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부터 비가 내리더니 밤엔 진눈깨비 새벽엔 눈으로 오더니 온 세상이 눈꽃으로 덮여 있었다.
화요일마다 시 공부 다닌지가 어느새 일년이 되어 간다.
종로까지 다니느라 힘이 들어서 올해는 쉴까도 생각 했지만 막상 공부하지 않으니 더 잡념이 생겨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공부를 다닌다.
하루종일 공부하고 저녁에 별빛을 보면서 돌아 오는 길엔 늘 뿌듯함이 있다.
어제는 버스에서 내리니 광교산 앞부터 진눈꺠비가 흩날려서 우산을 쓰고도 앞이 안보였다.
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하고 선택 된 사람인 것 같아 늘 감사한다.
아침에 기도하고 오는데 눈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봄햇살에 빛나는 눈꽃을 보면서
눈꽃아 떨어지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다.
오후에 큰 맘 먹고 지난 폭설 때에 놓친 심곡서원을 스케치하러 나갔다.
달랑 카메라 통을 둘러 메고선...
심곡서원 앞의 폐휴지를 모으시는 할머니께서 "에고 사진사 잘도 생겼구만.." 하시면서 V폼을 재시는데
몇컷 찍어 드렸더니 사진도 현상해 달라신다.
할머니 주소를 외우고 심곡서원에 들어 서는데 완전히 꿈의 나라 같았다.
어쩜 이 동네에 산지 10년이 되어가는데 심곡서원 들어 온 것은 처음이다.
늘 내 방 아래 있는 심곡서원의 뒷모습만 보고 살아왔다.
산보도 집 앞의 공원쪽으로만 다녔지 큰 길 하나 건너기가 이리 힘들었을까
오늘 심곡서원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어제 시창작방에서 배운 허난설헌의 전기가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질곡의 세월을 살다간 시인 초희 허난설헌의 시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저려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우리의 것들을 안다고 자부하던 내가 공부를 하면서 가슴에 찔림이 온다.
27살 생애를 살다 갔지만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녀의 동생 허균은 거열형까지 당해서 죽는다.
우리의 역사는 늘 슬프게 스치고 또 인물들도 애석하게 죽음을 당한다.
심곡서원엔 나 혼자뿐이었다.
새소리와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와
내 사진기의 샷터 소리...
숫눈길에 찍히는 내 발자국 소리...
이 정밀함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나 혼자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봄빛에 반짝이는 고드름은 서원의 처마 밑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지만 다행히 쉽게 떨어지진 않았다.
오랜 은행나무의 하얀 눈꽃은 어찌하랴...
서원을 둘러 보는데 내 방에선 보이지 않던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 떨어진 눈꽃들을 찍으려 하는데 물빛에 어리는 나뭇가지들...사진기만이 볼 수 있는 눈...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이 횡재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제 내가 무슨 꿈을 꾸었지?
횡재...횡재 맞잖아...
연못에 비추인 나뭇가지들의 잔영은 환상이었다.
이 축복의 삶에 울지 않을 수 없엇다.
연못에 비추인 이 아름다운 눈꽃...
조상들의 향기 같아서 그 향기 듬뿍 받으면서 주르륵 눈물 흘리고 있었다.
창경궁의 부용지가 아니라도 이 작은 연못이 주는 황홀함에 샷터를 마구 눌렀다.
조광조는 이 연못을 보았을까?
눈을 들어서 광교산의 조광조 묘를 쳐다 보았다.
기묘사화 때에 심곡서원이 지어졌다한다.
아파트들로 둘러 쌓여 있지만 그래도 심곡서원 덕분에 사계를 감상할 수 있으니 행운이다.
개발에 밀려서 심곡서원의 모습을 잃는다면 얼마나 슬픈일일까
가까운 곳에 이토록 좋은 곳이 있는데도
멀리 있는 것만 사진기로 담아 온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나는 울었다.
아니 조상이 주는 향기가 너무 강해서 이렇게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라고
늘 내 방으로 어떤 향기를 보내주는 그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어서 혼자 서원을 서성거리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늘 서원을 내려다 보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봄이 되었으니 아침에 운동화 신고 달려 와서 조상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눈꽃을 사진기에 담으면서 지난 겨울이 주고 가는 깊은 사랑 이야기에 귀를 모은다.
경칩이 지났는데도 겨울은 아쉬움에 축복의 선물을 보내 주었다.
우리 조상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사랑과 열정을 나누면서 살아 가리라.
봄눈을 푹신하게 밟으면서 지난 주 세상을 떠난 친구의 영혼을 위헤서도 기도했다.
멀리 광교산의 새둥지를 담으면서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심곡서원 마당에서 나는 혼자 또 울었다.
얼굴이야 남보다 빠지지 않지요
바느질과 길쌈 솜씨도 좋지요
가난한 집 안에서 자라난 탓으로
좋은 중매자가 알지못할 뿐이라오
춥고 굶주릴망정 내색하지 않아요
하루 온종일 창가에서 베만 짜지요
오직 부모님만 가련하게 여기십니다.
밤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노라면
베틀소리는 마음에 차갑게 울립니다.
베틀애서 짜넨 베 한필,
누구의 옷이 될런지도 모른답니다.
손에 사위를 들고 옷감을 잘라내면
추운 밤 열 손가락이 뻣뻣하지요
남들이 시집 갈 옷을 짜면서도
저는 지금껏 홀로 잠을 잡니다.
(가난한 여인을 위한 노래.../허난설헌)
나뭇가지마다 깨어난 하얀 눈꽃
꽃샘바람에도 다시 열린 하얀 길
오늘 하루 열어가는 맑은 깨달음
겹치는 그대 그리운 모습
서설속에 펼쳐지는 창가의 풍경
마음 따라 흐르는 담고 싶은 아침 풍경
손끝에 머무는 아련함이여...
(아침에 심곡서원 보며 쓴 시...)
첫댓글 제목 만 보고도 ,,,맘이 울컥 했읍니다. 멋진 사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