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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겨울비보다 더 차더라 – 계룡산(동학사,관음봉,삼불봉,갑사)
1. 금잔디고개 가는 길, 천지사방에 안개가 자욱이 끼었다
鷄嶽岧嶢揷層碧 계룡산은 우뚝 솟아 층층이 푸르른데
淑氣蜿蜒自長白 맑은 기운 굼틀굼틀 장백산에서 달려왔네
山有湫兮龍則蟠 산에 깊은 못이 있어 용이 서리어 있고
山有雲兮物可澤 산에 구름이 있어 만물을 적셔 줄 만하여라
我昔試遊於其中 내가 예전에 일찍이 그 산에서 놀아 보니
靈異不與他山同 신령함이 다른 산과 서로 같지 않았었네
會作霖雨澤天下 마침내 장맛비 만들어 천하에 뿌릴 적엔
龍使雲兮雲從龍 용이 구름 부리고 구름은 용을 따르리라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8
―― 사가정 서거정(四佳亭 徐居正, 1420~1488), 「공주 십경(公州十景)」 중 ‘계룡산의 한가로운 구름(鷄嶽閑雲)’
▶ 산행일시 : 2025년 4월 5일(토), 비, 바람
▶ 산행코스 : 동학사주차장,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삼불봉고개,금잔디고개,신흥암,용문폭포,
대성암,갑사,갑사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9.8km
▶ 산행시간 : 4시간 30분(09 : 33 ~ 14 : 03)
▶ 교 통 편 : 좋은사람들 산악회(25명)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7 : 10 – 양재역 12번 출구 200m 전방 국제외교원 앞
08 : 30 – 옥산휴게소( ~ 08 : 50)
09 : 33 – 동학사주차장, 산행시작
10 : 00 – 동학사(東鶴寺)
10 : 30 – 은선폭포(隱仙瀑布)
11 : 11 – 관음봉(觀音峰, 765.8m)
12 : 08 – 삼불봉(三佛峰, 777.1m)
12 : 25 – 금잔디고개, 휴식( ~ 12 : 35)
12 : 56 – 신흥암
13 : 15 – 용문폭포
13 : 28 – 갑사(甲寺), 절집 구경( ~ 13 : 40)
14 : 03 – 갑사주차장, 산행종료, 자유시간( ~ 15 : 42)
16 : 55 – 천안삼거리휴게소( ~ 17 : 00)
18 : 05 – 양재역
2. 계룡산 국립공원안내도
▶ 관음봉(觀音峰, 765.8m)
오후에는 비가 그친다고 했으니 관음봉에 오르면 운해 위로 솟은 첩첩 산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내린다던, 그래야 오후에는 갤, 비가 순연되었다. 양재역은 등산객 또는 봄나
들이 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고속도로 일반차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들이 밀리는데 버스전용차로 만큼
은 시원하게 뚫렸다. 경부고속도로 청주 부근 옥산휴게소도 만원이다. 화장실 입구에는 용변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섰다. 그래도 모두 환한 표정이다.
지금은 어느 휴게소를 막론하고 커피자판기가 밀려난 터라, 나는 봉지믹스커피와 컵을 가지고 와서 푸드 코트의
온수를 빌려 타 마신다. 돈도 돈이지만(500원짜리 커피를 4,500원 이상을 주고 마셔야 한다니) 커피전문점 커피는
그 맛이 밍밍한 게 맹물보다 더 못하다. 커피 입맛을 바꾸려고 종종 이름난 커피전문점을 찾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맛이 별로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동학사주차장도 동학사 가는 길도 많은 사람들로 번잡하다. 이곳 벚나무는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한다. 동학사 가는
길은 길 양쪽에 열주로 늘어선 노거수인 느티나무가 아름답다. 이에 여초 김응현(如初 金應鉉, 1927~2007)의 중후
한 글씨인 일주문의 현판 ‘鷄龍山 東鶴寺’가 썩 어울린다. 계류는 조용조용 법문한다. 주차장에서 동학사까지
1.7km, 30분 정도 걸린다. ‘동학’이라는 이름은 동쪽에 학(鶴)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어쩌면 주차장
에서 올려다본 암봉(학봉?)일 것 같다.
동학사 안내판에 “영조 4년(1728) 신천영의 난으로 사찰과 사당 모두가 소실된 것을, 순조 4년(1814) 월인선사가
신축하였으며, 고종 원년(1864) 만화 보선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1728년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하여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기도한 사건으로 이인좌가 중심이 되었기에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하는
데, 청주 사람인 신천영(申天永)도 이에 가담하였다.
대전 출신인 옥오재 송상기(玉吾齋 宋相琦, 1657~1723)는 1699년 충청도관찰사 부임하고서 그 이듬해 처음으로
동학사를 거쳐 계룡산을 올랐다고 한다. 43세 때이다. 그는 지금의 세진정(洗塵亭)에서 오른쪽으로 상원사를 갔을
듯하다. 그의 눈을 빌려 계룡산를 다시 보려고 했는데 날씨가 훼방한다. 다음은 그의 「계룡산유람기(遊雞龍山記)」
의 일부다.
“(…)공암(孔巖)에서 길을 돌려 계룡산을 찾아갔다. 골짜기 입구로 막 들어가니 한 줄기 시내가 바위와 숲 사이에서
쏟아져 나와 혹은 격렬히 부딪치며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혹은 평탄하고 잔잔하게 흐르기도 하였다. 물은 푸르기가
하늘빛 같고, 바위 색도 푸른 기운이 감도는 흰색을 띠어 사랑스러웠다. 좌우에는 붉은 단풍과 푸른 솔이 마치 그림
처럼 이어져 있었다. 동학사에 들어가니 계룡산의 바위 봉우리가 웅장하게 솟아 빽빽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
은 마치 짐승이 웅크리고 앉은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서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절은 여러 봉우리들 사이에 자리
잡아 형세는 좁고 험하였다. 절 앞의 물과 바위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떨어지면서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물이
모여 맑은 못을 이루기도 하였다.”
“(…) 정각암(淨覺庵)은 절 뒤에 있는데 매우 높고 험하였다. 암자에는 두어 명의 승려가 있었으며, 정실(淨室)이
깨끗하였다. 상원암(上院庵)은 또 그 위에 있었는데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암자의 뒤로는 천 길이나 되는
바위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깎아지른 듯 솟아 계룡산의 여러 산등성이들이 모두 발 아래로 보였다. 동쪽과 남쪽
두 방향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구름 낀 하늘 사이에 뾰족뾰족 솟아 있었다. 그러나 시력이 미치지 못하여 어느 지역
의 무슨 산인지 알 수 없었다. 암자는 옛날 건물과 새 건물이 함께 있고, 옛날 건물 앞에는 두 개의 탑이 서 있었다.
탑 앞에 누대가 있는데, 그 주위는 비로 쓴 듯이 깨끗하였다.”
3. 동학사주차장 주변
4.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
5. 동학사 가는 길
6. 황적봉, 은선폭포 0.6km 남겨두고 돌계단과 데크계단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봄
7. 은선폭포
8. 은선폭포 주변
9. 관음봉고개
10. 삼불봉 가는 길에서 마주친 암봉,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계룡산에는 절이 많다. 옥오재가 「계룡산유람기(遊雞龍山記)」에서 들른 절만 해도 여럿이다.
동학사를 비롯한 정각암(淨覺庵), 상원암(上院庵), 천장암(天藏庵), 석봉암(石峰庵), 적멸암(寂滅庵), 문수암(文殊
庵), 귀명암(歸命庵), 갑사(甲寺), 사자암(獅子庵), 진경암(眞境庵, 옥오재는 험하다고 하여 들르지 않고 함께 간
아우가 갔다), 의상암(義相庵), 원효암(元曉庵), 대비암(大悲庵), 신원사(神院寺) 등이 그것이다.
동학사를 지나고 향아교(香牙橋)로 계류 건너면 아스팔트 포장한 대로는 끝나고 돌길이 시작된다. 산자락 돌 무렵
┣자 심우정사 갈림길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은선폭포를 0.6km 남겨두고 계곡 길은 막았다. 오른쪽 가파른 돌길에
이어 데크계단을 오른다. 10시 15분쯤 이때부터 기어코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이 비는 저녁까지 그치지 않고 이어
졌다. 산정은 안개에 가리기 시작한다. 데크계단은 계단 앞면에 그 개수를 표시했다. 584개. 그리고 123, 234 등으
로 오른 계단 수를 알게 해준다. 등산객을 위한 배려다.
계단참에서 뒤돌아 바라보면, “천 길이나 되는 바위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깎아지른 듯 솟아 계룡산의 여러 산등
성이들이 모두 발 아래로 보일” 듯한데, 건너편 황적봉만 잠깐 보이고 안개에 가렸다. 숨 가쁘게 올랐던 데크계단은
산중턱에서 계곡을 향하여 내려간다. 사면 길게 돌고 다시 내리고 계곡 가까이서 은선폭포전망대다. 옛날 신선들이
숨어서 놀았을 만큼 아름답다는 은선폭포는 물이 적어 폭포로 알아보기 어려운 깊은 석벽이다.
은선폭포는 홍색장석질 화강암에 나타난 20cm 정도의 두께로 겹겹이 쌓인 판상(板狀)의 사(斜) 절리들이 외부로
떨어져나가 만들어진 높이 46m, 폭 10m, 경사 60도의 폭포인데 산지의 정상부 주변에 위치하여 폭포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의 유수량이 계속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갈수기에는 낙수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폭포라고 한다. 그래
도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며 피어나는 운무는 계룡팔경 중 제7경이라고 한다.
계룡팔경은 충청남도에서 1984년 선정하였는데 천황봉(天皇峰)의 해돋이, 삼불봉(三佛峰)의 겨울눈꽃[雪花], 연천
봉(連天峰)의 해넘이[落照], 관음봉(觀音峰)의 구름[閑雲], 동학계곡(東鶴溪谷)의 신록(新錄), 갑사계곡(甲寺溪谷)
의 단풍, 은선폭포(隱仙瀑布)의 자욱한 안개, 오뉘탑(남매탑)의 밝은 달을 가리킨다.
은선폭포전망대에서 잠시 서성이다 가파른 돌길을 오른다. 관음봉까지 줄곧 곧추선 오르막이다. 돌길이거나 험한
데는 데크계단 오르막이다. 77개 오르고 잠시 돌길 오르다가 다시 데크계단 324개다. 관음봉고개는 안개가 자욱하
다. 왼쪽 천황봉은 수 십 년 이래 아직까지도 출입통제구역이다. 오른쪽 관음봉은 돌길 오르막 0.1km다. 내처 오른
다. 관음봉. 계룡산 정상 노릇을 한다. 계룡(鷄龍)이란 이름은 전체 능선의 모양이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아
서 붙여졌다고 한다. 관음봉 정자는 예전 그대로다. 여느 때 북적이던 관음봉이 오늘은 쓸쓸하다.
관음봉 한운(觀音峰 閑雲)이 오늘은 비와 안개에 캄캄하니 가렸다. 지척도 어둑하다. 빗줄기가 눈에 보인다. 빗방울
이 굵다. 빙우(氷雨)다. 차디차다. 핫팩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크나큰 실수다. 손이 시리다 못해 무감각하다. 한겨울
설한풍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바람이 부니 비옷이 감당하기 어렵다. 체온을 유지하려면 그저 걸어야 한다. 철계단과
데크계단을 조심스레 내린다. 발아래 자연성릉을 보려고 난간 너머로 기웃거려 보지만 가망 없다.
11. 삼불봉 가는 길
12. 삼불봉 정상
13. 삼불봉고개 지나 금잔디고개 가는 길에서
16. 신흥암 바로 뒤 암봉
17. 용문폭포 가는 길
18. 용문폭포
▶ 삼불봉(三佛峰, 777.1m), 갑사(甲寺)
우리 일행 대부분은 동학사, 남매탑, 삼불봉, 관음봉, 연천봉, 갑사 코스로 진행한다. 내가 가는 코스가 0.5km 더
길다. 산행시간은 30분을 더 주었다. 우리 일행과 자연성릉에서 마주친다. 자연성릉 지나고 나 혼자다.
볼거리라고는 안개 속 나목들이다.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니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우선 카메라가 비에 젖지 않도
록 우산을 받쳐야 한다. 가던 걸음 멈추고 파인더 들여다보며 셔터 누르는 순간은 손 시림도 잊는다.
봉봉을 돌아 넘고 더러 직등하고(그때마다 경점이겠지만 오늘은 무망이다) ┫자 금잔디고개 갈림길 지나고 막판
188개 계단 올라 삼불봉이다. 심안으로 지난날 이곳에서의 조망을 떠올리고 내린다. 가파른 철계단을 연속해서
내리고 돌길 사면 돌아내리면 삼불봉고개다. 금잔디고개 0.4km. 길 좋다. 주변의 안개 속 풍경은 그윽하다. 카메라
자주 꺼낸다. 저 앞의 풍경은 또 어떠할까 서둘러 간다. 금잔디고개가 금방이다.
금잔디고개는 너른 쉼터다. 우산 받치고 배낭 벗어놓고 간이의자 꺼내 휴식한다. 인절미로 허기를 달랜다. 동학사주
차장 근처 가게에서 사온 반포주조 계룡산 생막걸리 (에탈올 함량 7%이고, 가격은 2,000원이다)는 추워서 도저히
마시지 못하겠다. 금잔디고개를 넘으면 가파른 돌길이다. 등로 주변에 플꽃이 있을까 살피기도 한다. 현호색 일색이
다. 신흥암을 지난다. 신흥암 풍경소리가 낭랑하다. 신흥암 지나면 콘크리트 포장한 임도다. 산길이 벌써 끝났다니
서운하다.
그러나 임도는 산모퉁이를 돌아 계속 가고, 갑사 가는 길은 사면 길게 내려 골로 간다. 용문폭포도 산허리를 멀리 돌
아가야 볼 수 있다. 한 피치 사면 올랐다가 데크계단 내린다. 바위 뒤쪽에 숨어 있는 용문폭포를 이정표가 안내한다.
등로에서 20m 벗어나 있다. 당연히 들른다. 관폭대가 폭포 가까운 정면이다. 용문폭포도 수량이 적어 아쉽다. 용문
폭포는 갑사구곡(甲寺九曲) 중 제8곡이라고 한다. 계곡 따라 내린다. 산자락 오르막에 있는 대성암이 별장 같다.
대성암에서부터는 다시 포장한 임도다. 갑사가 가깝다.
갑사 절집 구경한다. 대웅전 주련을 들여다본다. 능엄경에 나오는 문수보살 게송이라고 한다. 의미가 알듯 말듯하
다. 법보신문에는 대중은 문수보살 가르침대로 그저 깨끗한 마음을 지니려 노력하고 정진하면 될 일이고, 그렇게
비워내고 깨끗해진 마음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돌아보면 마침내 그동안 집착하고 매달렸던 일들이 마치 꿈
속의 일과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한때 공주 마곡사에서 은신하다가 떠난
지 50년 만에 돌아와 대광보전에 걸려 있는 이 주련을 보고 “다시 와서 세상을 보니/마치 꿈속의 일만 같구나(却來
觀世間/猶如夢中事)”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한다. 충분히 그러셨으리라.
淨極光通達 청정함이 지극하면 광명이 통달하여
寂照含虛空 고요한 비추임은 허공을 머금도다
却來觀世間 다시 와서 세상을 보니
猶如夢中事 마치 꿈속의 일만 같구나
雖見諸根動 비록 모든 움직임이 보일지라도
要以一機推 요컨대 단번에 뽑아버릴지이다
갑사 5리 숲길 황매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5리 숲길 곳곳 안내판에 계룡산 깃대종이라고 호반새와 깽깽이풀을 자랑
한다. 그렇다면 내 오늘 계룡산을 둘러본 걸음이면 깽깽이풀이 보일 법도 한데 아무런 낌새도 채지 못했다. 일주문
나서면 먹자동네다. 주차장은 그 끄트머리 백운교 건너서다. 부슬비 내리는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계룡산은 여전히
안개구름에 가렸다.
19. 갑사 가는 길
20. 목련, 갑사에서
22. 매화, 갑사에서
25. 갑사 오리 숲길
26. 갑사 일주문
27. 갑사주차장에서 바라본 계룡산은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혔다
첫댓글 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