러자 앞에 있던 새마을모자 쓴 한 청년이 대뜸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본부는 왜 찾소? 용건이 뭐요?” ’
전혀 예상 밖의 대답에 오금박힌 취재팀은 금방 눈이 휘등그래졌다.
“저, 보시다시피 취재 건으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 서너 사람의 입에서 잇따라 야유가 터졌다.
“취재 좋아하네.”
“우릴 왜 찍어? 우리가 동물원 원승인가?”
“수재민 찍으러 왔으면 더 갈 것 없이 여기서 우릴 찍으시오. 우리가 바로 수재민이라는 동물이오.”
그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달은 취재팀은 얼른 자세를 공손히 바꿨다.
“가슴 아프게 왜 그런 말씀 하십니까? 우리가 온 목적은 여러분이 처한 곤경을 세상에 널리 알려서 동포애를 발양시키고 좀더 많은 구호의 손길을 보내도록 하자는 것 아닙니까?”
“구호의 손길이라구? 어럽쇼. 우릴 떼거지 취급하시네. 우리도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또박또박 낸 사람들이지만 그게 어디 성금이오? 세금이지. 우린 국민에게 누를 끼치는, 그런 값싼 동정이 아니라, 정당한 피해보상을 받고 싶소.”
사람들의 말투가 거칠어지자 이를 말리는 목소리도 얼핏 끼어들었다.
“거, 성금을 그렇게 언짢게만 생각할 건 없잖소. 시방 성급도 세금이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떳떳이 도움받는 거예요.”
“그렇죠. 우리가 불평해 봤댔자 아직껏 수재에 피해보상이 나온 전례가 없잖소? 설사 피해보상이 나온다 해도 그것 역시 국민의 세금이긴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봐요, 누가 당신보고 통장 아니라고 할까 봐 그런 되도 않은 논설 까슈? 시답지않게시리!”
중계차 주변엔 어느새 이백여 명의 수재민들이 잔뜩 붐벼들었다. 취재팀의 책임자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손을 비볐다.
“좀, 협조해 주세요. 다 여러분올 위한 일인데……. 저녁시간에 나갈 프로라 한시가 급해요.”
그러나 사람들은 도무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아니, 그만큼 말했으면 알아듣고 썩 물러 나갈 일이지, 뭐야. 당신들 정말 우리 성질나게 만들 거요?”
“그 양반들, 정말 뭘 모르네. 빠른 기동성에 치밀한 정보망을 자랑하는 테레비가 그렇게 물정 어두워? 30분 전부터 요 건너 구청 뒤 수재민들이 데모를 벌이고 있다는 소리 못 들었소? 시방 우리도 한바탕 일 벌일까 벼르고 있는 중인데 여길 어디라고 기어들어왔나? 망신당하기 전에 빨랑 꺼지시오.”
이때 뒤쪽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니, 굴러들어온 떡인데, 왜 놔줘요? 인질로 잡읍시다!”
‘인질’이란 말에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소리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빛 트레이닝 상의를 입은 그 청년은 시선이 일제히 자기에게 쏠리자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외면했다. 일순 언짢은 침묵이 흐르는 듯하더니 금방 여기저기서 봇물 텨지듯 목청 높인 소리들이 중구난방으로 터져나왔다.
“그래요, 중계차를 인질로 잡읍시다!”
“프로듀서 양반, 우리가 취재에 협조해 드릴 테니, 여기서 우릴 찍고 우리 주장을 방영해 주시오. 이번 피해는 천재지변이 아닌 수문 시공업체와 당국의 불찰로 빚어진 인재가 명백하므로 마땅히 피해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주장이오. 이것을 보도해 주시오!”
“왜 하필 우릴 잡고 그러세요? 우리야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죄가 없다고? 무슨 소리요! 노냥 왜곡보도, 허위보도를 일삼으면서 죄가 없다니! 이번도 방송만 잘 듣고 있으면 된다고 했잖소? 대피 준비령도 없이 갑자기 대피령을 발동해 놓구선 죄가 없다니! 그 바람에 우린 짐도 몇 가지 못 챙긴 채 쫓겨났단 말이오.”
“우리야 뭐, 대책본부에서 불러 주는 대로 보도했을 뿐이죠.”
“그럼, 아까 오전방송엔 왜 허위보도를 했소? 물이 조금도 빠지지 않았는데 물이 빠져 주민들이 귀가했다는 허위보도는 왜 했소”
“책임없다니! 올림픽 메달리스투를 환영한답시고 여의도 광장에서 비싼 축포를 함부로 팡팡 쏘아 대 멀쩡한 하늘에 구멍 뚫어 놓고, 이 비를 오게 한 것도 당신네 테레비여!”
“이번 기회에 지금 우리의 주장을 담아 한번 진실보도 해보쇼”
“우리 프로듀서야 무슨 힘이 있습니까.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이봐요. 위는 무섭고 아래는 무섭지 않다는 거요? 무섭지는 않더라도 불쌍하지도 않어?”
“그것을 방송 못 하면 못 나간다, 못 나가!”
“시장이 와서 책임 있는 말을 하기 전엔 못 나간다!”
“정문을 닫아 버립시다!”
한떼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철제로 된 정문을 밀어 닫고 빗장을 질렀다.
정문이 폐쇄되자 수재민들은 더 이상 승강이를 벌이지 않고 중계차로부터 멀찍이 물러났다. 취재팀도 수재민을 더 이상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 차들을 남쪽 울타리에 바싹 갖다 붙여 주차시킨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전경투입은 금물, 다만 사복 서너 명이 수재민 중에 몰래 끼여 앉아 담배나 축내고 있었다.
이렇게 중계차 두 대가 억류된 상태에서 시간은 별탈 없이 단조롭게 흘러갔다. 오후 늦게 식수차가 다시 왔는데, 그 차도 정문폐쇄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침수지역은 썰물의 갯바닥처럼 서서히 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먼저 물이 빠져나간 집들부터 귀가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그들은 죄진 사람처럼 연상 정문 쪽의 시위대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후문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수마에 능욕당해 인사불성으로 나자빠진 그들의 보금자리, 한시바삐 그곳으로 달려가 그 만신창이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연탄 곤죽과 흙탕물에 뒤범벅된 집구석, 방고래가 주저앉아 장롱은 짜부라지고, 자빠진 냉장고 속엔 썩은 음식물의 역한 냄새, 더러운 구더기로 변해 버린 쌀통의 횐 쌀, 따뜻한 신혼 이불도, 결혼사진·아기 돌사진이 들어 있는 정다운 사진첩도 흙탕물에 무참히 결딴나고, 아기는 더러운 걸레뭉치가 되어 버린 제 장난감을 보고 자지러지게 울어 제끼고, 물 잃은 미꾸라지 댓 마리 마당의 진창에 머리 박은 채 숨을 할딱거리고…… 귀가한 수재민들은 사경에 이른 그 미꾸라지들이 꼭 자기네 신세만 같아 한강으로 혜엄쳐 가라고 수챗구멍에 넣어 줄 것이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귀가 행렬은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이 빠져나간 지역은 점점 넓어지고 귀가하는 수재민도 계속 불어났다.
TV 중계차들이 풀려난 것은 수용소 인원 태반이 빠져나간 밤 10시 경이었다. 구청 앞 대로변에 활활 타오르던 시위대의 화톳불도 그때 쯤에 꺼졌다.
(『아스팔트』, 창작사, 1986)
2016년 4월 3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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