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대씨(密陽大氏)
始祖 : 大祚榮(대조영)
始祖(시조) 大仲象(대중상,?~698年)은 高句麗(고구려)의 後孫(후손)이다.
그의 아들 大祖榮(대조영?~719)이 699年 渤海(발해)를 建國(건국)한 後(후)
15代에 걸친 228年동안 王權(왕권)을 維持(유지)해 오다가渤海(발해)가 亡(
망)하자 마지막 王(왕)인哀王(애왕,景王의 아들,이름은 大仁宣)의 아들 大鐸(
대탁)이 子孫(자손)들을 거느리고 只今(지금)의 慶南(경남)密陽(밀양)에 定着(정착)하여 살았으므로 密陽(밀양)을 本貫(본관)으로 하였다.
一說(일설)에는 渤海(발해)가 亡(망)하자 世子(세자) 大光顯(대광현)이 高麗(
고려)에 亡命(망명)한 것이 우리나라 大氏(대씨)의 始初(시초)가 된다고 한다.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慶尙南道 密陽
密陽(밀양)은 只今(지금)의 密陽市(밀양시) 一圓(일원)에 있던 地名(지명)으로 三韓時代(삼한시대)에 弁韓(변한)의一部(일부)로 駕洛國(가락국)에 屬(속)했으며 彌離彌東國(미리미동국)이 있었다고 한다. 法興王(법흥왕)때 新羅(신라)에 倂合(병합)되어 推火郡[(추화군,密伐(밀벌)또는 彌離伐(미리벌)]이設置(설치)되었다가,757年(新羅 景德王16)에 密城郡(밀성군)으로 改編(개편)하였다.
995年(高麗成宗16)에는 密州(밀주)로 改稱(개칭)하였고,1018年(顯宗9)에 密城郡(밀성군)으로 改編(개편)되었다. 1275年(忠烈王 1)에는 郡民(군민)의 謀反(모반)事件(사건)으로 歸化部曲(귀화부곡)으로 降等(강등)되어 鷄林府(계림부:慶州)에 編入(편입)되었다가 後(후)에 縣(현)으로 昇格(승격)하였다.1285年에는 郡(군)으로 昇格(승격)되었으나 다시 縣(현)으로 降等(강등)되었다가 1390年(恭讓王 2)에 密陽府(밀양부)로 昇格(승격)하였다.
朝鮮(조선)1415年(太宗15)에 密陽都護府(밀양도호부)가 되었다가 1895年(高宗32) 地方制度(지방제도) 改正(개정)으로 慶尙南道(경상남두) 密陽郡(밀양부)이 되었다.1918年에는 部內面(부내면)이 密陽面(밀양면)으로改稱(개칭)되고 1931年에 密陽邑(밀양읍)으로,1989年 市(시)로 昇格(승격)하여 獨立(독립)하였다.1995年 密陽郡(밀양군)이 密陽市(밀양시)에 統合(통합)되었다.
人物
1世祖(세조)인 吏部尙書(이부상서) 大鐸(대탁)의 아들 大德歲(대덕세)가 朝鮮時代(조선시대)에 官職(관직)을 지내고 나라에 功(공)을 세워 密陽君(밀양군)에 封(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大文記(대문기)는 漢成判尹(한성판윤)을 歷任(역임)하였고,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를 지낸 大重澤(대중택)은 戶曹判書(호조판서)를 歷任(역임)한 大國彦(대국언)과 함께 家門(가문)을 빛냈다.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密陽大氏(밀양대씨)는
1985年에는 摠 92家口 390名,
2000年에는 摠 162家口 492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